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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삼택련(三宅連; 미야케노무라지)

#신라(新羅)
삼택련(三宅連; 미야케노무라지)
 신라국왕(新羅國王)의 아들 천일모명(天日桙命)의 후손이다.
 
【주석】
1. 삼택련(三宅連)
삼택련의 씨명은 둔창(屯倉)의 관리자로부터 유래한다. 이 삼택련씨(三宅連氏)는 『일본서기』안한기(安閑紀) 원년(534) 10월조에 보이는 섭진국(攝津國) 난파둔창(難波屯倉)과도 관련이 있는 씨족일 것이다. 동 대화(大化) 2년(646) 정월조에 나오는 난파협옥부읍자둔창(難波狹屋部邑子屯倉)과 같은 곳이다. 섭진국 서성군(西成郡) 찬양향(讚楊鄕)으로, 현 대판부(大阪府) 남구(南區) 고진정(高津町) 부근이다. 『일본기략(日本紀略)』 연희(延喜) 3년(903) 5월조에 보이는 섭진국 삼택문신(三宅門神)은 삼택련의 씨신(氏神)으로 생각된다.
삼택련씨 일족으로는 『일본서기』 천무(天武) 원년(672)조에 임신의 난 때에 대해인황자(大海人皇子)인 천무천황 편에 선 이세국수(伊勢國守) 삼택련석상(三宅連石床)이 있으며, 그는 천무 9년에 임신의 난의 공으로 사후 대금하의 관위로 추증되었다. 동 천무 4년에는 소금하 삼택길사(三宅吉士)가 부사로서 신라에 사절로 파견되었고, 동 12년(684)에 삼택길사는 다른 14씨와 함께 연(連)으로 개성되었다.
『속일본기』 연력(延曆) 3년(784) 10월 무자조에는 삼택련립웅마려(三宅連笠雄麻呂)가 모아놓은 도곡 10만 속을 가난한 자의 구휼과 도로와 다리 조영을 위해 희사했다는 이유로 종8위상에 서위되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평성궁 출토 목간(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 1969, 『平城宮木簡』 6)에도 화동(和銅) 6년(713) 5월 10일부의 삼택련족도(三宅連足島)가 나온다.
천평(天平) 2년(730) 2월 21일부 「관세음사조량노비예문(觀世音寺早良奴婢例文)」(『대일본고문서』14-268~272)에 축전국(筑前國) 조량군(早良郡) 액전향(額田鄕)에 거주하는 삼가련식도(三家連息島), 삼가련풍계(三宅連豐繼) 부자는 관세음사에 보시하기로 했던 도곡 4,600속 대신에 노비 5인을 바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삼가련은 삼택련을 말한다. 도곡 4,600속이 은 115냥에 준한다는 주기와 함께 노비주 삼가련풍계의 서명과 증인으로 조량승족도(早良勝足島) 등의 서명이 있다.
2. 천일모명(天日桙命)
천일모명에 대해서는 좌경 제번(하) 「귤수(橘守)」 조(808) 천일모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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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택련(三宅連; 미야케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30_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