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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바위그림의 의미와 해석의 문제

Ⅵ. 바위그림의 의미와 해석의 문제

○ 바위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그 용도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이런 유형의 역사적인 근원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항이다. 현대인들의 관념과 고대인들의 세계관 사이에는 큰 시간적 차이로 인하여 이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바위그림은 고대인들이 그 시대에 존재한 특수한‘언어’를 이용하여 당대의 특성을 시각적인 방법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으로, 독특한 유형의 고고학적 자료이다. 그러므로 이‘언어’를 읽고 해석하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바위그림을 해석함으로써 선사시대 사람들의 논리를 알 수 있고, 그에 부합하는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위그림을 해석하는 방법은 20세기 중반에 A.루로아-구랑에 의해 창안되었으며, 이보다 조금 늦게 K.레비-스트로스와 그 밖의 많은 학자들(아나티, 데블레트, 쉐르, 베드나릭, 프란크포르 등)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들이 제기되었다.
그들은 바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어떤 논리로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 곳에서 발견된 유물들 그리고 문화적 환경과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바위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정보를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형 예술의 구조적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는 구상의 의도와 구도 분석, 바위의 특성과 특질 고려, 특수한 표현 양식 구별, 가축의 형태, 고고 및 역사학적 지식(전쟁 장면에서 나타나는 전투, 전술의 특성, 무기의 유형, 시대별 복식 등), 인류 문화적 상황, 제작 행위 자체에 대한 심리적 측면의 특수성 연구 등 총체적 접근 방법이 요구된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해석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자 한 방법은 M. L. 포돌스키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그의 이론적 토대는 암각화의 세부 구조 파악과 분석 그리고 구성 원칙을 밝히는 것 등이다(포돌스키, 2004, pp. 13-16). 또한 비록 그림 속에서 똑 같은 기호가 그려져 있거나 같은 기호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그림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부호 체계를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유사한 조형 텍스트이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에프스키, 1999, p. 121).
제작자-화가에게는 만들고자 하는 것을 구체화하기 위한 총체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지식과 예술적 기술(예를 들면, 대장장이나 도공과 같은)을 익히고 있는 화가들을 특수 계급으로 분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바이부린, 1993, p. 3).
1. 석기시대의 암각화 내용 분석
○ 확실한 석기시대의 바위그림 가운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해안의 바위에 새겨진 뱀과 바위구멍 그림이다. 고대인들은 코스쿠드이크 마을 주거지의 벽면에 이런 유형의 그림들을 그렸는데, 아마도 의식을 거행할 때에 이 그림들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선사시대의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뱀 형상은 물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코스쿠드이크의 그림들은 매우 상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 속에 표현된 물과 뱀은 다산을 구체화한 것이며, 영원불멸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뱀 형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의 원천인 물을 획득하고 또 보존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이념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생활의 필요성은 뱀 형상과 연관된 복잡한 관념 체계, 의식과 의례 행위를 발생시켰다. 뱀 형상은 그 다음 시기의 암각화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에네올리트나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 속에서 살필 수 있는 몇 가지 장면 가운데는, 동물을 공격하는 뱀 형상이 우세하다. 이는 아마도 물과 연관시키고 신성시했던 뱀과 관련된 이전의 관념 체계가 변하였으며, 뱀이 어둡고 불가사의한 지하 세계의 존재라는 관념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엠바 강 상류 지역의 톨레우불락 동굴에 그려진 상징적인 기호는 아마도 토양의 비옥함과 삶의 활력을 관장하는 물 숭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동물이나 인간 형상의 주제가 올렌타 유적지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러 주제들은 이후에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그림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2.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형상과 주제들
1) 기호와 상징
카자흐스탄 동부의 아크바우르 동굴 벽화 속에 그려진 상징 기호들은 에네올리트 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물체의 표면에 가느다란 도구로 새긴 기호와 상징 무늬들은 이것보다 더 이른 시기(예를 들면, 보타이 시기의 기호 등)의 유물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아크바우르 동굴 벽화에 그려진 문양의 대부분은 십자형 기호인데, 그중의 몇 개는 끝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사각형 속에 그려진 십자형의 기호도 하나가 확인된다. 그 밖에도 꺾어진 선 세 개가 그려져 있는데, 이 가운데 두 개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두 줄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십자형 기호도 두 개가 있는데, 이들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또한 그림 속에는 보존 상태가 나쁜 격자형 무늬가 있다. 삼각형, 직선, 기타 기하학적 기호들(직사각형과 비슷한 무늬 등)도 몇 개가 살펴진다.
상징 기호들은 동굴의 천장과 벽에 가득 그려져 있으며, 해가 질 무렵에 이곳을 밝혀 주는데, 이러한 점이 이곳을 고대의 천문 관측과 더불어 의례를 거행하였던 신성한 장소라고 해석할 수 있게 해 주었다(마르사돌로프·사마쉐프, 2000).
아크바우르 동굴 벽화
2) 태양 모티프
청동기시대에는 많은 수의 상징 기호들이 다양하게 새겨졌는데, 만(卍)자 모양을 제외하고는 그것들을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어서 일반적으로 이들을 태양 모양의 기호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는 복잡한 나선무늬(카라타우의 도상들), 미로 또는 동그라미(쿨자바스이, 사르이콜, 돌란알르이), 격자무늬(아이으르타우, 이르티시 강 상류, 노보-카나이카, 자스이바이) 등이 있다.
이와 같은 태양 모티프의 형상들은 영국의 여러 섬들에서부터 중부 유럽, 스칸디나비아, 시베리아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청동기시대에 존속했던 다양한 문화 가운데서 폭넓게 이용되었으며, 이 시기의 태양 숭배 사상과 함께 공동체의 관념 형성과 기호 인식 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미 청동기시대에는 사회의 분화, 가축, 토지, 광물, 채굴장, 신성한 물건, 성스러운 장소 등에 대한 공동체(또는 개인)의 사유화가 진행됨에 따라, 이 사유물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표시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자신은 물론 이웃들도 이 물건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하는 표지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암각화 속에 새겨진 기호들의 일부는 부족 또는 종족들 내의 소유와 분배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나중에는 용기, 금속제, 바위에 새겨진 청동기시대의 상징 기호들 중에서 특정한 종족을 상징하는 특별한 기호들을 분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황소(탐갈르이)
3) 동물 주제
황소와 사슴 그리고 염소·산양 등 뿔이 있는 세 가지 동물들은 청동기시대 미술 속에 나타나는 주제의 근간이었다. 이 동물 제재보다는 적게 발견되지만, 이 시기에 제작된 바위그림의 표현 영역을 현저하게 넓혀 준 맹수와 맹금류의 형상들도 다소 관찰된다.
(1) 황소
뿔이 달린 큰 가축들은 몸통이 크고 비교적 달리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석기시대부터 중요한 사냥감이었다. 이 동물은(황소뿐만 아니라 암소) 석기시대 말기에 가축화되었고, 청동기시대부터는 사육이 일반화되었다. 황소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많은 장점들 때문에 목축 공동체와 야금 공동체의 경제·문화생활의 영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목재 운반용 굴림 장치, 썰매, 바퀴, 손수레 등의 발명을 통해 인간은 양쪽에 대등하게 회전축을 두고 짐을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가축화된 황소를 이용하여 짐을 견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청동기시대 목축민들의 생활 가운데서 특별히 몸통이 크고 뿔이 달린 가축은 그 역할이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이러한 가축들의 중요성이 크게 재평가됨에 따라 문화 가치의 체제와 다양한 세계관의 구조 속에서 황소 숭배 사상의 발생과 형성(가축의 건강과 개체 수 증가를 기원하는 사상이 반영된 각종 의식, 의례 행위, 제물을 바치는 행위 등)이 촉진되었다.
보다 잘 묘사된 황소 형상들을 그룹화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전형적인 그림들은 탐갈르이, 쿨자바스이, 카라사이, 샬라바이, 사이말르이-타쉬, 테르스 그리고 페르가나산맥, 탈라스 알라타우, 키르기스산맥, 슈-일리스키산맥, 카라타우와 제트이수 알라타우 등지의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이러한 그림들은 임의로 사이말르이 타쉬-탐갈르이의 전통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황소를 묘사한 그림들의 대부분이 이 속에 포함되는데, 황소의 몸통은 겹삼각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뿔은 구불구불하지만 나란히 앞쪽을 향해 있다. 이런 그림들에서는 전체적인 윤곽, 뿔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소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필요한 꼬리, 어깨 뼈 사이의 융기 그리고 몸통 등‘구성 요소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어떤 그림에서는 들소 사냥 또는 들소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가 하면, 다른 그림에서는 수레를 끌고 있는 소 또는 짐을 나르는 소 등 매우 다양한 주제들이 그려져 있다.
청동기시대의 황소 형상들 중 대부분은 제트이수의 쿨자바스이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이 황소 형상들의 특징은 몸통 가운데‘격자무늬’, 동그라미, 점, 가로와 세로로 그린 파상 및 지그재그 등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들은 주변의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어떤 특별한 이유로‘구별’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장식 무늬들은 제물로 바쳐지는 동물을 표시한 것이거나, 동물의 색 또는 털을 표현한 것으로 보는 등 여러 가지의 견해들이 제기되어 있다.
(2) 사슴
청동기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뿔이 있는 동물 중 또 다른 하나는 사슴이다. 일반적으로 사슴은 많은 형상들과 함께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들이 청동기시대에 속한 것임을 의심하는 학자는 없다.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사슴 형상의 특징은 윤곽선을 그린 것과 기하학적인 무늬의 몸통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사슴 형상에서 뿔은 나무 모양이거나, 황소의 뿔처럼 둥글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뿔의 안팎으로 가지들이 뻗어 있다. 몇몇 형상들에서는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아주 화려한 뿔을 지닌 사슴들도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상에서 뿔은 위로 뻗어 있는데, 아마도 의미론적으로‘생명수’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자세는 주로 정적이지만, 네 발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취한 것은 보기 힘들다. 이런 그림들은 제트이수(쿨자바스이, 탐갈르이), 카자흐스탄 남부 지역, 몽골과 인접한 알타이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3) 말
에네올리트 기에 사육되기 시작한 말이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들의 경제 활동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짐에 따라 청동기시대에는 그것이 중요한 숭배 대상물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고, 그에 따라서 말 형상은 작은 돌판, 바위그림, 금속품, 지닐 미술[動産美術] 등 여러 가지 조형예술품 속에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바위 표면이나 작은 돌판에 묘사된 독특한 형태의 말 그림들(그리고 다른 모양이나 주제들)은‘세이마-투르비노의 전통’양식으로 표현되었으며,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 형상들은 일정한 도상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쉽게 식별된다. 이런 말 그림들을 카자흐스탄과 주변 지역에서 발견된 칼과 단검의 머리 부분 그리고 돌로 만든 지팡이의 손잡이 등에 새겨진 말 형상들과 양식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이들의 제작 시기가 자연적으로 확정되었다(패트킨·미클라쉐비치, 1990, pp. 146-153).
청동기시대의 말 형상들은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그룹들은 청동기시대 속에서도 제작 시기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초기의 것은 작달막한 키, 육중한 몸통, 매우 짧은 두 개의 다리 그리고 휘어진 등이 특징이다. 말의 배는 주로 아래로 처져 있다. 머리는 일정한 각을 이루며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으나 입은 약간 앞쪽을 향하고 있다. 갈기와 앞머리는 하나로 합쳐져 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말의 귀는 따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긴 꼬리는 각을 이루며 밑으로 향해 있다.
이런 특징들은 모이나크 암각화 속의 말 그림 가운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위에 열거한 특징을 지닌 말 그림이 쉐모나이하 지역에서 발견된 단검 가운데서도 확인되었는데, 이 말 형상은 위에서 언급한 바위그림들과 공간적으로 가깝고 또 시기적으로 비슷한 것이다. 도상학적으로 쉐모나이하 조각상과 아주 유사한 것이 알타이의 차리쉬 마을에서도 발견되었다(슐리가·그루쉰, 2006, pp. 45-53).
이러한 말 형상의 변형된 형태로는 측면관에 목은 ‘백조’의 그것처럼 생겼으며, ‘급하게 멈춰 선’ 것 같은 자세를 취한 몇 개의 형상들이다. 이와 같은 형상들은 앞에서 언급한 로스토프킨스키의 말과 형태학적으로 유사하다. 네 개의 곧은 다리와 곧게 뻗은 복사뼈 관절, 우아하고 역동적인 자세, 작은 머리, 또렷한 귀 등의 특징을 지닌 말 형상은 카자스흐탄 동부 지역의 여러 곳에서 살필 수 있으며, 이러한 형상들은 물론 약간 후기의 것으로 분류된다.
세이마-투르비노 미술적 전통의 고전 양식 풍으로는 손잡이에 말 머리가 조각된 돌 지팡이 몇 점(카자흐스탄 동부)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유물들의 연대를 규정할 때 기준이 되는 것들이다. 이와 유사한 유물들은 알타이(쉬푸노보-5)에서 많이 발견되었고, 옴스크에서도 한 점이 발견되었다(키류쉰, 1991, pp. 66-70).
도상학 및 묘사 방법을 통해서 볼때, 이들과 가장 유사한 말 그림은 카자흐스탄 중부와 남부 지역(테레크트이 아울리에, 카라사이, 쿨자바스이 등)의 암각화 속에서 나타난다. 테레크트이 아울리에의 말 형상은 세이마-투르비노의 그것과 측면관(가끔 약간 굽어 있는 네 개의 짧은 다리가 같이 표현됨), 정적인 자세, 몸통이 뒤로 가면서 점점 커지는 점, 활처럼 휘어진 목(가끔 앞쪽으로 쭉 뻗어 있기도 함), 이마 위쪽의 뾰족한 앞머리, 목에서 앞머리로 이어지는 갈기 등이 유사하다.
이런 특성들은 제트이카라에서 발견된 청동제 창끝에 새겨진 말 머리를 통해서 살필 수 있다(마즈니첸고, 1985, p. 153). 양식적 특성을 놓고 볼때 이것은 말·백조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의미론적인 면에서는 말이 조류 형상과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쿨자바스이)
갈기가 강조되어 있고, 이마 위로 앞머리가 드리워져 있는 말 그림들은 제트이수 동북 및 남서부 지역의 암각화 그리고 여러 형상들이 함께 그려져 있는 카라타우 산맥 양 기슭의 암각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는데, 간혹 살이 많은 바퀴의 수레를 끄는 말 형상도 보인다. 종종 다리가 매어져 있는 말 형상도 살필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알려진 청동기시대의 크고 작은 암각화 유적지에서 말 형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제트이수와 카자흐스탄 남부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세이마-투르비노 미술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과 사이말르이타쉬-탐갈르이 미술의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였고 또 융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중국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살펴지는 세이마-투르비노의 미술적 전통에 따라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련의 말 그림들은 실제로 스키타이 시대 전반까지도 나타났으며, 동물 양식의 미술 속에도 신화적인 이미지로 공존했다.
태양머리 사람 형상(탐갈르이)
4) 사람
유라시아 대륙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속에서 사람 형상은 고고학적인 제작 시기 및 문화 등을 놓고 볼 때 개체나 장면 그리고 다양한 구도 속의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적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 형상들과 이미 앞에서 살펴 본 동물 형상들의 제작 시기 설정 문제는 현재 충분히 연구되었다.
초기에 그려진 사람 형상 가운데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겹삼각형과 직사각형 등 기하하적인 몸통을 구분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림들 속에서 사람은 동물이나 새로 가장을 하고 있고, 특별한 머리 장식을 하였으며, 꼬리가 달린 짐승 가죽 옷을 입은 반수인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이러한 사람 형상들은 많은 경우 의례 및 신화적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들의 한 구성 요소로 표현되었다. 그것들은 주로 전투용 곤봉이나 활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무기나 지배자와 제사장의 징표인 지팡이 등과 같이 그려져 있다. 사람 형상은 모든 주제와 신화적 내용의 구성, 사냥 장면, 전쟁이나 혹은 에로틱한 성격 등의 그림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였다.
‘태양 머리’의 사람 형상은 아직까지도 분석과 해석에 어려움이 많은데, 카자흐스탄에서는 그 가운데 대부분이 탐갈르이 암각화 속에 그려져 있으며, 개체적으로는 바이코누르, 에쉬키올메스, 슈-일린스키 산맥 그리고 기타 지역의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형태론적으로 그것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태양 마스크의 머리와 손발이 달린 사람 몸통 부분이다.
‘태양 마스크’는 광선과 점이 있는 동심원, 광선이 없는 것 그리고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광선이 있는 것 등 세부에서 차이가 있다. 드물지만, 광선이 동심원 및 점과 결합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사람 형상에서 팔은 대부분 일정한 각을 이루며 아래로 굽어져 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보건대‘걸어 다니는 태양’의 모양을 띠고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일정한 모양으로 의인화된 천체의 외형이다(탐갈르이, 쿨자바스이).
청동기시대 암각화 가운데서 사람 형상은 다산과 관련되어 있다. 또 에로틱한 장면 속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충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에로틱 장면(탐갈르이)
5) 무기
이 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된 무기는 단순한 형태의 활과 창이다. 이것들은 수렵, 전투, 의례 등을 주제로한 암각화 속에서 살펴진다. 도상학적 특징을 통해서 판단하건대, 창을 들고 있는 사람 형상들은 세이마-투르비노 유형으로 분류된다.
곤봉을 쥐고 있는 사람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대부분 카자흐스탄의 남부 지역과 제트이수 지역의 암각화 속에서 발견되는데, 전투 장면보다는 제례를 주제로 한 그림들 가운데서 자주 살펴진다. 곤봉은 많은 측면에서‘과장한’사람이나 에로틱한 주제의 그림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비록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 속에서도 고대인들은 곤봉이 갖는 신화·의례적 측면의 의미를 강조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주제는 베다에서도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다수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 사실을 근거로 하여 인도 유럽의 신화 가운데 뇌신과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있다.
바이코누르, 아르파우젠, 에쉬키올메스, 탐갈르이 등 청동기시대의 암각화 속에는 때리거나 부수는 무기로 전투용 도끼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의 사그이르 암각화 속에는 두 명의 보병이 곤봉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이 보병들의 등 뒤에는 흥미롭게도 방패가 그려져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방패 이외에도 방어용 무기로 엮어서 만든 갑옷을 이용하였다.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방어용 도구에 대한 A. I.솔로비에프의 견해는 주목을 끈다. 그는 고대인들이 효과적인 보호 장비로 털이 많고 발굽이 있는 동물들의 두꺼운 가죽을 무두질도 하지 않은 채로 이용하였다고 하였다(솔로비에프, 2003, p. 31). 우리가 제례용 또는 샤먼의 의복이라고 생각하던 청동기시대의‘변장을 한’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들이 실제로는 방어용 도구의 일종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 의복이 의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또한 배제할 수는 없다.
각종 무기를 든 사람들(아르파우젠)
6) 운송 수단
중앙아시아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가운데서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이란 단단하고 평편한 원형 바퀴가 달린 이륜 수레, 사륜 수레와 전투용, 수렵용 혹은 의식·의례용 이륜마차·바퀴살이 있는 마차 등을 의미한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발명 시점부터 오랫동안 당시의 선진 기술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퀴가 달린 운송 수단은 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 집단의 대규모 이동에도 큰 몫을 했으며, 다양한 신화·의례용품(예를 들면 얌 문화 민족들은 수레를 매장 의식에 사용하였다)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결과 이동 장비를 묘사한 바위그림들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의 스텝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상징물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대부터 황소나 낙타가 끄는 단단하고 평편한 원형의 바퀴를 지닌 이륜 수레와 사륜 수레가 유라시아 스텝 지역에 전파되었다.
아마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묘사한 그림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것처럼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 아크바우르 벽화 속에 물감으로 그려진 단일축의 수레인 것으로 보인다. 쿨자바스이 암각화 속에는 직사각형의 짐칸과 채가 있는 수레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조금 후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기원전 2000년기 중반 이전에 유라시아 대륙 동부 지역의 암각화 속에 말이 끄는 소형 수레들이 등장하였는데, 이 수레의 발생학적 기원은 단단하고 평편한 원형 바퀴로 보인다. 현재 수백 점의 전차 그림들이 카자흐스탄, 알타이, 시베리아, 몽골 그리고 중국에서 발견되었다.
스루바 문화의 청동기시대 무덤에는 전차와 전차가 그려진 도기가 출토되었다. 무덤에서 수레나 전차가 출토되었다는 것은 이 무덤 주인공이 공동체 내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베다 경전에서 전차와 마부를 찬양한 것이 아니다.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림은 카르파트 산맥에서 극동 지역에 이르는 여러 스텝 사회에서 발생한 복잡한 사회·경제적 발전과 인류 문화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반영하고 있다.
마차(아크바우르)
3. 사크 시대의 암각화
○ 청동기시대 후기와 철기시대 초기 사이(사크 시대)의 시간적인 간격이 크기 때문에 이 시기의 바위그림에는 앞 시대의 표현 양식과 새로운 표현 양식이 서로 공존하는 독특한 현상이 보인다. 또한 특정한 모티프와 주제의 그림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모티프와 주제들 가운데는 외부에서 유입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주둥이가 새의‘부리처럼 생긴’사슴 형상이 있는데, 그것은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 속에 갑자기 등장한 것으로서 초기 사크 시대에 확산되었다. 그것들은 카자흐스탄 동부 지역에 분포하는 이미 잘 알려진 대부분의 암각화 가운데서 살필 수 있다.
사슴(돌란알르이)
처음에는 사크 시대 초기의 사실적인 전통의 요소들이 암각화 속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사슴, 염소 그리고 그 밖의 동물 형상들이 관련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들은 점차 비사실적으로 변화되었으며, 단순하고 또 도식화되었다. 예를 들면, 사크 시대 초기의 그림 가운데는 등에 필수적으로 솟아 있던 삼각형 모양의 돌기가 후기의 형상들 가운데서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가로 세로로 줄무늬가 그려진 몸통과 나선형 뿔이 달린 장식적이고 양식화된 동물 그림들이 우세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툴쿠네 언덕과 카자흐스탄 알타이의 파지리크 시대에 축조된 거대 분묘 근처의 바위에 그려진 다리를 구부리고 있는 사슴의 몸통에는 그와 같은 장식적 요소들이 살펴진다.
사크 시대 발전기 그림들은 수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명확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많은 유물(파지리크, 이스이크, 아무다리야의 보물 등)을 바탕으로 하여 판단할 때, 이 시기에 제작된 유목민 공동체의 조형예술은 금속, 뼈 그리고 나무 등 주로 이동성에 중점을 두는 형식으로 바뀌어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제트이수의 쿨자바스이 암각화 속에 그려진 그림들은 유물이나 문헌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지역에 거주한 고대 사크족의 무기와 전쟁에 관한 몇 가지 문제 그리고 전투용 도끼 등 공격용 무기와 투구나 방패와 같은 방어용 무기 등에 관해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 사슴 숭배
스키타이 시베리아의 미술과 신화 속에 표현된 사슴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많은 학자가 관심을 가졌다. 카자흐스탄 동부, 제트이수, 카라타우에서 발견된 새 부리 모양의 입을 지닌 사슴 형상은 상·중·하단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런 까닭에 이 그림들은 종종 사슴 돌에 그려진 그림들과의 비교 대상이 된다.
사슴 돌에 그려진 그림은 흔히 언급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의복 장신구나 문신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샤먼이 상층의 세계로 여행할 때 새의 모습을 취하는 주요 영령·조력자, 수호 정령을 구현한 것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형상, 거울 그리고 무기 등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이 사슴 돌을 가끔식 군인의 역할까지 겸했던 샤먼이나 제사장의 옷으로 이해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카라타우와 아크수-자바글린의 사슴 형상들은 이런 미술의 전통을 지닌 어떤 인종 집단이 기원전 1000년기 초에 중앙아시아 스텝의 중심지로부터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철기시대의 붉은 사슴 형상은 일종의 스키타이-사크 유목민 공동체의 상징물이었다. 붉은 사슴 형상은 태양이나 조상 숭배 그리고 세계수에 대한 신화적 관념들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세계관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과도 얽혀 있다.
사슴돌(오쉬긴 톨고이, 몽골)
‘발뒤꿈치를 들고 서 있는’사슴 형상은 초기의 것 으로 부흐타르민에서 출토된 거울 속에서 살필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의 사슴 형상(아르잔-마이에미르 타입)은 사크 시대 초기에 제작된 미술품들(기원전 8~7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이런 양식은 여러 가지 조형물에도 널리 이용되었는데, 그 예 가운데는 암각화나 사슴 돌 그리고 그 밖의 조형물들이 있다.
사슴이 묘사된 바위그림, 특히 기원전 1000년기의 하반기에서 말기에 제작된 그림들 속에는 사슴의 몸 여러 곳에 나선형이나 기타 여러 가지 상징 기호들이 장식되어 있다. 바로 이런 기호들 때문에 이 사슴이 우주의 태양 동물이라는 진부한 해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많은 학자는 사슴 형상에 일종의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몇몇 학자들은 사슴의 몸통에 그려진 기호들이 이 동물의 제물과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았다. 시베리아의 몇몇 민족들의 인류학적 자료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데블레트, 2004, pp. 418-421). 가끔 추가적인 요소로 동물의 몸통 부위에 물방울 무늬들이 묘사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유물로는 사우스칸드이크에서 발견된 매우 정교한 사슴 형상들을 들 수 있는데, 이 그림 속에는 양쪽으로 젖혀져 있는 나무 모양의 뿔이 달린 사슴 두 마리가 머리를 뒤로 돌리면서 급하게 멈추어 서려는 모습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잘라울린에서 출토된 황금제 브로치들과 양식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모이나크 암각화 유적지 속에는 다양한 포즈의 사슴들이 커다란 구도를 이루며 묘사되어 있다. 햇볕에 그을린 정도와 제작 기법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이 구도 속의 그림들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바위 가운데 한 곳에는 형상들이 집중되어 있는데, 유사한 그림들이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 내륙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바위그림 속에서 살펴진다.
두 마리의 맹수에게 쫓기고 있는 사슴 형상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사슴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기법과 후기 형태인 새부리 모양의 입을 지닌 사슴 형상의 표현 기법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이 이볼긴, 오쉬긴 톨고이(우베르 우베르) 타입의 사슴 형상들과 아르잔 타입의 사슴 형상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접해 있는 알타이산맥의 몇몇 지역에서 나선형의 뿔이 달린 사슴 형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형상들은 도상학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무늬들을 많이 사용한 파지리크 문화의 묘지들(베렐, 타라수, 잠브일, 카톤카라가이)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사슴돌(오쉬긴 톨고이, 몽골)
2) 공격 장면, 투쟁도, 추적도
유목민들의 미술 속에서 맹수가 굽 동물들을 물어뜯는 장면, 두 마리의 동물이 서로 싸우고 있는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 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주제의 그림들은 종종 삶과 죽음, 낮과 밤의 교차, 자연의 영원한 순환성, 이항 대립 그리고 그 외 두 개의 시작의 대립에 관한 이원적인 관념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맹수들의 초식동물 추적, 추격 장면이 묘사된 암각화들이 매우 자주 나타난다. 이들 중 몇 점은 순수 수렵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다른 몇 점들은 태양을 추격하는 신화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모이나크에 암각화 속에는 4~5마리의 맹수들에게 둘러싸인 새 부리의 사슴 형상이 그려져 있다.
동물 공격 장면(탐갈르이)
공격 행위가 지니고 있는 신화소(素)는 가끔 자연 상태에서 서로 대적하는 동물들의 몇몇 요소들을 하나로 합성시킨 환상의 동물 형상에서도 나타난다. 사우스칸드이크 바위에도 서로 대적하고 있는 동물들이 매우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주제로 멧돼지가 곰 그리고 늑대와 각각 서로 대립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전투용 도끼를 든 전사(쿨자바스이)
3) 사람
이 시기에는 여러 상황 속에 있는 사람 형상이 많이 나타난다(수렵, 전투, 의례 등). 카자흐스탄 동부 사그이르 암각화 속에 그려진 두 명의 보병이 서로 싸우는 장면은 특이하다. 이 그림은 전투에서 보병들이 전투용 도끼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이 그림과 다른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발견된 전투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보병전에서 전투용 도끼로 타격한 곳이 주로 머리였음을 알 수 있다.
산지 알타이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들에서 출토된 전투용 도끼에 맞은 사람의 두개골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근접전에 사용된 전투용 도끼는 청동기시대에서도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었지만, 사크 시대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전투용 도끼 형상들은 투바와 몽골의 사슴 돌 가운데도 그려져 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확실한 유적인 이스이크쿠르간이 제트이수 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암각화의 비교 연구에 꼭 필요한 조형예술의 표준적인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바이틴 블록(그림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흥미롭게도 말을 탄 사람 형상, 부동 자세의 사람 형상 그리고 복잡한 미로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그러한 형상들은 석기시대 후기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중세기의 펜노스칸디아, 이탈리아의 발카모니카, 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 이르는 아시아의 각지에서 관찰된다. 미로와 유사한 훌륭한 형상들이 카자흐스탄의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속에서도 살펴진다.
군노-사르마트 시기의 예술 속에는 자연, 집단과 개인의 영원한 순환성과 관련된 관념들이 새로운 주제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동물 형상들의 몇몇 부분들이 좀 더 추상적(기하학인 형상, 지그재그, 기호들)으로 묘사되었다.
4. 중세기의 그림들
1) 무기와 군사 활동
유라시아 대륙의 중세기 유목 민족 국가 형성의 근간과 특성, 이들의 경제와 문화 수준, 사회·정치적 구조의 특성, 종교, 이데올로기, 세계관과 정신적인 면에서의 삶의 가치 등을 연구하는 데에 무기 및 군사 활동과 관련된 문제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선행 시기의 사회 발전의 촉매제이자 경제 발전 수준의 지표 역할을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발전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징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획에 따라 제작된‘그림 텍스트’들은 무기를 착용하는 방법, 무기의 결합 시스템, 마구, 기마병, 보병 등 전투, 공격과 방어 등에 관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그림들은 전투나 사냥 등에 필요한 몇몇 무기들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들이며, 이와 같은 정보들은 고고학적인 유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선진적인 군사와 전투 기술이 유라시아 대륙의 스텝과 그 인접의 광활한 공간 속으로 급속히 확산되었고, 서로 대립하는 여러 문화 민족 국가들이 형성됨으로써 한 시대 내에서 새로운 종류의 무기 제작과 발전 그리고 개선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암각화들에서는 원거리와 근거리 전투에 사용한 공격과 방어용 무기 그리고 군사용 장비의 기본적인 것들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그림들이 문헌이나 고고학적인 자료들과는 달리 전투에서 그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2) 전사적 속성
중세 초기와 발전기의 암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가지 전투용 장비로 무장한 기마병이다. 바로 이 주제 자체가 중세기의 암각화의 연대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투르크 시대의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깃발이나 기수 등은 비단 바위그림 속에서만 살펴지는 것이 아니라 7~8세기에 룬문자로 기술된 비문들 가운데서도 언급되고 있다.
전사(바양 주레크)
3) 창과 그 사용법
창을 이용하여 싸우는 전투는 고대 투르크인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다양한 금속 제품 속에는 창으로 동물들을 쓰러뜨리는 사냥꾼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통해서 창은 전투뿐만 아니라 사냥에도 사용된 무기였음을 알 수 있다. 몇몇의 경우는 창의 유형을 구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삼각형 모양의 창끝이 바양 주레크, 탐갈르이 등 일부 암각화 속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4) 활과 그 사용법
중세기에 원거리 전투에 가장 폭넓게 사용된 공격형 무기는 복합궁이며, 그것은 이 시대 유라시아 대륙의 스텝 지역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유형의 조형예술 속에 널리 표현되었다. 고대 투르크 군인들은 일상적으로 그들의 전투복을 복합궁으로 무장을 하였는데, 에쉬키올메스, 탐갈르이, 바양 주레크 등지의 암각화 속 전투와 사냥 장면들이 그것이다.
중세기의 그림들은 몇 개의 단계를 통해서 활 사격술에 대해 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10년 동안 러시아령 알타이의 동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선 그림들(체레미신, 2004, pp. 39-48)의 의미를 재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들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활 쏘는 방법과 그 복원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사료와 조형 언어로 표현된 텍스트 등을 통하여 활 쏘는 방법이 잘 알려져 있지만, 스텝 지역에서 보다 일반적인 방식은 모두‘몽골’식이었다.
바위그림을 통해서 판단할 때, 중세기의 군인들은 활을 왼쪽에, 화살 통을 오른쪽에 두었다. 문헌 자료 가운데는 중세기의 군대 속에 왼손잡이로 구성된 특별 부대가 있었으며, 이들은 주로 찌르고 자르는 유형의 무기를 사용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이노스트란체프, 1909, p. 58).
5) 화살통
화살을 담는 용도로 사용한 화살통은 중세기의 선 그림, 금속 공예, 회화 그리고 벽화 등에서 자주 살펴진다.
물론 화살통은 대부분 전투와 사냥을 주제로 한 그림 가운데 묘사되어 있지만, 알타이, 남부시베리아, 몽골 그리고 제트이수 등지에서 발견된 위에 언급한 여러 장르들의 그림들에서는, 화살통이 이미 군사·실용적인 기능과 관련된 기호학적 특성을 상징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회·행동 규범이나 일정한 사회 문화 속의 규범과 관련된 상징물로서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평화로운 분위기의 일반 생활상을 묘사한 그림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 그림 가운데도 화살통을 살필 수 있다.
6) 군장
중세기의 기마병과 보병이 사용한 방어용 장비로는 투구와 갑옷이 있다. 투구 형상은 에쉬키올메스와 탐갈르이 그리고 그 밖의 암각화 속에서 살필 수 있다. 깃털 장식(가끔은 깃발 장식)을 한 멋진 투구를 쓰고, 중무장을 한 군인들의 그림이 알타이의 차간카 강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에쉬키올메스와 탐갈르이 등 제트이수에서 발견된 중세기 암각화 속에 묘사된 기마병의 투구는 원추형이며, 깃털로 장식하거나 양옆에 뿔을 붙여 장식하였다.
7) 갑옷
카자흐스탄의 중세기 암각화와 다른 종류의 선 그림 속에는 갑옷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유물들이 거의 묘사되어 있지 않다. 방어용 갑옷을 연구하는 데 사용되는 주요 유물은 러시아연방과 몽골 알타이의 여러 지방에서 발견되었는데, 최근에 이곳에서 선으로 그려진 중세기의 전형적인 특성인 중무장의 개마무사 그림이 발견되었다.
[도면] 개마무사(조스틴 하드, 몽골)
8) 방패
현재 카자흐스탄의 바위그림들에서 방패가 그려진 그림들이 몇 점 발견되었다. 쿨자바스이 암각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깃발을 든 기마병 그림이 그중 하나다. 기마병이 들고 있는 방패의 모양은 둥글며, 어깨에서 허리까지 내려온다. 이와 유사한 방패는 사우스칸드이크 암각화 가운데서도 살필 수 있다. 중세기의 사각형과 원형 방패 그림은 매우 가치가 있는데, 이런 유형의 그림들은 산지 알타이와 몽골에서 유래한 것이다.
9) 마구
암각화 속에 그려진 마구 가운데서 가장 많이 살필 수 있는 것은 말고삐이며, 간혹 목 아래쪽이나 코 둘레에 술을 매달아 장식을 한 굴레들도 보인다. 앞뒤가 굴곡을 이루며 높이 튀어나와 있는 안장도 묘사되어 있다. 이 시기의 말 그림들에는 세 개 또는 그 이상의‘V’자 모양의 갈기가 묘사되어 있다. 이런 모양의 말갈기는 동 투르키스탄의 벽화와 금속으로 만든 고고학적 유물 가운데서도 보인다.
10) 의복
중세기의 미술품 속에는 의복이 좀 더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사람 형태도 이전보다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끔 머리 장식, 머리 모양, 어깨에 두르는 옷, 허리에 두르는 옷, 바지, 신발, 장신구 그리고 여러가지 장신구가 달려 있는 허리띠들도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학자들은 복식이 역사의 발전 과정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민족과 사회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기능(일상적인 용도, 축제용, 제례용, 장례용, 전쟁용)을 수행하는 문화 요소로 보았으며, ‘실리적인 구성체가 형식·의미체계로 변환되는’문화 형태로 보았다(도제, 2001).
유라시아 스텝의 광활한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들에서는 주로 어깨에 걸쳐 입는 옷, 머리장식이나 모양이 묘사되어 있으나, 바지와 신발 그림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사마쉐프, 1998, pp. 406-423).
11) 머리장식
암각화 속에 묘사된 머리장식 모양과 표현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끝이 뾰족한 모자(쿨라흐)가 있는데, 이 유형은 선행한 스키타이-사크 시대에서 기원한 것이다. 투르크인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높은 머리장식은 몽골의 훌-아스헤트에서 발견된 돌판에 그려져 있다. 중세기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어깨에 걸쳐 입는 옷 가운데는 카프탄(그리고 가운)이 있다. 에쉬키올메스산맥의 바위에 그려진 군인들, 쿠드이르게 바위와 알타이에 위치한 카라-오유크 유적지에 그려진 인물들은 스커트처럼 생긴 카프탄을 입고 있다.
통바지(바양 주레크)
12) 바지
제트이수에 위치한 바양 주레크 산과 에쉬키올메산맥에서 발견된 암각화 속에서는 통이 넓은 바지가 그려져 있는데, 이 바지들은 중세기에 투르크어를 썼던 민족들이 자주 착용하였다.
13) 머리 모양
문헌에도 고대 투르크 민족의 땋은 머리를 기록하고 있듯이, 이들의 땋은 머리를 묘사한 그림들은 아주 유명하다. 머리 모양은 아마도 유목 공동체에서 연령,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땋은 머리의 갈래 수에 대한 규정도 있었을 것이다.
14) 이동 수단
선행 시기와 마찬가지로 중세기에 사용한 몇 가지 유형의 마차 그림들이 바양 주레크, 사우스칸드이크, 쿨자바스이 등지의 암각화 속에 그려져 있다. 마차 그림은 그것을 끄는 말(소 또는 낙타)의 수와 동행하는 사람들의 구성 양상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마차의 모양과 장식은 그 시대 양식 및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수레는 그것을 끄는 동물들, 그 동물을 타고 가는 사람과 동물을 몰고 가는 사람의 유무에 따라 짐칸과 바퀴들이 다르게 묘사된다.
수레는 중세기 유목민들의 장례 의식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드네프르 강과 돈 강 유역에 있는 12~13세기 초의 폴로베츠인들의 무덤과 니즈노에 포볼지에의 캄차크 한국의 무덤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무덤에 수레를 같이 매장한 것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 세상으로 여행을 한다는 관념이나 저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관념 등과 연관이 있다.
15) 새 형상이 있는 주제
새 형상은 여러 시대에 나타났던 다양한 민족들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각 지역의 바위그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제트이수와 카라타우 등 수렵용 새가 묘사된 유명한 바위그림 속에는 주로 새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보여주는 여러 상황들이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면, 기마병이 한 손에 새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 사냥감을 향해 날려 보내는 장면 그리고 비상하는 장면 등이 있다.
그러나 새 형상은 주로 떠나는‘영혼’을 상징하므로 그 의미가 특별하다. 아마도 중앙아시아의 여러지역에서 발견되는 고대 투르크 석인상에 새겨진 새(주로 맹금) 그림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그림들은 추 계곡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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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그림의 의미와 해석의 문제 자료번호 : ag.d_0005_0010_00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