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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흉적(凶賊)이 관문(關門)과 나루터를 드나들며 간첩짓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조선국왕이 총독병부(總督兵部)에 보낸 자문(咨文)

18. 本國請勿許參將沈帶同倭使入內地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4년 2월 18일(음)(만력 22년 2월 18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흉적(兇賊)이 (명 사신을) 근수(跟隨)하여 관문과 나루터[關津]를 건너지 못하게 함으로써 간첩[姦細]들이 돌아다니는 근심을 막아 달라는 일입니다.
 
[조선국왕] 의정부(議政府)에서 장계를 올렸습니다.
[의정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한효순(韓效淳)의 정(呈)을 받았습니다.
[한효순] 본년 정월 25일, 적병 12명이 심 참장을 따라서 웅천현(熊川縣)의 노영(老營)으로부터 와서 핑계를 대며 말했습니다.
[차왜] 관백(關白)이 위임해서 파견하여 항표(降表)를 공경히 받들고 상국(上國)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의정부] 이어서 병조(兵曹)의 정을 받았습니다.
[병조] 심 참장이 대동한 왜자(倭子) 12명은 억지를 부리며 역마를 타고 참장을 뒤따라 함께 출발했습니다.
[의정부] 이를 받고 가만히 살펴보건대, 이 왜적은 작년 6월부터 경상도의 김해(金海)‧울산(蔚山)‧양산(梁山)‧동래(東萊)‧기장(機張)‧부산(釜山)‧천성(天城)‧가덕(加德) 등 바닷가의 요해처 20여 곳을 나누어 점거하고서 성을 쌓고 가옥을 지으며 군량을 운반하고 병기를 쌓아 두고 교대로 방수하면서 이로써 오래 머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흉악한 추장 히데요시(秀吉)가 또 대병력을 이끌고 대마도와 나고야 지방에 와서 주둔하면서 여러 추장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또 전라도의 서쪽 지역을 범하고자 본 도 부근의 거제현(巨濟縣) 지역에 많은 병력을 보태서 모아 두고 선척을 건조하게 하였는데, 정탐한 보고들을 차례대로 받아 보니 성식(聲息)이 십분 긴급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을 보내어 「항표를 보내겠다.」라고 하면서, 그들의 무리를 파견하여 심 참장을 따라가서 내지[腹裏]로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그들의 성질은 원래 흉악하고 교활하니 오로지 간첩짓을 하려는 것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들의 간사한 꾀와 속이려는 계책은 거짓으로 납관(納款)하겠다면서 실제로는 염탐하려는 것입니다. 삼가 왜노의 조공로[朝貢之路]를 조사해 보니, 일찍부터 요동(遼東)이나 계주(薊州)를 경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천조의 군대에 항거하여 대적했으며 바야흐로 차례대로 침입하고자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적왜 소서비(少西飛) 등 33명이, 이번에는 앞서 언급한 바의 왜적 12명이 계속해서 근수한다면서 함께 오려고 하니 더욱 꾸짖어 금지시키지 않는다면 불편함이 있을 듯합니다. 이번 자문의 사항에 대해서 총독부원(總督部院)주 001
각주 001)
여기서 ‘部院’은 6부와 도찰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당시 조선에 파견된 경략 송응창과 총독 고양겸 등 명군 지휘부가 6부와 도찰원의 관직을 겸한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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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자문을 갖추어 보내 심 참장에게 급히 유시하도록 간청하고 원래 데려오던 왜인들은 연로의 관사(官司)에서 감후(監候)하게 하거나 혹은 별도로 처치함으로써 근수한다면서 (조선) 내부로 들어와 간첩짓하려는 그들의 꾀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조선국왕] 갖추어 온 장계를 받고서 본직이 소방(小邦)의 연해 일대를 자세히 살펴보니, 흉모(兇謀)가 백 가지로 나와서 교사스러움을 헤아릴 수 없는데 지금 심 참장이 그들 무리를 12여 명씩이나 함께 대동하고서 바칠 항표를 가지고 간다고 말하며 전혀 막거나 금지시키지 않고서 소방의 경읍(京邑)을 거쳐서 장차 상국 지방으로 간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방의 경상도 연로(沿路)부터 평양(平壤)에 이르는 지역은 저들에 의해 잔파되어 온통 가시덤불만 가득하며, 순안(順安)으로부터 서쪽은 조도(調度)에 지쳐 열 집 가운데 아홉은 비었으니, 저 왜적들이 어찌 그 능멸함을 이롭게 여겨서 다시 집어삼킬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이전에는 이 왜적들이 일찍이 요동과 계주를 경유하지 않았으며 다만 영파(寧波)의 바닷길을 따라서 10년에 한 번 조공(朝貢)할 뿐이었으니 천조(天朝)에서 그들을 대하는 전례가 미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사마귀처럼 천조의 군대를 가로막고 서로 대치하고 있으면서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말하고 항표를 바친다는 핑계를 대어 가며 배은망덕한 무리로 하여금 멀리 ‘단차지사(單車之使)’를 따르게 하니, 강화한다고 속여서 내부를 드나들며 몰래 엿보아 간사한 꾀를 이루고자 하는 계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록 상국의 장려한 성곽과 성대한 군병으로 그 이목(耳目)을 두려워하게 하더라도, 산과 하천의 험하고 편평한 형세와 도로의 굽고 곧은 상태, 방비의 소루하고 조밀한 정도, 인정(人情)의 강하고 약한 실태를 그들이 또한 훤히 알아서 군침을 흘리며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도 불편해질 듯합니다. 번거롭겠지만 바라건대, 부원(部院)은 그들의 간사한 정형을 통촉하셔서 흉악한 무리를 준절하게 배척하고 급히 심 참장에게 유시하여 원래 데려가기로 했던 표문을 가진 왜적들을 연로의 관사에서 감독하게 하시고, 혹 별도로 처치하여 관문과 나루터를 넘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간첩짓하는 염려를 막아 주십시오. 또한 오가는 원역을 금지시켜서 이후에는 흉적을 대동하고 내지로 함께 들어와서 우리의 허와 실을 엿보지 못하게 해 주신다면 더없이 다행스러울 것입니다. 이에 마땅히 자문을 보내니 청컨대 살펴 주십시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문을 총독병부에 보냅니다.
 
만력 22년 2월 18일.

  • 각주 001)
    여기서 ‘部院’은 6부와 도찰원을 통칭하는 말이다. 당시 조선에 파견된 경략 송응창과 총독 고양겸 등 명군 지휘부가 6부와 도찰원의 관직을 겸한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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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적(凶賊)이 관문(關門)과 나루터를 드나들며 간첩짓하는 것을 막아달라며 조선국왕이 총독병부(總督兵部)에 보낸 자문(咨文) 자료번호 : sdmg.k_0002_0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