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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사외국전

발달극산(拔達戟山)의 지리와 습속, 왕 마합목특(瑪哈穆特)의 조공에 대한 설명

  • 국가
    팔답흑상(八答黑商)
팔답흑상(八答黑商) 주 001
각주 001)
八答黑商: 바닥샨(Badakhshan)의 音譯이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동북 지방의 巴達克山을 가리키는데, 巴達克山이라고도 한다. 『明史』에서는 八答黑商 혹은 把丹沙라고 표기되어 있다(張文德, 2001, 28쪽). 원래 迷里忽辛이 帖木兒의 도움을 받아 정복했고, 후에는 陳誠 등이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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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도회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성의 둘레는 10여 리였다. 땅은 넓고 험준한 곳이 없으며, 산천은 아름다웠고, 사람들과 만물은 질박하고 풍성하였다. 부도(浮屠)주 002
각주 002)
浮屠: 佛寺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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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몇 곳이 있는데, 장엄하고 화려함이 왕이 거주하는 곳과 같았다. 서양(西洋)주 003
각주 003)
西洋: 西洋이란 용어는 元代에 처음 등장하는데, 元末의 汪大淵이 지은 『島夷誌略』에 최초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의미는 西南洋 혹은 西南海와 同義語였다. 宋元 시대에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에 의거하여 대개는 泉州로부터 正南 방향으로 一線을 그어 南洋을 동서로 양분한 뒤, 서쪽을 西南海 혹은 西洋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明代에 이르러 西洋이라는 용어는 東洋이란 용어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고, 明末에는 『東西洋考』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明 中期 이후에는 종래의 泉州 대신에 廣東을 통과하는 子午線을 기준으로 東西를 나누었는데, 바로 『東西洋考』가 이를 기준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국 明代에 사용되었던 서양이라는 용어는 중국 남해안으로부터 말래카 해협 以西 및 아라비아 海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17세기 이후에는 그 범위가 다소 축소되었는데, 보르네오(『明史』 「外國列傳」에서는 渤泥라고 표기하고 있음)를 기준으로 그 동쪽은 東洋, 그 서쪽은 西洋이라고 칭하였다(최소자, 198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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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역의 많은 상인들이 대부분 이 지역에서 매매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유하였다. 일찍이 합렬의 추장 사합노(沙哈魯)의 아들에게 점거되었다. 영락 6년(1408)에 내관 파태·이달에게 명하여 그 추장에게 칙서와 채폐를 하사하도록 했고, 아울러 합실합아·갈특랑(葛忒郞) 주 004
각주 004)
葛忒郞: 하탈란(Khatalan)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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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각 부(部)에게도 하사하고, 왕래하며 통상(通商)하려는 뜻을 효유하니, 모두 즉각 명(命)을 받들었다. 이로부터 동서의 만(萬) 리에 여행을 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영락] 12년(1414)에 진성이 그 나라로 출사했다. [영락] 18년(1420)에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여 공물을 바치니, 진성 및 내관 곽경(郭敬)에게 명하여 새서와 폐백을 가지고 가서 보답토록 하였다.주 005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20 永樂 18년 정월 己酉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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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순 5년(1461)에 그 나라 왕 마합마(馬哈麻)가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여 공물을 바쳤다.주 006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324 天順 5년 정월 戊申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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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1462) 다시 공물을 바쳤다. 사신 아복도랄(阿卜都剌) 주 007
각주 007)
阿卜都剌: 압둘라(Abdullah)의 音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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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명하여 부친의 직위를 승계하여 지휘동지(指揮同知)주 008
각주 008)
指揮同知: 명의 조정에서 변경의 소수민족 수령들에게 수여한 칭호이다. 명의 북부와 서북부의 소수민족 지역에 衛所를 설치하고 그 수령들에게 指揮同知의 직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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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삼았다.

  • 각주 001)
    八答黑商: 바닥샨(Badakhshan)의 音譯이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동북 지방의 巴達克山을 가리키는데, 巴達克山이라고도 한다. 『明史』에서는 八答黑商 혹은 把丹沙라고 표기되어 있다(張文德, 2001, 28쪽). 원래 迷里忽辛이 帖木兒의 도움을 받아 정복했고, 후에는 陳誠 등이 방문한 바 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浮屠: 佛寺를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西洋: 西洋이란 용어는 元代에 처음 등장하는데, 元末의 汪大淵이 지은 『島夷誌略』에 최초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의미는 西南洋 혹은 西南海와 同義語였다. 宋元 시대에는 당시의 지리적 지식에 의거하여 대개는 泉州로부터 正南 방향으로 一線을 그어 南洋을 동서로 양분한 뒤, 서쪽을 西南海 혹은 西洋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明代에 이르러 西洋이라는 용어는 東洋이란 용어와 함께 널리 사용되었고, 明末에는 『東西洋考』라는 책까지 출간되었다. 明 中期 이후에는 종래의 泉州 대신에 廣東을 통과하는 子午線을 기준으로 東西를 나누었는데, 바로 『東西洋考』가 이를 기준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국 明代에 사용되었던 서양이라는 용어는 중국 남해안으로부터 말래카 해협 以西 및 아라비아 海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17세기 이후에는 그 범위가 다소 축소되었는데, 보르네오(『明史』 「外國列傳」에서는 渤泥라고 표기하고 있음)를 기준으로 그 동쪽은 東洋, 그 서쪽은 西洋이라고 칭하였다(최소자, 1987: 19~22). 바로가기
  • 각주 004)
    葛忒郞: 하탈란(Khatalan)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5)
    이에 관한 내용은 『太宗實錄』 卷220 永樂 18년 정월 己酉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6)
    이에 관한 내용은 『英宗實錄』 卷324 天順 5년 정월 戊申條 참조. 바로가기
  • 각주 007)
    阿卜都剌: 압둘라(Abdullah)의 音譯이다. 바로가기
  • 각주 008)
    指揮同知: 명의 조정에서 변경의 소수민족 수령들에게 수여한 칭호이다. 명의 북부와 서북부의 소수민족 지역에 衛所를 설치하고 그 수령들에게 指揮同知의 직함을 주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사합노(沙哈魯), 파태, 이달, 진성, 곽경(郭敬), 마합마(馬哈麻), 아복도랄(阿卜都剌)
지명
팔답흑상(八答黑商), 엄도회, 서역, 합렬, 합실합아, 갈특랑(葛忒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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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극산(拔達戟山)의 지리와 습속, 왕 마합목특(瑪哈穆特)의 조공에 대한 설명 자료번호 : jo.k_0024_0332_01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