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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성릉자고성북성

城楞子古城北城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요금
  • 원소장처
    吉林省 梨樹縣 東河鎭 王平房村 城楞子屯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둘레: 1,264m, 남: 280m, 북: 324m, 동: 331m, 서: 329m
입지
성이 자리 잡은 지세는 비교적 평탄하며, 성벽의 평면은 불규칙한 사변형(四邊形)을 이루고 있고, 방향은 남쪽에서 동쪽으로 12도 치우쳐 있다. 북성(北城) 성벽은 이미 농경지로 개간된 지 여러 해가 되어, 당시의 웅장했던 자태는 이미 엿볼 수가 없다.
유적개관
북성(北城) 성벽은 서쪽, 남쪽, 북쪽 3벽이 비교적 곧으며, 동벽은 하안방향을 따라서 축조하였기 때문에 굴곡이 있다. 단층에서 성벽이 황갈색점토(黃褐色粘土)를 판축하였음을 볼 수 있다. 북성(北城) 성벽의 네 모서리는 모두 각루(角樓)를 만들었고, 남벽 중간에는 두 곳의 와지(洼地)가 있는데, 문지로 생각된다. 옹성(瓮城), 마면(馬面), 해자 등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유물개관
지표면에서는 겨우 약간의 건축재료, 도자기 잔편 등의 고대유물이 발견되었다. 아울러 北城地 안에서 또한 연꽃 와당 잔편1점과 長頸壺 잔편 1점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이수현(梨樹縣) 동하진(東河鎭) 왕평방촌(王平房村) 성릉자둔(城楞子屯)에 있는데, 남성(南城)과 마찬가지로 동요하(東遼河) 왼쪽 강가의 2급 대지에 축조되어 있다. 성이 자리 잡은 지세는 비교적 평탄하며, 성벽의 평면은 불규칙한 사변형을 이루고 있고, 방향은 남쪽에서 동쪽으로 12도 치우쳐 있다. 북성(北城) 성벽은 이미 농경지로 개간된 지 여러 해가 되어, 당시의 웅장했던 자태는 엿볼 수가 없다.
현재는 단지 지면보다 약간 융기한 흙두둑, 즉 성벽의 사방과 구조를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북성(北城) 성벽은 서쪽, 남쪽, 북쪽 3벽이 비교적 곧으며, 동벽은 하안방향을 따라서 축조하였기 때문에 굴곡이 있다. 각각의 길이는 서쪽이 329m, 남쪽이 280m, 북쪽이 324m, 동쪽이 331m로, 전체 둘레 1,264m, 너비는 8m, 남아 있는 높이는 0.5m 전후이다. 동쪽 성벽의 단층에서 성벽이 황갈색 진흙으로 판축(版築)하였음을 볼 수 있다. 북성 성벽의 네 모서리는 모두 각루(角樓)를 만들었고, 남벽 중간의 두 곳이 문지로 생각되며, 옹성(甕城), 치, 해자 등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북성 안에서 발견된 연꽃 막새기와조각 1점, 목이 긴 병조각 1점과 옅은 황색·황갈색의 베무늬 기와는 모두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 길림성(吉林省) 화룡시(和龍市) 북대(北大)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처럼 전형적인 발해문화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밖에 성에서 송대(宋代 : 960∼1279)의 동전이 발견되었으므로, 이 성은 발해 시기에 축조되어 요(遼)·금(金) 시기(907∼1234)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표면에서는 약간의 뻘질 기와, 청회색 뻘질 벽돌, 청회색 뻘질 토기조각, 각종 자기조각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지인들에 의하면, 일찍이 북성 안에서 동화살촉, 쇠화살촉. 손잡이가 여섯인 철솥, 송대(宋代 : 960∼1279)의 동전, 쇠가래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북성 안에서 또한 연꽃 막새기와조각 1점과 목이 긴 병조각 1점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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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릉자고성북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30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