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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무부련(巫部連; 가무나기베노무라지)

무부련(巫部連; 가무나기베노무라지)
 위와 같다. 웅략천황(雄略天皇; 유랴쿠텐노)의 몸이 심상치 않아 축자(筑紫; 츠쿠시) 풍국(豐國; 도요노쿠니)의 기무(奇巫; 구시카무나기)를 불러들여 진량(眞椋; 마쿠라)을 다해 무(巫; 가무나기)를 이끌고 봉사하도록 하였다. 이에 무부련(巫部連; 가무나기베노무라지)의 성을 하사하였다.
 
【주석】
1. 무부련(巫部連)
무부(巫部)라는 씨명은 신의 마음을 음악이나 춤을 통해 온화하게 만든 후 신의(神意)를 얻는 무부(巫部)의 반조씨족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무부련씨 일족으로는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12년(845) 7월 기미조의 무부련계마려(巫部連繼麻呂)와 무부련계족(巫部連繼足), 무부련길계(巫部連吉繼)가 있다. 이들은 화천국 대조군(大鳥郡) 사람으로 승화 12년 7월에 당세숙녜(當世宿禰)라는 씨성을 받았다.
당세숙녜 일족으로는 『일본삼대실록』 정관(貞觀) 5년(863) 8월 17일 정축조의 당세숙녜고문(當世宿禰高門), 관평(寬平) 6년(894) 8월 11일 「검비위사식문(檢非違使式文)」(『政事要略』 61)의 당세숙녜기종(當世宿禰基宗)이 있다.
2. 동상(同上)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채녀신과 조상이 같다. 이향아색웅명의 후손이다(采女臣同祖. 伊香我色雄命之後也.)”라고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다.
3. 웅략천황어체불예(雄略天皇御體不豫)
『신찬성씨록』 완본에는 ‘웅략’ 앞에 ‘대박뢰유무천황시(大泊瀬幼武天皇諡)’ 8글자가 있었고, ‘웅략’ 이후 ‘천황’ 2글자는 없었을 것이다. 이하 전승은 『속일본후기』 승화 12년(845)7월 기미조에 “옛적 대장곡치무천황(大長谷稚武天皇)의 치세에 공성(公成)의 시조 진량대련주(眞椋大連奏)가 축자(筑紫)의 훌륭한 무속인을 데리고 와서 천황의 중병을 고친 일이 있다. 이에 천황의 총애를 받아 무부(巫部)의 성을 받았다”라는 기록과 대응한다.
4. 축자풍국기무(筑紫豐國奇巫)
축자는 현재 규슈이며, 풍국은 풍전(豐前)과 풍후(豐後) 2국으로 현재 복강현(福岡縣)일부와 대분현(大分縣) 일대이다. 기무는 ‘뛰어난 무자(巫者)’, 즉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자를 의미한다.
5. 진량(眞椋)
『선대구사본기』 천손본기에 “11세손 물부직량련공(物部直椋連公), 무부련(巫部連), 문도련(文島連). 수좌련(須佐連) 등의 조상이고 이거불숙녜(李莒弗宿禰)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에는 물부직량련공(物部直椋連公)으로 나온다.
6. 사성무부련(賜姓巫部連)
『속일본후기』 승화 12년(845) 7월 기미조에는 ‘사성무부(賜姓巫部)’라고 나오며, 연을 사성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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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부련(巫部連; 가무나기베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2_0010_0080_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