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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도승지 홍귀달과 영안도 경차관 조위가 들어와 삼봉도에 유서 내리는 일을 의논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479년 9월 11일(음)
  • 출전
사료해설
삼봉도 주민들을 쇄환하는 과정에서 조정에서 삼봉도 경차관 조위와 삼봉도에 유서(諭書)를 내리는 것과 관리 파견에 관한 사항을 의논한 내용이다. 삼봉도 토벌에 앞서 성종은 세종대에 무릉(茂陵; 울릉도)으로 도망해 들어간 자가 모두 처벌을 받았으므로 삼봉도의 섬주민들도 정부의 추쇄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귀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삼봉도 토벌 이유를 잘 설명하여 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육지로 돌아올 수 있게 유서(諭書)를 작성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정부가 동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국민 관리에 적극적이었음을 시사해준다.
원문
○都承旨洪貴達啓: “永安道敬差官曺偉, 欲啓事。” 上命貴達, 與俱入。 貴達啓曰: “永安道逃流人推考, 宜別傳事目。 令在逃見捕而囚者, 從願以遣之, 則誰不樂從? 但以言諭之, 則彼必謂守令私言, 或不歸順。 且者道人心愚直, 雖反覆開諭, 鮮能解惑, 宜下諭書以示之, 彼雖不解文字, 倘見御印, 庶或感激, 而來歸矣。” 上曰: “於彼小民, 可降諭書乎? 貴達曰: “向者李施愛之叛, 世祖累下諭書以諭民, 果自解惑, 去逆效順, 今下諭書, 何妨?” 上曰: “世宗朝, 逃入茂陵者, 皆伏其辜, 彼若聞焉, 懷疑不返者有之。 姑草諭書。” 曺偉啓曰: “若遣人, 而見拘於彼, 則還報無日, 請別遣一二人, 乘一鼻居刀船, 托稱採海, 漂風觀變而來何如?” 上曰: “不可遣二船也。” 偉啓曰: “雖降諭書, 臣亦私通書契乎?” 上曰: “否。” 偉啓曰: “今者秋風不止, 波浪動盪, 彼人等, 辭以船不得通, 不可發程, 則强遣之乎? 且其人之供招, 皆云: ‘二月三月往還, 未嘗秋節往還。’ 今將何如?” 上曰: “二月雖風亂亦往, 今何不可?” 偉啓曰: “遣人於三峯, 而日月雖久, 必待回報, 然後上來乎?” 上曰: “其待見之。”
번역문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영안도 경차관(永安道敬差官) 조위(曺偉)가 일을 아뢰고자 합니다.”
하니, 임금이 홍귀달에게 명하여 함께 들어오게 하였다. 홍귀달이 아뢰기를,
“영안도의 도망해 흩어진 사람을 추고(推考)하는 데에 따로 사목(事目)을 전하여야 마땅합니다. 도망하였다가 붙잡혀서 갇힌 자로 하여금 원하는 데 따라 보내면 누가 기쁘게 따르지 아니하겠습니까? 다만 말로써 타이르면 저들이 반드시 수령(守令)의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고 하여 혹시 귀순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 그 도(道)의 인심이 우직(愚直)하여 아무리 반복해 타이를지라도 능히 의혹을 풀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유서(諭書)를 내려서 보이면 저들이 비록 글을 알지 못하더라도 만약 어인(御印)을 보면 혹시 감격하여 돌아올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저 소민(小民)에게도 유서(諭書)를 내릴 수 있는가?”
하였다. 홍귀달이 말하기를,
“전자에 이시애(李施愛)의 반란(叛亂)에 세조께서 여러 번 유서를 내려서 백성을 효유하자 과연 저절로 의혹이 풀려서 반역을 버리고 순종하기에 힘썼으니, 이제 유서를 내리는 것이 무엇이 방해롭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세종조(世宗朝)에 무릉(茂陵)으로 도망해 들어간 자가 모두 처벌을 받았으니, 저들이 만약 들으면 의심을 품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우선 유서를 초(草)하라.”
하였다.
조위(曺偉)가 아뢰기를,
“만약 사람을 보냈다가 저들에게 구속을 당하면 돌아와 보고할 날이 없을 것이니, 청컨대 한두 사람을 따로 보내어 한 척의 비거도선(鼻居刀船)을 타고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바람을 만났다고 칭탁하고 변(變)이 있는 것을 보고 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두 척의 배를 보낼 수 없다.”
하였다.
조위가 아뢰기를,
“비록 유서를 내릴지라도 신 또한 서계(書契)를 사사로이 통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니다.”
하였다. 조위가 아뢰기를,
“이제 가을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여 파도가 이는데, 저들이 배가 통래하지 못하여 길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면 억지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또 그들의 공초(供招)에 모두 말하기를, ‘2월·3월에는 갔다가 왔으나 가을에는 일찍이 갔다가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데, 지금 장차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2월에는 비록 바람이 어지러울 때라도 갔는데 지금은 어찌 못하겠는가?”
하였다. 조위가 아뢰기를,
“사람을 삼봉도(三峯島)에 보내고 날짜가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회보를 기다린 뒤에 올라와야 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기다려 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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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홍귀달과 영안도 경차관 조위가 들어와 삼봉도에 유서 내리는 일을 의논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