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러시아 소장 근대한국문서

1895년 11월 28일 무명의 한국인으로부터 공사관 문지기에게 전달된 편지 번역본

Перевод письма, переданного 28 Ноября 1895 г. Привратнику Миссии неизвестным корейцем
  • 구분
    보고서
  • 발송일
    1895년 11월 28일(1895년 11월 28일)
  • 문서번호
    АВПРИ,ф.150,оп.493,д.6,лл.195-197об.
  • 원소장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 대분류
    정치/외교(국제문제)
  • 세부분류
    왕실관계/외교정책/국제관계
  • 주제어
    을미사변, 한러관계, 친일파
  • 색인어
    박형옥, 이진홍, 박영효, 대신, 협판, 이건창, 이남규, 상소문
  • 형태사항
    6  , 타이핑  , 러시아어 
№ 328.
서울 1895
 
조선 정부의 고관이자 전(前) 종묘 관리인 박형옥(Пак Хенг-ок), 유생 이진홍(И-чин-хон)과 여타 사람들이 러시아 공사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최근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해 공손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형제들이며, 그 어떤 불화가 발생했을 때, 국가는 서로 서로에게 부응해야 하며,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면, 서로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호 협력을 위해 감히 각하께 다음과 같은 염원을 아뢰는 것으로 보고서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각하께서는 보고서에서 언급한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다”라는 것을 기억하시어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실 것을 바라는 간청을 뿌리치지 마시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고통스러운 혼란에 각하의 도움을 저버리지 마시길 염원합니다.
한국은 문명의 가장자리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세계 각축장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단일한 인문학만을 연구해왔습니다. 아! 그리고 단 한 번도 무력이나 군사적인 수단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300년 전 일본은 우리를 전혀 개의치 않고 전쟁으로 몰아갔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본군들이 조선으로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일본 침략군들이 백성들에 살상을 자행함으로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행히도 12명의 애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조에 대한 무한한 애국심과 사심 없는 헌신성으로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들 중 여섯 명이 이러한 광풍의 전쟁 소용돌이의 희생으로 사망했으며, 나머지 여섯 명은 살아남았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뒤틀리고 혼란스러웠던 토대들이 새로이 세워졌고, 모든 일본인들은 하루아침에 물러났습니다. 그 나라는 수 백 년 동안 우리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적인 평온함으로 드러났습니다. 곧 새로운 재난들이 우리나라를 덮쳤습니다. 약 10년 전에 동란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혼란을 야기한 가담자 중의 하나인 대역죄인 박영효(Пак ёнг-хё)가 세 명의 음모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습니다. 그곳에서 완전히 일본의 앞잡이가 된 그들은 일본인들과 함께 공모하여, 궁정을 장악하고 동란을 수행하도록 반역을 부추겼습니다. 사건은 아주 복잡한 것으로,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반역자 박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자신들의 당파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은 국왕의 일을 후원한다는 핑계 하에 그들 스스로를 대신과 협판으로 불렸으며, 그 다음에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간에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박이 국왕에 대항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는 패배했고, 결국 그 때 사라졌습니다. 그를 따르던 나머지 사람들은 일본인들과 함께 계속해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9월 26일 밤에 그들 모든 패거리들은 대원군이 은둔해 살고 있던 별장주 001
번역주 001)
마포 공덕리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을 말함
닫기
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궁궐로 모셔 갔고, 왕후를 죽였습니다. 이 전 과정에서 그들은 완전히 비정상적이고 불법적으로 일을 저질렀습니다. 바로 그것으로 이제 그들은 왕후가 이전에 누리던 명성을 국왕이 대신하고 모든 인민에게 왕후의 국상을 알리라고 국왕에게 강요했습니다?! 정말로 그 언제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범죄가 저질러진 적이 있었습니까?! ‘춘추〈Чунь-цю〉’에서 쓰기를, “폭도들이 아직 처벌을 받지 않는 한 그리고 범죄의 죄 값을 치루지 않는 한 장례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폭도들이 완전히 불법적으로 날뛰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찌 국상을 치룰 수 있겠습니까!
협판 이건창(И-кон-чанг)과 협판 이남규(И-нам-гю)는 그들의 분노를 억누르는 억압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상소문을 국왕께 올렸습니다. 그러나 역적들은 국왕이 항상 전혀 이 모든 사실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고자 상소문을 국왕에게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희 둘은 이 혼란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 사실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르지만, 모든 외국 공사관 대표들이 사건이 올바로 해결되도록 참여해 주시기를, 그리고 우리의 철전지 원수이자 이 땅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없는 일본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들 스스로 대신과 참판을 참칭한 역적들의 처벌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그 때 우리 국왕의 통치체제가 이전과 같이 회복될 것이고, 왕실은 강화될 것입니다. 대원군과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그는 이미 힘없고, 늙었으며, 그 스스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에게 안식을 주고, 자신의 시대를 조용하고도 편안하게 마무리 짖도록 할 때입니다.
우리는 역적들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줄 것을,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여 줄 것을 외국 공사관 대표들에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다”라는 보고서의 표현이 공허한 문구는 아닙니다.

  • 번역주 001)
    마포 공덕리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을 말함바로가기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1895년 11월 28일 무명의 한국인으로부터 공사관 문지기에게 전달된 편지 번역본 자료번호 : kifr.d_0004_017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