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흉노를 고립시킨 뒤 양신(楊信)을 사신으로 보내 태자를 볼모로 보낼 것을 요구했으나 흉노가 과거에 한 약속과 다르다면서 거절함
한나라는 양신(楊信)을 흉노에 사신으로 보냈다.주 001이 무렵 한나라는 동쪽으로 예맥(穢貉), 조선을 정복해 군(郡)으로 삼고주 002서쪽으로는 주천군(酒泉郡)
주 003을 설치해 흉노와 강(羌)이 통하는 길을 막았다.주 004
한나라는 또한 서쪽으로 [대]월지
주 005, 대하(大夏)
주 006
각주 006)
와 [우호관계를 맺어] 통하고 [한나라의] 공주를 오손왕(烏孫王)에게 시집보냄으로써주 007흉노의 서쪽에서 [그를] 지원하던 여러 나라를 [그로부터] 떼어 놓았다. 또한 북쪽으로 농경지를 더욱 확장해 현뢰(胘靁)주 008까지 나아가 요새를 구축해도 흉노는 끝내 감히 한 마디[의 항의]도 하지 못하였다. 이 해에 흡후 [조]신이 죽으니주 009
한나라의 집권자들은 흉노가 이미 쇠약해져 신하로서 따르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신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굽힐 줄 몰랐는데, 평소에 [그가] 귀한 신하가 아니라고 하여 선우가주 010[그를]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다. 선우가 [그를] 불러들이려고 해도 [양신이] 끝내 절(節)을 버리지 않자 선우가 이에 천막 밖에다 자리를 마련하고 양신을 만났다. [양]신이 선우를 뵙자 달래어 말했다.주 011“만약 [한나라와] 화친하기를 원하신다면 선우의 태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내십시오.” 선우가 말하였다. “그것은 과거의 약속과주 012다르오. 과거의 약속은 한나라에서 늘 옹주를 보내면서 비단, 명주솜, 식품 등을 등급 차이에 따라 주어 화친을 하면 흉노도 [한나라의] 변경을 시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오. 지금 본래의 약속과 달리 나의 태자를 볼모로 달라 하니 [오히려 과거의 약속과 다른 이런 일은] 바라지도 마시오.주 013” 흉노의 습속에 따르면 한나라 사자가 중귀인(中貴人)주 014이 아닐 경우 [그 사람이] 유생이면주 015설득하러 온 줄 알고 그의 변설을 꺾으려 하고,주 016그주 017[사람이] 나이가 젊으면 자객이라 여겨 그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매번 한나라의 사신이주 018흉노로 들어올 때면 흉노 역시 바로 [사신을 한나라로] 상응하게 보냈다. 한나라에서 흉노의 사자를 잡아두면 흉노 역시 한나라의 사자를 잡아두는 등 반드시 대등한 수단을 취하며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주 019
大夏 : 나라 명칭으로 박트리아(Bactria 또는 Bactriana)를 말한다. 힌두쿠시(Hindu Kush)산맥과 아무다리아(Amu Darya) 사이, 즉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로 전246∼전138에 존재했다. 페르시아어에서는 Bākhtar, 아랍어와 인도어에서는 Bhalika로 표기한다. 전126년 張騫이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大月氏의 침입을 받아 왕국이 망한 뒤였다고 한다. 「大宛列傳』에서는 大宛의 서남쪽으로 2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정착생활을 하여 성곽과 가옥을 가지고 있으며 大宛과 풍속이 같다고 하였다. 또 大君長은 없지만 때때로 성읍에 小長이 세워지고, 그 군대는 약하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만, 사람들은 장사는 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大月氏가 흉노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도망쳐 와서 그들을 점령하고 모두 臣屬시켰다고 하였다. 인구는 대략 100여 만 명이 되고, 도읍은 藍市城인데, 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들을 판매하며, 그 동남쪽에는 身毒國이 있다고 하였다(『史記』 권123 「大宛列傳」 : 3164). 또한 『漢書』 「西域傳」에 따르면 대월지가 본래 敦煌과 祁連 사이에 있다가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당해 그 왕의 두개골을 匈奴의 老上單于가 술잔을 만들었고, 대월지는 멀리 도망가 大宛의 서쪽으로 지나 大夏를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嬀水 북쪽에 도읍을 삼고 王庭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大夏의 일부는 月氏의 공격을 받은 다음에 그 일부가 인도로 밀려들어가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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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6)
大夏 : 나라 명칭으로 박트리아(Bactria 또는 Bactriana)를 말한다. 힌두쿠시(Hindu Kush)산맥과 아무다리아(Amu Darya) 사이, 즉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로 전246∼전138에 존재했다. 페르시아어에서는 Bākhtar, 아랍어와 인도어에서는 Bhalika로 표기한다. 전126년 張騫이 방문하였을 당시에는 大月氏의 침입을 받아 왕국이 망한 뒤였다고 한다. 「大宛列傳』에서는 大宛의 서남쪽으로 2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정착생활을 하여 성곽과 가옥을 가지고 있으며 大宛과 풍속이 같다고 하였다. 또 大君長은 없지만 때때로 성읍에 小長이 세워지고, 그 군대는 약하고 싸우기를 두려워하지만, 사람들은 장사는 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大月氏가 흉노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도망쳐 와서 그들을 점령하고 모두 臣屬시켰다고 하였다. 인구는 대략 100여 만 명이 되고, 도읍은 藍市城인데, 시장이 있어 각종 물건들을 판매하며, 그 동남쪽에는 身毒國이 있다고 하였다(『史記』 권123 「大宛列傳」 : 3164). 또한 『漢書』 「西域傳」에 따르면 대월지가 본래 敦煌과 祁連 사이에 있다가 묵특선우에게 공격을 당해 그 왕의 두개골을 匈奴의 老上單于가 술잔을 만들었고, 대월지는 멀리 도망가 大宛의 서쪽으로 지나 大夏를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嬀水 북쪽에 도읍을 삼고 王庭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大夏의 일부는 月氏의 공격을 받은 다음에 그 일부가 인도로 밀려들어가 명맥을 유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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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어
- 이름
- 양신(楊信), [조]신, 양신, 양신, 양신, [양]신
- 지명
- 한나라, 한나라, 조선, 주천군(酒泉郡), 한나라, [대]월지, 대하(大夏),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