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정부는 독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메이지 정부는 독도를 어떻게 보았을까?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설치된 최고 통치 기관인 태정관은 조선의 사정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외무성을 통해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정탐을 시작하였다. 1869년 12월에 외무성 관료 3명은 조선에 파견되어 부산에 도착한 후 초량의 왜관에 머물며 조선의 사정을 염탐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870년에 작성된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에는 마지막 항목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염탐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2) 태정관 지령(1877년)
![](/download.do?fileName=eddok_0041010.jpg&levelId=eddok.d_0004_0050_0020)
![기죽도약도(1877년)](/download.do?fileName=eddok_0041020.jpg&levelId=eddok.d_0004_0050_0020)
기죽도약도(1877년)
태정관 지령과 관련하여 일본 내무성 질의서에 첨부된 지도인 ‘기죽도약도’에서는 독도가 당시 일본이 부르던 ‘송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2016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수정을 거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독도 관련 기술 중의 일부이다. 교재에 나온 일본 측 자료를 근거로 이 내용에 반박하는 글을 500자 내외로 써 보자.
‘다케시마’는 오키 제도의 북서 약 158km의 일본해상에 있는 군도로, 시마네현 오키노시마쵸에 속해 있다. 이미 에도 시대에 일본은 ‘다케시마’의 영유권을 확립하였고……
- 이궁서점, 지리A 교과서
- 이궁서점, 지리A 교과서
![](/download.do?fileName=eddok_0041030.jpg&levelId=eddok.d_0004_0050_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