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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성산산성

城山山城
  • 저필자
    김지영(숙명여자대학교)
  • 시대
    고구려
  • 위치
  • 원소장처
    요녕성 대련시 장하시 선산진 사하촌 만덕둔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둘레: 3,112m
입지
장하시 성산향 사하촌 만덕둔 서북 1km 산에 위치
유적개관
1985년 대련시 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선정된 성산산성은 둘레 3,112m가량의 석축산성이다. 대련시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2000년초 복원하였다. 성산산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된 포곡식 산성이다. 내성은 동북쪽의 봉우리에 축조되었다. 내성은 둘레가 약 120m가량 된다. 서북쪽 성벽은 내성과 외성을 겸하고 있다. 성문이 2개소 설치되었다. 성내에는 저수지 1기, 요망대 2기, 점장대 1기 및 건물지들이 있다.
참고문헌
「東北史地」2006-4
해설
중국 요녕성 대련시 장하시 성산진 사하촌 만덕둔 서북 1km 거리의 성산에 위치하고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이다. 전성(前城)과 후성(後城) 2개의 성을 포괄하여 성산산성이라 칭한다. 산성은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벽류하(碧流河)의 동쪽 연안에 세워져 있으며, 연안로를 따라 건안성(建安城)이 있는 개주(蓋州)로 연결된다. 남쪽으로 약 25km 거리에 황해가 흐르고 동남쪽 약 35km 거리에 장하시가 자리하고 있다. 벽류하는 보란점시와 장하시의 경계가 되는 대련 최대의 담수 하천이다. 1985년 대련시 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선정되었다가 2000년 초 대련시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하였다. 발굴 조사는 여러 차례 진행했었으나 2005년 전성과 후성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성산산성의 둘레, 진행 방향, 구조 및 분포 상황 등에 대한 조사와 측량을 진행하였다.
성산(혹은 전성산)은 이전에는 홍적산(紅赤山)이라 칭하기도 했는데 최고 지점은 해발 311m인데 뒤에 산 위에 성이 있었던 이유로 ‘성산’이라 칭하게 되었다. 서, 북, 남쪽의 산세는 비교적 가파르고 동쪽은 약간 완만하다. 산성은 기본적으로 해발 200m 이상의 산 능선을 따라 화강암을 다듬어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북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동쪽이 낮으며, 북쪽이 좁고 남쪽이 넓은 편이다. 성 둘레의 길이는 3112.5m로 모두 6개의 성문과 북부 고지대에 점장대와 내성, 서쪽 구간에 2개의 감시초소(요망대 瞭望臺), 동쪽 구간에 1개의 치(雉)가 설치되어 있고, 내성 중부와 남부는 비교적 평탄하고 완만하며, 저수지 제방, 건축유적 등이 있다. 또한 성 내부에 법화사 상·하원과 도교 건축물인 오룡궁 등이 있다.
동쪽 성벽은 전체 길이 996.5m로 성문 4개와 치 1개가 있는데, 원래 남아 있는 벽의 높이는 0.5-9.5m 사이인데 새로 복원하면서 대체로 2-6m사이의 높이로 쌓았다. 북쪽 구간에 있는 성벽이 가장 낮은데 전성산에서 해발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길이는 30m로 중간에 남은 원래 벽의 높이가 3.5m이다. 서쪽 구간의 성벽은 전체 길이가 1176.5m이다. 산세가 가파르고 소나무가 주로 심어져 있으며 내성의 기점이자 출입구이면서 서쪽 성벽 구간의 유일한 성문인 5호문을 포함하고 있다. 일부 성벽이 내성의 성벽이면서 동시에 외성의 성벽이기도 하다. 일부 구간은 자연 암석으로 성벽을 대신하기도 한다. 내성을 포함한 유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구간의 성벽은 전체를 모두 복원하였다. 내성은 둘레의 길이가 120.5m이며 2개의 문이 있다. 내성에는 ‘점장대(点將臺)’, 저수지, 봉화대, 요망대 등의 터가 있으며 홍색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북쪽 산등성이를 따라 한 줄기 성벽이 별도로 축조되어 있다. 현재 내성으로 구획되어 있는 곳은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산성의 남쪽에 위치하는 구간의 성벽 길이는 1,946m이며, 성벽은 대체로 구불구불하고 험하다. 산세가 비교적 가파르고 성벽이 계곡을 통과하며 특별히 험준한 곳이나 큰 바위가 돌출해서 솟아 있는 곳은 그 자체를 천연 성벽으로 삼고 있다. 6호문이 있으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0.2-9m 사이이며, 성벽의 너비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4-4.6m 사이이다.
출토유물은 주로 고구려 시기의 철기가 대부분으로 낫, 칼, 창, 추, 도끼, 못, 허리띠 장식 등이 있으며, 토기와 금나라 때의 쟁기, 청나라 때의 동전 등도 출토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성산산성을 석성(石城) 혹은 적리성(績利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불확실하다. 성산산성은 고구려시기의 대형산성으로 전성과 후성이 가까운 거리에 분포하며 합쳐져 있는 ‘자매성 姉妹城’의 형식으로 고구려 산성 중에는 많지 않지 않은 형식이다. 다만 높은 산의 굽은 골짜기 위에 축조했다는 고구려 산성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성의 규모나 구조, 축조방식 및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축조 시기는 고구려 후기로 볼 수 있으며, 전성이 후성보다 앞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현재 성산산성의 위치로 볼 때 위패산성, 대흑산산성, 득리사산성 등 3개의 산성과 함께 고구려 요동반도 남부에 위치하여 요동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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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8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