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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성씨록(姓氏錄)』 에 이르기를, 구자직(駒子直; 고마코노아타히)의 둘째 아들...]

『성씨록(姓氏錄)』 에 이르기를, 구자직(駒子直; 고마코노아타히)의 둘째 아들 강수직(糠手直; 누카테노아타히)은 문옥숙녜(蚊屋宿禰; 가야노스쿠네), 문옥기촌(蚊屋忌寸; 가야노이미키) 등 2성의 조상이다.
 
【주석】
1. 성씨록왈(姓氏錄曰)
이 일문은 〈판상계도(坂上系圖)〉 강수직(糠手直)조에 인용된 것으로, 제23권 우경 제번(상) 「판상대숙녜(坂上大宿禰)」 조(812)의 일문이다. 현재 초략본의 해당 조에서는 후한(後漢) 영제(靈帝)의 아들 연왕(延王)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2. 구자직(駒子直)
구자직에 대해서는 [일문21]의 구자직 항목 참조.
3. 강수직(糠手直)
〈판상계도(坂上系圖)〉에서는 구자직(駒子直)의 아들인 갑유직(甲由直)의 아우로 강수직(糠手直)을 들고, 그 말미에 본조의 일문을 기록하였다.
4. 문옥숙녜(蚊屋宿禰)
문옥(蚊屋; 가야)이라는 씨명은 문야(蚊野; 가야), 초(草; 가야)라고도 표기하며, 근강국(近江國) 애지군(愛智郡) 문야향(蚊野鄕), 즉 현재의 자하현(滋賀縣) 애지군(愛知郡) 진재정(秦在町) 상문야(上蚊野)·북문야(北蚊野) 일대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옥숙녜의 원래 성은 직(直)이었는데, 연(連)과 기촌(忌寸)을 거쳐 숙녜(宿禰)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 천무(天武) 11년에 왜한직(倭漢直) 등과 함께 연(連) 성을 갖게 되었고(『일본서기』 天武 11년 5월 甲辰條), 천무(天武) 14년에 왜한련(倭漢連) 등과 함께 기촌(忌寸)이라는 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동 天武 14년 6월 甲午條). 연력(延曆) 6년에 종7위하 문옥기촌정족(蚊屋忌寸淨足)이 숙녜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속일본기』 延曆 6년 6월신축조).
문옥숙녜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문옥숙녜청족(蚊屋宿禰淸足, 『類聚國史』 99, 叙位, 大同 4년4월甲午條) 외에문옥숙녜(蚊屋宿禰, 天長 2년 11월 12일부 「尾張國檢川原寺田帳」 『平安遺文』 1-36)가 있다.
5. 문옥기촌(蚊屋忌寸)
문옥(蚊屋; 가야)라는 씨명은 문야(蚊野; 가야), 초(草; 가야)라고도 표기하며, 근강국(近江國) 애지군(愛智郡) 문야향(蚊野鄕), 즉 현재의 자하현(滋賀縣) 애지군(愛知郡) 진재정(秦在町) 상문야(上蚊野)·북문야(北蚊野) 일대의 지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문옥기촌의 원래 성은 직(直)이었는데, 연(連)을 거쳐 기촌(忌寸)이 되었다. 천무(天武) 11년에 왜한직(倭漢直) 등과 함께 연(連) 성을 갖게 되었고(『일본서기』 天武 11년 5월 갑진조), 천무 14년에 왜한련(倭漢連) 등과 함께 기촌(忌寸)이라는 성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동 天武 14년 6월 甲午條).
문옥직(蚊屋直)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동한초직족도(東漢草直足島, 『일본서기』齊明 7년 5월 정사조)가 있으며, 문옥기촌이라는 씨성을 가진 인물로는 문옥기촌목간(蚊屋忌寸木間, 『일본서기』 持統 7년 9월 임인조), 문옥기촌추정(蚊屋忌寸秋庭, 養老 6년 6월 14일 「山代忌寸眞作墓誌銘」 『寧樂遺文』 補2-2), 문옥기촌자충(蚊屋忌寸子虫, 『속일본기』寶龜 3년 4월 경오조), 문옥기촌정족(蚊屋忌寸淨足, 『속일본기』 延曆 6년 6월 신축조 등)이 있다.
문옥기촌목간은 임신의 난에서 세운 공로로 직광삼(直廣參)이라는 관위가 추증되었다(『일본서기』 持統 7년9월壬寅條). 문옥기촌추정은 「산대기촌진작묘지명」 에 그의 처로 보인다. 문옥기촌자충은 천평(天平) 11년에 대화국(大和國) 고시군(高市郡)의 소령(少領)에 임명되었다(『속일본기』 寶龜 3년 4월 경오조). 당시 관위는 외종8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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