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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흥룡절(興龍節)의 고려국 사신과 유지(劉摯)의 『고려국본말(高麗國本末)』 서문

  • 날짜
    1090년 12월 (음)(元祐 5年(1090) 12月 乙未)
  • 출전
    卷452, 元祐 5年(1090) 12月 乙未
을미일, 서하가 사신을 보내 흥룡절을 하례하였다. 고려국과 삼불제국이 사신을 보내 들어와 조공하였다.
유지(劉摯)주 001
각주 001)
劉摯 : 1030~1097. 북송의 관인. 북송 永靜軍 東光(현재 河北省에 속한 지역) 사람으로 字는 莘老이다. 嘉祐 연간에 진사가 되었다.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고, 이로 인해 귀양을 가게 되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侍御史로 발탁되었다. 蔡確, 章惇 등의 죄를 논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탄핵시켰다. 元祐 원년(1086)에 御史中丞이 되었고 元祐 6년(1091)에는 右僕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해에 章惇과 은밀히 교류했다는 죄에 연루되어 知鄆州로 폄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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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고려국본말(高麗國本末)』의 서문을 썼다. “고려는 예전에 조공을 통하여서 진종 초에 일찍이 사신으로 보내어 와서는, 저들 스스로 북쪽의 오랑캐에게 괴롭힘을 당해 고통스러워 송 조정에 신속하여 요와의 우호를 끊기를 원하여 왕사(王師)의 원조를 요청한다고 말하였다. 이때에 조정이 바야흐로 요와 화친을 맺어서 고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마침내 가버리고는 이때부터 오지 않았다. 희녕 초에 나증이 복건에서의 조운을 거느렸기에 상선을 빌려 우호의 뜻을 보내 초청하였다. 이때에 신종이 오랑캐를 때릴 뜻이 있어서 그 이야기에 기뻐하여 곧바로 나증을 제치부사로 삼아 (고려와의) 일을 맡게 하였다. 얼마 있다가 (고려가) 조정에 들어와 공물을 바치니 조정이 대우하는 예와 사여하는 법식이 모두 일반적인 등급이 아니었다. 은혜로운 명령을 직접 내려주고 차운(次韻)하여 그 시에 화답하기에 이르니 객관에 있을 때는 안부를 묻지 않은 날이 없고, 여러 차례 금원(禁苑)으로 나아가 진기한 보물을 내려줄 정도였다. 사신이 오가는 길에서의 접대는 호화로움이 극에 달하여 양절과 회남 지역의 주군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 사신이 다다르는 주현이나 진채(鎭砦)는 모두 미리 여러 가지 명목으로 행호(行戶)를 징발하여 각기 물품으로 부담하였으며, 주현 경계에서 맞이하고 종일 따라다니며 고려의 사신이 매매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경계를 지나간 뒤에야 그쳤다. 그리고 말과 안장, 기물 등은 모두 좋은 것을 사용하였으며, (사신이) 머무는 집은 비단과 그림으로 꾸미면서 때로는 사방에서 구하니 사람들이 많이 본업을 잃어 도망치기도 할 정도였으며, 혹은 죽는 경우도 있었다. 무릇 조정의 명령이 엄하여 고려 사신을 맞이하는 인반으로는 모두 환관을 썼으니, 이와 같이 된 것이다. 원풍(元豐) 8년에 사신이 돌아간 이래로 지금까지 다시 (사신이) 이른다. 조정은 지항주(知杭州) 소식(蘇軾)과 어사중승(御史中丞) 소철(蘇轍)의 요청을 써서 백성의 고통이 더해지는 것을 살펴서 줄이고 여정의 기한을 정하여 고려 사신이 경계로 들어오면 2개월 내에 대궐에 도착하도록 하였다. 인반관 향재(向縡), 조희로(趙希魯)에게 물었더니, 연로에서 소요된 비용이 10에 6, 7은 없어졌다고 말하였다.”

  • 각주 001)
    劉摯 : 1030~1097. 북송의 관인. 북송 永靜軍 東光(현재 河北省에 속한 지역) 사람으로 字는 莘老이다. 嘉祐 연간에 진사가 되었다.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고, 이로 인해 귀양을 가게 되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侍御史로 발탁되었다. 蔡確, 章惇 등의 죄를 논하는 등 많은 사람들을 탄핵시켰다. 元祐 원년(1086)에 御史中丞이 되었고 元祐 6년(1091)에는 右僕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해에 章惇과 은밀히 교류했다는 죄에 연루되어 知鄆州로 폄출되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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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룡절(興龍節)의 고려국 사신과 유지(劉摯)의 『고려국본말(高麗國本末)』 서문 자료번호 : jt.k_0006_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