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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후쿠이현립박물관 소장 이불병좌상

福井縣博物館 所藏 二佛竝坐像
  • 저필자
    이현주(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福井福井市大宮 2-19-15
  • 시대
    발해
  • 유형
    건축지
유적개관
발해의 이불병좌상들은 모두 팔련성 안의 한 절터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절터를 발굴한 이는 사이토 마사루[齊藤優]라는 1940년대 중국 길림성의 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이다. 사이토 마사루는 중학교를 나와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했으며, 교토대학의 고고학연구실에서 하마다 고사쿠[浜田耕作]라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의 지도를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사이토는 만주지역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고구려와 발해유적을 조사할 수 있었고,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도쿄대학과 그의 고향인 후쿠이현립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이토가 작성한 팔련성 발굴보고서에는 파편을 포함해 총 8구 정도의 이불병좌상이 소개되어 있다. 이 상들 또한 대부분 도쿄대학에 소장되어 있으나 2구는 특이하게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군정이 일본을 통치하던 시절 연합군의 지시로 대만으로 보내지게 되었다는데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발해 이불병좌상의 가장 큰 도상적 특징은 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상들은 대부분 두 구 모두 시무외 여원인이나 선정인을 하는데 비해서 발해의 상들은 두 분의 부처님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쪽 손을 맞잡고 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얼굴의 두 부처님이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모습은 발해 이불병좌상만이 표현할 수 있는 법화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유물개관
발해 이불병좌상, 팔련성 출토 기와와 석불, 고려성의 기와, 서고성의 기와 등 소장.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주소는 福井福井市大宮2-19-15이다.
후쿠이현립박물관(福井縣博物館)은 일본의 후쿠이시에 위치한다. 후쿠이현립박물관에는 발해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 팔련성[琿春 八連城] 출토 기와와 석불, 고려성의 기와, 서고성의 기와 등의 발해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발해의 이불병좌상들은 모두 발해의 팔련성 안에 있는 절터에서 출토된 것이다.
팔련성의 절터를 발굴한 이는 사이토 마사루[齊藤優]이다. 사이토 마사루는 1940년대 중국 길림성의 부대에서 근무하던 군인이었다. 그는 중학교를 나와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했으며, 교토대학의 고고학연구실에서 하마다 고사쿠[浜田耕作]라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의 지도를 받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사이토는 만주지역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주변의 고구려와 발해 유적을 조사할 수 있었다. 사이토가 출토한 유물들을 대부분 도쿄대학과 그의 고향인 후쿠이현립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사이토가 작성한 팔련성 발굴보고서에는 파편을 포함해 총 8구 정도의 이불병좌상이 소개되어 있다. 발해이불병좌상은 대부분 도쿄대학에 소장되어 있으나 이 중 2구는 특이하게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미군정이 일본을 통치하던 시절 연합군의 지시로 대만으로 보내지게 되었다는데 그 자세한 내막은 전해지지 않는다.
발해 이불병좌상의 가장 큰 도상적(圖像的) 특징은 수인(手印), 즉 부처님의 손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상들은 대부분 두 구 모두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이나 선정인(禪定印)을 하는데 비해서 발해의 상들은 두 분의 부처님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쪽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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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이현립박물관 소장 이불병좌상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130_003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