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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기요미즈데라

淸水寺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
  • 원소장처
    京都府 京都市 東山区 清水1丁目 294
  • 시대
    발해
  • 유형
    사찰
유적개관
기요미즈데라[淸水寺]는 쿄토가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인 778년에 세워졌다. 기요미즈데라를 창건한 승려 엔친은 당시 수도였던 나라를 떠나 히가시야마[東山] 36봉우리 중 하나인 오토와산에 도착해서 관음보살을 만나는 이적을 경험했다. 자신이 본 관음의 모습을 새긴 관음상을 만들고 작은 암자를 세웠는데, 이것이 기요미즈데라의 시초이다. 당시 지카노우에노 다무라마루라는 장군이 에조지역을 정벌하기 전 엔친을 찾아와 관음보살의 가피를 구했는데, 정벌에 성공한 뒤 기요미즈데라를 크게 세우고 관음상을 다시 봉안했다고 한다. 기요미즈데라의 핵심은 그 관음상을 봉안한 기요미즈 본당의 무대조(舞臺造)이다. 인왕문은 무로마치 시대(14~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요미즈데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나머지 건축물은 1629년 대화재 이후 1633년에 재건된 것이다. 개산당은 전촌당(田村堂)이라고도 하며, 이 절을 창건한 엔친의 상을 봉안한 건물이다. 개산당의 외벽은 격자로 된 벽면을 상하 2단으로 나누어 필요에 따라 수평으로 열어 빛을 조절하는 일본의 전통건축기법인 시토미라는 창으로 되어 있다. 본당은 개산당에서 회랑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비불(秘佛)관음상을 봉안한 거대한 본당은 산비탈을 이용해 세운 ‘무대조’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이 특이한 건축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이다. 기요미즈데라는 관음보살을 모신 사찰인데, 『법화경』에 따르면, 관음보살은 푸른 남해바다에 높게 솟아오른 보타락가산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무대조는 관음이 사는 보타락가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형상을 나무 축대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기요미즈데라만이 아니라 관음을 주불로 모신 엔랴쿠지[延曆寺]의 ‘요도가와주도 ’같은 건물에도 기요미즈데라와 같은 무대조 양식이 나타난다. 본당은 묵직한 기둥 일곱 개가 도열한 예배 공간, 매끈하게 잘 닦여진 마루바닥, 화려한 세공을 한 철조등이 잘 어우러져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절의 창건시 엔친이 만들었다는 관음상은 함(函)안에 모셔져 평소에는 비불(秘佛)로 공개하지 않지만, 33년에 한 번씩 공개된다.
해설
교토[京都]시 히가시야마[東山]구 동쪽의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철도나 지하철역은 물론 버스정류장에서도 20분이 넘게 걸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은 불편하지만, 1년 내내 관광버스 등으로 붐벼서 매우 혼잡한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기요미즈데라[清水寺]는 쿄토[京都]가 일본의 수도가 되기 전인 778년에 세워졌다. 기요미즈데라를 창건한 승려 연진(延鎭)은 당시 수도였던 나라[奈良]를 떠나 히가시야마[東山] 36봉우리 중 하나인 오토와[音羽]산에 도착해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자신이 본 관음의 모습을 새긴 관음상을 만들고 작은 암자를 세웠는데, 이것이 기요미즈데라의 시초이다. 당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루[坂上田村麻呂](758∼811)라는 장군이 에조[蝦夷] 지역을 정벌하기 전 연진을 찾아와 관음보살의 가호를 구했는데, 정벌에 성공한 뒤 기요미즈데라를 크게 세우고 관음상을 다시 봉안했다고 한다.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루는 811년에 후지와라노 가도노마로[藤原葛野麻呂](755∼818), 스가노노 마미치[菅野真道](741∼814) 등과 함께 발해의 사신을 맞이하여 연회를 주관하였다고 한다.
개창 이래 몇 번이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에도[江戶] 시대 초기(1631∼1633)에 3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1604∼1651)에 의해 재건되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본당을 비롯하여 인왕문, 서문, 삼층탑, 종루 등의 중요문화재(重要文化財: 한국의 보물에 해당)를 보유하고 있고,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로 등록되었다. 인왕문은 무로마치[室町] 시대(1336∼1573)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요미즈데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기요미즈데라의 핵심은 그 관음상을 봉안한 본당(本堂)의 무대(舞臺)이다. 본당은 1633년에 재건되었고 정면 36m, 측면 약 30m, 높이 18m의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건물은 우아한 곡선을 보여주는 우진각 지붕의 구조로 되어있고 노송나무로 만들어진 지붕과 처마의 덧문 등은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의 궁전과 귀족 저택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본당에는 창건할 때 연진이 만들었다는 비불(秘佛) 십일면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으나, 함 속에 모셔져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다가 33년에 한 번씩 공개된다. ‘기요미즈[清水]의 무대’는 높이가 약 12m나 되는 거대한 느티나무 기둥을 사용하여 ‘가케즈쿠리[懸造: 산의 경사면에 기대어 짓는 방식]’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하부구조를 만든 다음 410개 이상의 노송나무 판자를 깔아 마무리한 거대한 목조 구조물이다. 이것은 관음이 사는 보타락가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형상을 나무 축대로 표현한 것이다. 옛날부터 과감한 결단을 두고 ‘기요미즈의 무대에서 뛰어내린다는 생각으로…’라는 말이 있는데 그 어원이 이곳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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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030_001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