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랄합아(實喇哈雅)의 지리와 생활환경, 특이한 풀에 대한 내용
사록해아(沙鹿海牙)
주 001
각주 001)
는 서쪽으로 살마아한과 500여 리 떨어져 있다. 성(城)은 작은 언덕 위에 있는데, 서북 방면으로 강(江)을 마주하고 있다. 강의 이름은 화참(火站)
주 002으로서 물길이 빠르고 급하여 부량(浮梁)주 003을 달아서 건너는데, 작은 배[로]도 [건널 수] 있었다. 남쪽으로는 산이 가까이 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산골짜기에서 거주하였다. 원림(園林)은 넓고도 무성하였다. 서쪽으로는 큰 모래섬이 있는데, 대략 200리 정도였다. 물이 없고, 간혹 있기도 했지만 짜서 마실 수 없었다. 소와 말이 잘못 마시면 곧 죽어버렸다. 땅에는 악취가 나는 풀이 자라는데, 높이가 1척(尺)이 조금 넘었고, 잎은 덮개 같았으며 그 즙액(汁液)을 삶으면 연고(軟膏)가 되니 [이것이] 바로 아위(阿魏)주 004였다. 또 작은 풀이 있는데, 높이는 1~2척으로서 무더기로 자랐으며, 늦가을에는 이슬이 응결(凝結)되어 이를 먹으면 꿀 같았고, 이를 삶아서 엿을 만드는데, 번인(番人)들은 [이를] 달랑고빈(達郞古賓)이라 불렀다.沙鹿海牙: 西域의 옛 地名으로 샤흐루히야(Shahrokia 혹은 Shahrokhia)를 가리킨다. 1404년 티무르(帖木兒)가 중국으로의 진공을 준비하면서 대군을 塔什干, 塞拉木과 샤흐루히야(沙鹿海牙)에 집결시킨 바 있다. 티무르는 후에 軍中에서 病死하였다. 永樂 11년(1413) 吏部 驗封司員外郞 陳誠 등이 西域으로 出使하면서 티무르 제국의 수도 哈烈을 향해 갈 때 샤흐루히야 등 티무르 제국의 屬地를 통과하여 갔다. 1447년 沙哈魯가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에 病死하자 그 아들 울룩벡(兀魯伯)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1461년에는 울룩벡의 아들이 반기를 들자 울룩벡은 샤흐루히야로 와서 避難하였으나, 1463년 투항하고 말았다. 1501년 昔班尼가 사마르칸트(撒馬兒罕)를 奪回하고는 호젠드강(錫爾河)을 건너 샤흐루히야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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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1)
沙鹿海牙: 西域의 옛 地名으로 샤흐루히야(Shahrokia 혹은 Shahrokhia)를 가리킨다. 1404년 티무르(帖木兒)가 중국으로의 진공을 준비하면서 대군을 塔什干, 塞拉木과 샤흐루히야(沙鹿海牙)에 집결시킨 바 있다. 티무르는 후에 軍中에서 病死하였다. 永樂 11년(1413) 吏部 驗封司員外郞 陳誠 등이 西域으로 出使하면서 티무르 제국의 수도 哈烈을 향해 갈 때 샤흐루히야 등 티무르 제국의 屬地를 통과하여 갔다. 1447년 沙哈魯가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에 病死하자 그 아들 울룩벡(兀魯伯)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1461년에는 울룩벡의 아들이 반기를 들자 울룩벡은 샤흐루히야로 와서 避難하였으나, 1463년 투항하고 말았다. 1501년 昔班尼가 사마르칸트(撒馬兒罕)를 奪回하고는 호젠드강(錫爾河)을 건너 샤흐루히야를 멸망시켰다.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색인어
- 지명
- 사록해아(沙鹿海牙), 살마아한, 화참(火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