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사료로 보는 독도

강원 감사에게 왜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명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37년 2월 8일(음)
  • 출전
사료해설
강원도 감사 유계문(柳季聞)이 쇄환정책으로 무릉도(武陵島;울릉도)가 비어있으므로 왜인들이 먼저 점거(點據)할 우려를 염려하여 울릉도 관리에 대한 조정의 대책를 제안한 내용이다. 결국 논의는 현을 신설하고 수령을 두어 백성을 옮겨 채우는 것은 형편상 어려우므로 매년 사람을 보내어 정기적으로 섬 안을 탐색하여 토산물을 채취(採取)하고, 또는 말 목장을 만들어서 왜인들이 몰래 점거할 생각을 못갖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울릉도의 관리를 둘러싼 조정의 논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이다.
원문
○傳旨江原道監司柳季聞:
去丙辰秋, 卿啓: “茂陵島土地膏腴, 禾穀所出, 十倍陸地, 且多所産, 宜設縣置守, 以爲嶺東之藩籬。” 卽令大臣僉議, 竝云: “此島遠於陸地, 風水甚惡, 不宜蹈不測之患, 以設郡縣。” 故姑寢其事。 卿今又啓云: “聞諸古老, 在昔倭奴來住, 連年侵掠, 嶺東蕭然。” 予亦以爲曩者倭奴陸梁, 居于對馬島, 尙且侵掠嶺東, 至于咸吉道。 茂陵島無人日久, 今若倭奴先據, 則將來之患, 亦未可知。 其設縣置守, 徙民實之, 則勢固難矣, 每歲遣人, 或探島內, 或採土産, 或爲馬場, 則倭奴亦以爲大國之地, 必不生竊據之心。 在昔倭奴來住之時, 何代耶? 所謂古老者, 幾人耶? 若欲遣人, 則風水調順, 何時何月耶? 入歸之時, 裝備之物、舟楫之數, 備悉訪問以啓。
번역문
강원도 감사 유계문(柳季聞)에게 전지하기를,
“지난 병진년 가을에 경이 아뢰기를, ‘무릉도(茂陵島)는 토지가 기름져서 곡식의 소출이 육지보다 10배나 되고, 또 산물이 많으니 마땅히 현(縣)을 설치하여 수령을 두어서 영동의 울타리를 삼아야 한다. ’고 하였으므로, 곧 대신으로 하여금 여러 사람과 의논하게 하였더니, 모두 말하기를, ‘이 섬은 육지에서 멀고 바람과 파도가 매우 심하여 헤아릴 수 없는 환난을 겪을 것이니, 군현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아직 그 일을 정지하였더니 경이 이제 또 아뢰기를, ‘고로(古老)들에게 들으니 옛날에 왜노들이 와서 거주하면서 여러 해를 두고 침략하여, 영동(嶺東)이 빈 것 같았다. ’고 하였다. 내가 또한 생각하건대, 옛날에 왜노들이 날뛰어 대마도에 살면서도 오히려 영동을 침략하여 함길도에까지 이르렀었는데, 무릉도에 사람이 없는 지가 오래니, 이제 만일 왜노들이 먼저 점거(點據)한다면 장래의 근심이 또한 알 수 없다. 현을 신설하고 수령을 두어 백성을 옮겨 채우는 것은 사세로 보아 어려우니, 매년 사람을 보내어 섬 안을 탐색(探索)하거나, 혹은 토산물을 채취(採取)하고, 혹은 말의 목장을 만들면, 왜노들도 대국의 땅이라고 생각하여 반드시 몰래 점거할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다. 옛날에 왜노들이 와서 산 때는 어느 시대이며, 소위 고로라고 하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며, 만일 사람을 보내려고 하면 바람과 파도가 순조로운 때가 어느 달이며, 들어갈 때에 장비(裝備)할 물건과 배의 수효를 자세히 조사하여 아뢰라.”
하였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강원 감사에게 왜노의 침략에 대비할 것을 명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