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주재 러시아제국 총영사관 서리영사가 1911.3.25. № 11로 도쿄주재 러시아제국 공사에게 보고한 문서 사본
Копия с донесения Управляющего Российским ИМПЕРАТОРСКИМ Генеральным Консульством в Корее к Российскому ИМПЕРАТОРСКОМУ Послу в Токио от 25 Марта 1911 г. За alternative 11.
현재 조선 내부 상황이 공식적 영역에서는 완전히 평온하다고 인정되고 있을지라도 어쨌든 정부로 하여금 여전히 무장 봉기자들의 활동에 대처해야만 하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장 봉기자들의] 활동이, 성공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지만, 국내의 정상적인 생활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살펴보건대, 평화로운 한국 주민들조차 이 빨치산 투쟁으로 인해 매우 고통 받고 있다는 소문들은 신뢰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무장 봉기자들의 약탈행위에 대한 비난이 과장되면 조선의 농민들은, 한편으로는 폭도들의 소재지를 당국에게 신고해야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숨겨야만 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간행물들은 일본부대와 무장 봉기자들의 충돌에 대해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주목할 만한 결과가 없는 단지 소소한 전투입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인들은 4년 동안 경기도 전역을 위협하던 강기동 대장을 체포할 수 있었다는 굵직한 성과를 기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포착할 수 없는 강을 힘으로 제압한다는 희망을 버린 이곳 당국은 그의 체포에 500엔의 포상금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조치결과는 당국에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게 하지 않았는데, 강은 원산에 있는 주막들 중 한 곳에서 포착되었고 체포되었습니다. 한국의 헌병대장 아카시주 001 장군은 원산 경찰청에 그의 체포에 대해 감사의 전문을 보냈습니다. 현재 강은 재판을 받기 위해 이미 서울로 압송된 상태입니다.
신문들의 보도에 따르면 빨치산 부대들과의 투쟁은 황해도와 조선의 북쪽에서도 역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이 지역의 무장 봉기자들에 대응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군대의 일부가 원래의 자기 위치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을 안심시키는 이러한 보도들에도 불구하고 이곳 지역에서 폭도무리들을 근절시키는 일이 아직 끝났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무장 봉기자들과의 투쟁과 및 조선인 헌병보조원의 양성에 예외적으로 많은 자금을 할당하였다는 점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위험스러운 북쪽의 도당들이 여전히 해산되지 않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이 잡히지 않았다는 상황이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깊은 존경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