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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3. 제45발굴구역

이 유적의 북서쪽에 해당하는 제45발굴구역의 그 동쪽은 1981, 1994, 2002, 2003년도에 발굴된 사원지, 탑지, 기와 창고, 사원의 돌담 등과 가까운 곳이다(그림 4, 5). 그러나 현재 사원지 돌담의 북동쪽과 남동쪽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제41구역과 제37구역(2007~2009년)을 발굴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최소한 3개의 건축층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37구역의 가장 아래 건축층에서는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이 구역에서 거의 확인되었다. 제41구역과 제37구역의 경계에서는 주거지 7호가 확인되었고, 제41구역의 두 번째 건축층에서는 8호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거지의 전면이 확인된 것은 아니었고, 생업과 관련된 부분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제45발굴구역은 이 제37발굴구역과 제41발굴구역에서 동쪽으로 연장된 부분이다. 제45구역의 발굴은 주거지의 완벽한 조사와 발해시대 성내의 평면 형태를 확실히 하고, 발전 단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제37발굴구역과 제41발굴구역에서 연장된 주거지 조사를 완료하기 위한 것이다. 2010년에는 140`㎡를 발굴하였다. 이곳의 깊이는 최소한 크라스키노 발해성지의 문화층의 깊이와 같은 180cm이다. 금번 발굴에서는 건축층 상면의 유구만 조사할 수 있었다.
발굴을 시작하기 전에 잡풀과 쓰레기 들을 정리하고, 1m 간격으로 방안선을 치고, 상면부터 레벨 측정, 마그네트 감도를 측정하였다(그림 270, 271, 273, 274). 발굴은 이전부터 실시해 오던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1m 간격의 격자에 숫자(2~11)를,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알파벳(Д-Я)을 일련번호로 매겼다. 제45발굴구역은 3섹터로 나누어진다(그림 272~274). 남쪽 섹터는 5×8m(40㎡)로 제37발굴구역의 남쪽 벽과 맞닿아 있다. 서쪽 섹터는 제37발굴구역의 동쪽 벽과 맞닿아 있다. 동쪽과 서쪽 섹터는 너비가 5×20m(100㎡)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두 섹터는 중간의 너비 50cm로 Т-2-Т-6 격자이다. 발굴 과정 중에서 건축층 상면에서는 몇 개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전체적으로 발굴구역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24m, 북쪽에서 남쪽으로 10m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높이 차이는 23~26cm로, 남쪽으로 경사가 져 있고, 동서의 높이 차이는 64~73cm 정도로 울퉁불퉁하다.
후대의 교란 흔적은 이 발굴구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발굴구역의 토층은 다음과 같다(그림 275~281).
① 표토층(두께 8~12cm)
② 부식토층(두께 20~24cm)
③ 여러 가지 크기의 모래알갱이가 혼입된 갈색 사양토층(두께 3~15cm)
④ 서쪽, 남쪽, 동쪽 섹터의 아래에는 단단한 갈색 사양토층(두께 12~40cm)과 큰 입자의 모래알이 섞인 중간 밀도의 갈색 사양토(두께 6~24cm)가 수혈과 자갈돌이 적석된 주변에 나타났다. 동쪽 섹터에서는 부슬거리는 토질로 황갈색 모래알 띠가 확인되었다.
⑤ 황갈색과 명황색 사양토를 포함해서 여러 크기의 사질토층
상기한 모든 층에서는 유물이 확인되었는데, 사질토층에서는 그 비율이 아주 낮다. 제45발굴구역의 모든 발굴구역은 분층별로 발굴하였고, 얇게 걷어낼 필요가 있는 부분은 조금씩 내려 갔다. 모두 5분층까지 발굴하였고, 두 번에 걸쳐서 얇게 걷어낸 부분이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 5개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1개의 건축층을 이루고 있다. 이 유구들은 각기 다른 층에서 확인되었는데, 층서학적으로도 평면적으로 보아서 같은 시기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확인된 결과는 유구별로 모두 표시하였다.
표토층(1분층). 마그네트 감도측정 후, 부식토층을 제거하고 1분층을 확인하였다(평면도 2, 그림 282~288). 이 층의 두께는 25~30cm에 달한다. 기본적인 층위는 크고 여러 가지 크기의 모래알갱이가 섞인 갈색 수혈이 확인되었다. 이곳에는 고려인의 경작흔이 열을 이루면서 남아 있었다. 또한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사양토 흔적도 남아 있었다. 서쪽 섹터에서는 상층에 중간 크기의 사질토가 섞인 암회갈색 사양토가 부정형으로 나타났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늘어져 7m에 달하고, 북남쪽의 길이는 5m에 달한다. 남쪽과 동쪽 섹터에는 중간 밀도의 여러 가지 입자 사질토가 섞인 갈색 사양토의 상면이 드러났다. 이 층 위에 К, Л-3, 4 격자에서는 돌이 적석된 채 드러났다.
1분층에서는 평면 형태가 잎형인 소형의 철제(그림 294), 주철제품 2점(Р-6 격자 출토, М-5 격자 출토)(그림 293, 295), 철제품(О-2 격자 출토), 현대의 철제말굽(О-6 격자), 도토리형의 어망추(Ц-4 격자)(그림 289, 290), 막새기와편(Ч-6 격자)(그림 290, 291), 22점의 장기알이 출토되었다. 그중 14점은 토기 기벽으로 제작되었는데(Л-3, Т-5, Р-2, Ы-3, Э-6, К-11, Н-5, О-5, И-10, Л-8, М-9, К-7, О-2 격자 출토)(그림 296:2, 4, 298:1, 3~5, 299), 8점은 기와편으로(С-5, И-4, З-7, Е-7, Л-9, И-11, Д-8, Т-5 격자 출토)(그림 296:1, 3, 297, 298:2) 제작되었다.
경작흔이 있었던 표토층에는 토기편과 기와편이 아주 작게 부서져서 확인되었다. 1분층은 대체적으로 기와와 토기의 무게가 35.434`kg으로 제45발굴구역의 36.5%에 달하는 양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잘게 부서진 채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1분층에서 출토된 토기편은 2,674편으로 1~5분층에서 출토된 양의 51%를 차지한다. 이는 2~5분층에서 출토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그림 300, 303:2, 304, 305, 306). 기와는 133점으로 모든 층에서 확인된 것보다 훨씬 많은데, 1~5분층에서 출토된 기와의 68.5%이다(그림 301, 302).
2분층을 제거하기 전에 2~4호 수혈(Л-9, 10, Л, М-5, 6, У, Ф-4, 5 격자)의 내부를 조사하였는데(그림 316~321), 2호와 3호 수혈의 내부에서는 돌만 출토되었다. 이 돌은 아마도 아래층의 시설물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된다. 10호 수혈은 모든 발굴구역의 이 분층을 조사한 후 가장 마지막에 내부를 조사하였다(그림 322). Л-9, 10 격자에서는 구연부 3점, 토기 1개체로 보이는 동체부편 12점이 출토되었다. 수혈 내에서는 동체부편 2점과 그 아래에 기와가 출토되었고, 수혈(У, Ф-4, 5 격자)에는 구연부 5점이 출토되었다.
다음은 건축층 상면에서 확인된 5개의 유구에 관한 것으로, 모두 2분층을 걷어낸 후 확인되었다. 그중에서 주거지 16호의 일부분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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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발굴구역 자료번호 : kr.d_0008_0020_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