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지된 조선으로 가는 연락선을 다시 보내는 일
1635(寬永 12)년 을해(乙亥)
一 (一) 4월 11일 사카이 사누키노카미(酒井讚岐守)주 001님께 말씀드린 조항들이다. “지난 겨울 소송이 있었을 때 집권들의 지시로 잇켄(一件)이 끝날 때까지 조선에 보내는 배를 중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도항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이제 잇켄이 정리되었으니 연락선을 보내서 일의 경과를 [조선에] 통보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마침 ‘마예(馬藝)’를 하는 조선인들주 002
각주 002)
도 [조선으로] 건너 갈 것입니다. 주 003 홍동지(洪同知)·최판사(崔判事)주 004도 이 일이 종결되었다는 것을 조선에 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할까요?” 지시하시는 대로 하겠다고 아뢰었더니 사누키노카미(讚岐守)님은 지당하다고 하셨고, 더욱이 이 뜻을 오이노카미(大炊頭)주 005님과 이즈노카미(伊豆守)주 006님에게 보고하라고 하셨다.조선시대 말을 타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 서기 등의 재주를 부리는 사람. 본 사료에는 마예(馬藝)라고 되어 있는데, 보통 마상재(馬上才)라고 한다. 1634년 9월 쇼군 이에미쓰가 닛코(日光)에서 돌아온 이튿날(21일) ‘조선의 승마술을 보고 싶다’는 쇼군의 의향이 발단이 되어 쓰시마 번은 조선에 사절을 급파, 마상재 초청의사를 전했다. 쓰시마 번이 조선 측에 마상재의 파견을 요청한 1634년 당시 일본에서는 쓰시마 번주 소 요시나리와 가신 야나가와 시게오키 간의 갈등, 대립이 이미 본격화되어 막부가 심리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조선은 마상재 파견을 수락하였고, 이 사행은 1635년 정월에 조선을 출발, 3월 말 에도에 도착, 쇼군과 다이묘들에게 마술(馬術)을 선보인 후 7월 조선에 귀국했다. 막부는 야나가와씨가 배제된 상태에서 마상재를 초빙하도록 지시하여, 이 건을 통해 소씨의 대조선 외교능력을 시험해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사행은 역관(홍희남과 최의길)의 단독사행이면서 마상재를 동반하고 에도까지 다녀온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 각주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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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02)
조선시대 말을 타고 그 위에서 물구나무 서기 등의 재주를 부리는 사람. 본 사료에는 마예(馬藝)라고 되어 있는데, 보통 마상재(馬上才)라고 한다. 1634년 9월 쇼군 이에미쓰가 닛코(日光)에서 돌아온 이튿날(21일) ‘조선의 승마술을 보고 싶다’는 쇼군의 의향이 발단이 되어 쓰시마 번은 조선에 사절을 급파, 마상재 초청의사를 전했다. 쓰시마 번이 조선 측에 마상재의 파견을 요청한 1634년 당시 일본에서는 쓰시마 번주 소 요시나리와 가신 야나가와 시게오키 간의 갈등, 대립이 이미 본격화되어 막부가 심리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조선은 마상재 파견을 수락하였고, 이 사행은 1635년 정월에 조선을 출발, 3월 말 에도에 도착, 쇼군과 다이묘들에게 마술(馬術)을 선보인 후 7월 조선에 귀국했다. 막부는 야나가와씨가 배제된 상태에서 마상재를 초빙하도록 지시하여, 이 건을 통해 소씨의 대조선 외교능력을 시험해보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사행은 역관(홍희남과 최의길)의 단독사행이면서 마상재를 동반하고 에도까지 다녀온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