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頭
백두(白頭)는 부남(扶南)의 바로 서쪽에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머리가 하얗고, 살결이 기름같이 매끈하다. 산 속의 굴에 사는데, 사방이 깎아지른 듯이 높아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다. 참반국(參半國)
주 001
각주 001)
과 붙어 있다.參半國: 黎道綱은 기존의 연구들이 參半國을 태국의 북부에 비정하였던 것을 모두 부정하고, 6세기에 태국 동북부 혹은 중부의 해안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에 출현하였던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태국 북부에 취락이 출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6세기의 기록에 나오는 參半國을 8세기 이후에나 출현하기 시작하는 庸那迦國이나 金燈國 혹은 金城國에 비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반국은 현재 태국의 Phetchabun(碧差汶府)의 室帖(室利提婆) 古城에 해당하며, 唐 초기의 참반은 梵名이 Chanasapura 혹은 Sri Chanasa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후기의 참반은 가라사불이라는 이름으로 당대의 사서에 보이며, 태국의 아유타야(Ayutthaya) 비에 따르면 이 나라는 937년까지도 존속하였다고 설명하였다(黎道綱,『南洋問題硏究』1998-3: 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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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參半國: 黎道綱은 기존의 연구들이 參半國을 태국의 북부에 비정하였던 것을 모두 부정하고, 6세기에 태국 동북부 혹은 중부의 해안으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에 출현하였던 국가라고 주장하였다. 태국 북부에 취락이 출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에 불과하기 때문에, 6세기의 기록에 나오는 參半國을 8세기 이후에나 출현하기 시작하는 庸那迦國이나 金燈國 혹은 金城國에 비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반국은 현재 태국의 Phetchabun(碧差汶府)의 室帖(室利提婆) 古城에 해당하며, 唐 초기의 참반은 梵名이 Chanasapura 혹은 Sri Chanasa이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후기의 참반은 가라사불이라는 이름으로 당대의 사서에 보이며, 태국의 아유타야(Ayutthaya) 비에 따르면 이 나라는 937년까지도 존속하였다고 설명하였다(黎道綱,『南洋問題硏究』1998-3: 63~64).
색인어
- 지명
- 백두(白頭), 부남(扶南), 참반국(參半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