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畫師)를 지정함
이 달에 처음으로 황서화사(黃書畵師;키후미노에카키)주 001
번역주 001)
와 산배화사주 002(山背畵師;야마시로노에카키)를 지정하였다. 『新撰姓氏録』 山城國 諸蕃 黄文連조에 「出自高麗國人久斯那王也.」라고 보인다. 黄書氏가 이 黄文氏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고구려 久斯那王을 선조로 하는 도래계 씨족의 畵師집단으로 볼 수 있다. 『聖德太子傳曆』에 따르면 “冬10월에 태자가 모든 절의 불상을 그려 장엄하게 하고자 黃文畵師, 山背畵師, 簀秦畵師, 河內畵師, 楢畵師 등을 정하여 그 호구의 과세를 면제하고 영원히 名業하게 하였다.”고 하여 職業部로서 조정에 봉사한 것을 알 수 있다. 薬師寺 소장 『佛足石碑』銘에 따르면, 唐의 王玄策이 中天竺에서 轉寫한 佛足圖를 日本使人 黄書本実이 唐普光寺에서 다시 전사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黄文의 姓을 붙인 画師는 사서에 산견한다. 『日本書紀』 天武 12년조에 黄文造가 連姓을 받았고, 奈良時代가 되면 758년(天平寶字 2)의 「畵工司移」로 기록된 黄文連乙萬呂 등의 이름이 보인다. 律令制하에서는 中務省 畵工司에 소속되어 회화제작에 종사했으며, 궁전 및 사원 종교벽화, 調度의 부설 때에는 장식, 문양, 채색 등의 일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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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주 001)
『新撰姓氏録』 山城國 諸蕃 黄文連조에 「出自高麗國人久斯那王也.」라고 보인다. 黄書氏가 이 黄文氏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면 고구려 久斯那王을 선조로 하는 도래계 씨족의 畵師집단으로 볼 수 있다. 『聖德太子傳曆』에 따르면 “冬10월에 태자가 모든 절의 불상을 그려 장엄하게 하고자 黃文畵師, 山背畵師, 簀秦畵師, 河內畵師, 楢畵師 등을 정하여 그 호구의 과세를 면제하고 영원히 名業하게 하였다.”고 하여 職業部로서 조정에 봉사한 것을 알 수 있다. 薬師寺 소장 『佛足石碑』銘에 따르면, 唐의 王玄策이 中天竺에서 轉寫한 佛足圖를 日本使人 黄書本実이 唐普光寺에서 다시 전사하여 가져왔다고 한다. 黄文의 姓을 붙인 画師는 사서에 산견한다. 『日本書紀』 天武 12년조에 黄文造가 連姓을 받았고, 奈良時代가 되면 758년(天平寶字 2)의 「畵工司移」로 기록된 黄文連乙萬呂 등의 이름이 보인다. 律令制하에서는 中務省 畵工司에 소속되어 회화제작에 종사했으며, 궁전 및 사원 종교벽화, 調度의 부설 때에는 장식, 문양, 채색 등의 일을 담당하였다.
- 번역주 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