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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경사(京師)로 돌아가는 상공(相公) 호환(胡煥)에게 감사하는 회게(回揭)

26. 回帖
삼가 높은 뜻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반갑게 만날 길이 없으니 부질없이 간절합니다. 척제(尺蹏)주 001
각주 001)
작은 종이에 쓴 편지 또는 쪽지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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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질문을 받들어 빈 것을 가득 채우는 정성을 보여주시니, 정성스러운 가르침에 놀라움이 많습니다. 불곡(不穀)은 그대에게서 이 내용을 받아 얼마나 다행인지요. 남창(南昌)에 원래 인걸이 많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고금에 서유자(徐孺子)주 002
각주 002)
서치(徐稚, 97~168)를 이른다. 자(字)는 유자(孺子). 후한시대의 인물로 남창 출신이다. 농사를 지으며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했으며 겸허한 자세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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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특출하지 못했는데 다시 그러한 사람을 냈습니다. 유 총융(劉總戎)이 멀리에서부터 폐방에 임하여 남쪽에 주둔하여 군사가 한창 성대한데 오히려 현인을 예우하고 군사(軍師)를 맞이했으니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들은 것입니다. 고명(高明)은 총융을 위하여 이역 땅 천 리로 건너오기를 어렵게 여기지 않으셨으니 훌륭한 두 분이 서로 돕는 의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군사에 관한 의논에 있어서는 오로지 기회를 보아 초박(勦撲)하는 것을 적을 깨끗이 쓸어 버리는 공[廓淸之功]으로 삼으셨으니 행해질 날이 올 것입니다. 매우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화의(和議)와 철병에 이르러서는, 소방이 그 잘못된 계책임을 잘 알고 있으나 감히 힘써 쟁변하지 못하고 걱정하는 마음만 간절했는데, 불의에 고명의 견해를 듣고, ‘(우리 의견과) 꼭 맞구나’, ‘가히 우리의 마음을 먼저 알았구나’ 하고 더욱 탄복했습니다. 폐방은 기자(箕子)가 책봉을 받은 이래, 자못 예양(禮讓)으로 다스리는 것을 알아서, 멀리 선조께서 열었을 때부터 맨 먼저 성조(聖朝)의 동점(東漸)하는 교화를 입었습니다. 그 이래 200년 오랫동안 승평(昇平)에 익숙해져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전쟁을 몰랐는데, 하루아침에 해구(海寇)가 갑자기 이르니 장사들이 칼날을 마주하자 궤산하여 삼도(三都)가 서로 이어 모두 함락되었고 종사가 한쪽 구석에 겨우 남았고 타다 남은 재 속에 백성들이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는 비록 삼한(三韓)의 ‘양구지회(陽九之會)’주 003
각주 003)
불운한 운수라는 의미이다. 『漢書』 卷24上 「食貨志」 4 上 “予遭陽九之阨 百六之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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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임금과 재상은 운명을 말하지 않는다는 옛적의 그런 말이 있습니다. 불곡이 폐방을 외람되이 맡았는데, 또한 임금으로 인하여 인사가 미진하며 무략이 떨쳐지지 못하는 것을 어찌 감히 기수(氣數)를 탓할 것이며 자책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성천자(聖天子)의 은혜가 자식을 보듯 깊어 곡진히 긍휼을 더하여 군사를 내어 구제해 주시고 한번 북소리로 평양을 회복해 주셨고, 남은 위엄이 진동하자 흉추(兇醜)가 금세 사그라지며 일곱 도의 판적(版籍)이 거의 되돌아가 왜적이 머물러 있는 곳은 단지 경상도 한쪽 구석뿐입니다. 황령을 빌리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이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대궐을 북망(北望)하며 오로지 분골하여 보답하고자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의 일을 다하여 하늘의 뜻을 돌리고 천명에 짝하여 복을 구하라고 하신 말씀은 실로 오늘날의 급무입니다. 불곡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감히 받들어 주선하지 않겠습니까. 어진 이를 써서 다스림을 도모하고 간사한 자를 멀리 하고 숨은 이를 찾아내며 무예를 파하고 민력에 너그러이 하는 것, 이 한마디가 하나의 약이며 모두 증세에 따른 처방입니다. 이미 어진 분의 말씀을 입었으니 장차 이로움이 넓은 날을 만나면 그 은덕 입음은 클 것입니다.주 004
각주 004)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년 조에 “어진 이의 말은 그 이로움이 넓도다(仁人之言 其利博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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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방은 이 왜적이 대개 만세토록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이나 생각건대 힘이 부족할 뿐입니다. 어찌 감히 구각(晷刻)하여 잠시라도 와신상담하는 마음을 해이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폐방을 위하는 고명의 계책이 한번 여기에 이르니 더욱 마음에 새긴 감사함을 무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병이 나은 것을 보자마자 이어서 돌아가신다니 천 리의 먼 길에 천만 가지로 기체를 살피셔서 사모하는 마음에 부응해 주십시오. 마음의 정미함을 말로 다할 수 없으니 오직 헤아려 살펴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 각주 001)
    작은 종이에 쓴 편지 또는 쪽지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서치(徐稚, 97~168)를 이른다. 자(字)는 유자(孺子). 후한시대의 인물로 남창 출신이다. 농사를 지으며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했으며 겸허한 자세로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불운한 운수라는 의미이다. 『漢書』 卷24上 「食貨志」 4 上 “予遭陽九之阨 百六之會.” 바로가기
  • 각주 004)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1년 조에 “어진 이의 말은 그 이로움이 넓도다(仁人之言 其利博哉).”라고 하였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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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京師)로 돌아가는 상공(相公) 호환(胡煥)에게 감사하는 회게(回揭) 자료번호 : sdmg.k_0002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