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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劉綎)과 회동하여 왜적의 공격 사실과 천조(天朝)의 군대를 살해하고 약탈한 사실 등을 조사하여 보고해 달라며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가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21. 都司因韓撫院案驗咨令本國塘報倭情
  • 발신자
    요동도지휘사사
  • 발송일
    1593년 12월 25일(음)(만력 21년 12월 25일)
발신: 요동도지휘사사
사유: 해방(海防)을 강화하라는 칙유로써 전적으로 책성(責成)하게 할 일입니다.
 
[요동도지휘사사] 조선국왕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조선국왕] 본사(本司)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요동도지휘사사] 전사(前事)주 001
각주 001)
본 문서의 사안인 ‘爲增載海防勅諭以專責成事’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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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서 흠차순무요동지방찬리군무겸관비왜도찰원우첨도어사 한(취선)의 안험(案驗)을 받았습니다.
[한취선] 갖추어 보내온 회자(回咨)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조선국왕] 이 왜적들이 본년 5월 이후부터 연해 일대의 김해(金海)‧울산(蔚山)‧창원(昌原)‧양산(梁山)‧동래(東萊)‧웅천(熊川)‧기장(機張)‧언양(彦陽)‧울산의 서생포(西生浦)‧부산포(釜山浦) 등처에 머물면서 성채를 견고하게 쌓고서 그 나라의 군량과 병기를 옮겨둔 것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6월의 각기 다른 시기에 대병력으로 초계(草溪)‧진해(鎭海)‧의령(宜寧)의 경계를 약탈하여 불사르고, 함안군(咸安郡)을 공격하여 함락했습니다. 또 진주(晉州)를 포위하였는데, 이는 한 도의 보장(保障)으로서 성지가 험하고 견고하여 전에 누차 패전하였으므로 왜적 무리가 보복할 생각을 가지고서 있는 힘을 다해 깨뜨려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과 절도사(節度使) 최경회(崔慶會) 등 이하의 관리와 군민 수만 명을 도륙했습니다. 이어서 전라도 동쪽 경계로 건너갔다가 곧 다시 전항(前項)의 지역으로 돌아와서는 예전과 같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또 거제현(巨濟縣)과 천성진(天城鎭)‧가덕진(加德鎭)을 점거하여 선박을 건조하고 기계를 수선하는데, 흉추(兇酋) 히데요시(秀吉)가 대군을 통령하여 대마도‧나고야 지방에 주둔하면서 여러 추장을 호령한다고 합니다. 간사한 음모가 더욱 촘촘해지고 흉봉은 더욱 방자해지니 동쪽으로 경주(慶州)에서부터 서쪽으로 진주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수백 리가 날마다 침해받고 있습니다. 11월초 2일에는 또 양산군의 치소(治所)로부터 진격하여 경주 지역을 침범하고, 천조 군대의 영채 후면으로 돌아 나와 안강(安康)‧영일(迎日) 사이를 나누어 약탈하였으며 천병 200여 명을 살해하고 군량 800여 석을 빼앗아 갔습니다. 근래 주회인(走回人)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주회인] 히데요시(秀吉)가 내년 3월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장자를 관백(關白)으로 삼고 그를 대신하여 무리를 거느려 여러 적을 아울러 독려하게 하고 상국(上國) 지방을 제멋대로 침범하고자 합니다. 저축해 둔 군량이 동래에 2만여 석, 부산에는 5만여 석, 좌수영(左水營)에는 300여 석이 있는데, 각각 창고를 설치하고 병력을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국왕] 모두 긴급한 소식이라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번거로이 바라건대, 속히 순무(巡撫)와 순안(巡按) 아문에 정보(呈報)하시고 이를 근거로 황제[天聰]께 속히 정벌해서 짓밟자고 전주(轉奏)해 주셔서 훗날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왜적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힘을 모아 왔으니 반드시 매우 방자하고 흉악할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범상하게 여기다가 지연되어 풍신(風汛)의 계절이 이르게 되면, 단지 소방(小邦)의 유민(遺民)들만 도륙의 화에 다시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 머물면서 방수(防守)하고 있는 관병(官兵) 또한 충돌해 오는 것을 막아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으로 회답하니 청컨대 살펴서 전보(轉報)해 주십시오.
[요동도지휘사사] 자문이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이를 받고서 이미 관련된 문서를 찾아보았는데, 본년 12월 초7일에 받든 흠차순무요동지방찬리군무겸관비왜도찰원우첨도어사 한(취선)의 헌패(憲牌)가 있습니다.
[한취선] 살펴보건대, 본원(本院)은 칙서를 받들어 ‘비왜(備倭)’를 겸관하는데 근래 또 병부(兵部)에서 당보(塘報)에 관한 일을 다시 의논했습니다.
[병부] 지난번 순무와 총병이 (올린 내용이) 서로 달랐으므로 특별히 (황제께) 제본을 올려 경략에게 예속시켜 서로 미루지 못하도록 했는데, 지금까지도 일이 여전히 미덥지 못하니 주본으로 보고한 내용이 모두 합당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 순무와 총병으로 하여금 옛 당보를 살펴서 일체로 내각(內閣)과 부과(部科)로 보고하게 해서 자세히 조사하는 데 편리하도록 하십시오.
[한취선] 황제의 뜻을 받들어 자문을 보내니 이를 살펴 준행하여 관원과 야불수(夜不收)주 002
각주 002)
명의 장수가 거느린 병사 가운데 사적으로 부리는 사람들을 이른다. 대체로 파발, 정탐, 문서의 전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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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책임을 지워 파견하고 가서 파발과 당보로 전하게 하는 것 외에, 마땅히 (조선으로 하여금) 당보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갖추어 본사에 (문서를) 보내니 헌패의 사리를 살펴서 즉시 조선국왕에게 자문을 보내어, 무릇 크고 작은 왜정(倭情)과 군무(軍務) 그리고 지방의 일들을 모두 갖추어 열거하게 하고 파발과 당보를 맡은 관원과 야불수에게 내주어 본원에 전(轉)해 보냄으로써 이에 근거하여 적절히 헤아려 처리하고 전보할 수 있게 하십시오.
[요동도지휘사사] 이를 받고 그대로 귀국(貴國)에 자문을 보내서 무릇 크고 작은 왜정과 군무 그리고 지방의 일들을 모두 갖추어 열거하여 파발과 당보를 맡은 관원과 야불수에게 내주고 순무와 총병 아문에 전하여 보내게 함으로써 내각과 육부 및 육관에 전보(轉報)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조치한 후 이번에 위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문을 조사해 보니, 「5~6월 이후 왜적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 곧 경략(經略)과 제독(提督) 두 아문이 그곳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어찌 보고하여 알리지 않았습니까? 12월 사이에 이르러서는 흉추가 대적하여 천조의 군병 200여 명을 살해하고 군량 800여 석을 약탈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주회인이 말하기를, “히데요시(秀吉)가 내년 3월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맏아들로 하여금 그 대신 관백(關白)으로 삼고 (자신은) 무리를 이끌고 여러 왜적들을 아울러 독려하여 상국(上國) 지방을 이어서 약탈하고자 합니다.”라고 했는데, 동래와 부산 등처에 군량을 모아 두고 있는 정황과 사유를 근처의 부장 유정(劉綎)이 방수하는 곳에서는 어찌 문서를 갖추어 보고하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다만, 무원이 파견한 관원과 야불수가 귀국의 일대 지방에서 파발과 당보로 이러한 군무를 전해 왔으니, 귀국에서는 이치상 마땅히 이에 의거하여 통보해야 합니다. 자문 내의 일체 정형과 상황을 살펴보건대, 급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급무를 제(題)로 청한 일인 만큼, 마땅히 자문을 보내어 함께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에) 합당한 자문을 보내니 귀국에서는 번거롭더라도 부장 유정과 회동하여 속히 11월 초2일 등에 전항에서 언급한 왜적의 흉추가 경주 등처 지역으로 진격해서 공격한 것이 사실인지의 여부와 천조의 군대와 대적하여 200여 명을 살해하고 군량 800여 석을 약탈한 것이 사실인지의 여부, 히데요시(秀吉) 부자(父子)가 상국 지방을 공격하겠다고 성언(聲言)한 것이 사실인지의 여부, 그것이 누구의 말에서 나온 것인지, 동래‧부산‧수영(水營)에 군량을 모아 두었다는 것은 누구의 보고인지, 옳고 그름의 진실을 바라건대 속히 갖추어 조사하여 명백히 열거하고, 파발과 당보의 관원과 야불수에게 급부(給付)하여 순무와 진수총병의 아문에 전송하여 부(部)에 보고하도록 해 주시고 참월(攙越)하는 데 이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조선국왕에게 보냅니다.
 
만력 21년 12월 25일.

  • 각주 001)
    본 문서의 사안인 ‘爲增載海防勅諭以專責成事’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명의 장수가 거느린 병사 가운데 사적으로 부리는 사람들을 이른다. 대체로 파발, 정탐, 문서의 전달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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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劉綎)과 회동하여 왜적의 공격 사실과 천조(天朝)의 군대를 살해하고 약탈한 사실 등을 조사하여 보고해 달라며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가 조선국왕에게 보낸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2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