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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진숙녜(秦宿禰; 하타노스쿠네)와 조상이 같으며, 융통왕(融通王)의 후손이다.
 
【주석】
1. 진기촌(秦忌寸)
진(秦)의 훈독은 ‘하타’이다. 진기촌씨(秦忌寸氏) 선조의 출자에 대해서는 앞의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조(740)에 중국 진 시황제의 후손으로 씨명의 기원 설화를 기술하고 있다. 웅략조 때에 진주공(秦酒公)이 많은 견직물을 헌상했기 때문에 우즈마사[太秦]라는 씨족의 이름을 받았으며, 천평(天平) 20년(748)에는 이미길(伊美吉, 忌寸)의 성을 받았다. 한편 진씨를 중국 왕조의 진 시황제의 후손으로 칭하게 된 배경으로, 『삼국지』 「위서」 한전에 진한인(辰韓人)이 진(秦)의 망명인으로 고역을 피하여 한국에 왔으며 언어도 진어(秦語)와 유사하여 진한(秦韓)이라고도 하였다는 기록을 들고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진씨는 신라로부터 왔지만 원출자는 중국 왕조의 진이다. 그러나 진의 훈독이 하타[波陀]였듯이 원래 하타라는 말이 있었고 후에 이를 진(秦) 자로 붙였다고 생각된다. 하타라는 말에 대해 『신찬성씨록』 좌경 제번(상) 「태진공숙녜(太秦公宿禰)」 조에 “진왕(秦王)이 바친 실, 솜, 명주, 비단은 짐이 입으니 부드럽고 피부에 따듯해서 파다(波多)를 성으로 하사하였다”라 하고, 『고어습유』 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온다. 또 범어로 ‘pata’는 견포(絹布)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명주를 짜는 사람을 복부(服部), 진씨(秦氏)라 칭하고 명주를 짜는 도구를 하타라고 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하타’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해(海)를 의미하는 ‘바다’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또 일본에 도래한 사람들이 고향의 지명을 씨족명으로 삼았다는 지명설도 있다.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은 하타가 진민(秦民)이 거주한 지명을 칭하는 것으로 보고 동해안의 지명 중 현재의 울진 지방으로 비정한다. 『삼국사기』 잡지4(지리2)에 울진의 영현(領縣)이던 해곡(海曲)의 고명이 파차(波且)였다고 한다. 광개토왕비문에 나오는 아단성(阿旦城)을 『삼국사기』 에 아차성(阿且城)으로 표기한 사례를 통해 파차(波且)의 차(且)는 원래 단(旦)이었다고 생각된다. 하타라는 어원이 진씨가 도래하기 전의 지명이라는 설과 관련하여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도 ‘파단(波旦)’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진씨의 출자도 자신의 고향명을 씨명으로 했다고 보이며, 파단(波旦)은 진한 12국 중의 하나인 울진의 우유국(優由國)으로 추정된다. 진씨 일족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도래씨족 중에서도 웅족으로 발전하여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 정사를 비롯하여 『정창원문서』, 『만엽집』, 목간 등에 많은 인명들이 산견되고 있다. 진씨 동족의 분포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음을 보여 준다.
2. 진숙녜(秦宿禰)
진숙녜에 대해서는 「진숙녜(秦宿禰)」 조(999) 참조.
3. 융통왕(融通王)
융통왕에 대해서는 「대리사(大里史)」 조(9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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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4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