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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망강루고분군

望江樓墓群
  • 저필자
    표영관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본계시 환인만족자치현 아하향 남변석합달촌(中國 遼寧省 本溪市 桓仁滿族自治縣 雅河鄕 南邊石哈達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무덤
입지
환인현 아하향 남변석달합촌 북쪽 약 100m의 산마루(절벽 위)에 위치
유적개관
1971년 조사된 유적으로, 주민들에 의해 4기의 고분이 도굴 및 훼손된 상태였다. 2004년 빈번한 도굴로 인해 긴급 발굴조사를 통해 6기의 적석총을 발굴한 바 있다. 적석총은 강돌과 산자갈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평면 형태는 불규칙한 타원형이다. 6기의 적석묘가 산의 방향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묘실은 얕은 또는 지상에 축조한 장방형의 묘광이며, 이후 조약돌을 채워 넣고, 강돌 등을 이용하여 봉분을 쌓아 올렸다.
유물개관
토기, 청동제 차관, 금제 귀걸이, 목걸이(구슬)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환인만족자치현 현소재지(縣所在地) 중심은 환인댐에 흘러나온 혼강(渾江)이 ㄷ자 형태로 돌아나가는데 맞은편인 남서쪽 강변에 위치한 남변석합달촌에서 발견된 고분군이다.
1971년, 마을 북쪽 구릉에는 10여기가 넘는 무덤들이 있었는데, 이 중 네 기의 고분이 도굴당하면서 ‘본계시 환인현문물관리부문(本溪市桓仁縣文物管理部門)’이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이 긴급조사에서 목걸이를 비롯하여 도굴당한 유물 일부를 회수하였다. 고분과 출토 유물은 거의 파괴된 상태였는데, 이후로도 발굴조사를 시행하지 않다가 2004년 또 다시 도굴사건이 발생하여 응급발굴을 시행하였다. 확인 가능한 6기의 적석총에 대한 조사를 통해 무덤 내부의 구조를 파악하고 32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고분군 인근에 혼강을 조망하는 용강북망루(龍崗北望樓)가 있어 망강루고분군으로 명명되었다.
무덤들은 강돌과 산돌들을 쌓아올린 적석총 형태를 띠고 있고 환인 중심지와 오녀산성(五女山城)이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발굴이전부터 고구려 무덤으로 추정되었다. 무덤들은 위에서 아래로 시간적인 차이를 두고 차례대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었고, 대부분 소형 단독 무덤으로 일반주민의 가족 묘역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출토된 유물들은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보이고 있어서 주목을 받았다. 출토된 구슬목걸이(珠飾)는 한대(漢代) 즉 기원전 2세기 전반부터 기원후시기에 해당하는 유물로 중국 동북지역 민족들의 유적에서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다. 청동방울(銅鈴)도 비숫한 유형이 요녕성 서풍(西豊)의 서차구묘(西岔溝墓)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망강루고분군의 연대를 전한(前漢) 중후기에서 후한(後漢) 초기 정도로 보기도 한다. 대체로 고구려가 환인에서 건국을 한 시점 전후이다.
한편 출토된 귀걸이 장식은 부여(夫餘)의 유물들과 유사하여 고구려 초기문화가 부여의 것이라는 주장의 증거로 이용되기도 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집단은 부여로부터 남하한 세력이고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같은 시기 무덤 형식은 부여는 토광묘(土壙墓), 고구려의 망강루고분군은 적석묘(積石墓)로 전혀 다르다. 또 무덤 내외부에서는 깨어진 토기가 다량 수습되었는데, 토기의 질이 환인지역 초기 철기시대의 것과 일치하는 등, 토착 문화요소를 받아들인 증거가 되고 있다. 이들을 종합해 보면 고구려는 부여의 문화와, 토착인들의 지역문화에 새로운 문화형식을 습합하여 고구려만의 독특한 문화로 완성시켜 나갔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망강루고분군은 고구려 초기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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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강루고분군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100_005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