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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키노발해성

10) 우물

1997년과 1998년에 제15구역에서 조사가 되었다. 금당지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약 18.3m의 거리에 위치한다. 우물의 서쪽 가까이에는 성벽이, 북동쪽 가까이에는 4호 가마가 각각 위치한다(도면 51). 사찰구역의 남서쪽 모서리 안쪽에 해당된다.
도면 51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포함 제15구역 평면도(1997)
1997년에는 우물이 1.7m 깊이까지 그리고 그 가까이의 차양 흔적이 함께 조사되었다. 우물의 벽은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우물 석벽의 윗부분은 지표 아래 50~60㎝ 깊이에서 노출되었다. 우물의 윤곽은 우물의 벽체가 무너져 내린 돌무지와 우물의 굴광 구덩이를 채운 짙은 색의 토양에 의해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우물의 북서쪽에는 성벽과의 사이에 ‘ㄱ’자 모양의 부석시설(浮石施設)이 있다(도면 52). 이 부석시설은 큰 돌을 한 겹 혹은 두 겹 깔아 만든 것으로서 우물과 부석시설 남서쪽에 위치하는 ‘부와유구(浮瓦遺構)’를 서로 연결해 주고 있다. 부석시설의 너비는 0.4~0.5m이다.
도면 52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과 부석 및 부와유구 평면도(1997)
‘부와유구’는 암키와들이 등면이 위로 간 상태로 정연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도면 53). 암키와들 사이와 위에서 붉은색의 딱딱한 벽토들이 붙어 있었고, 수키와는 보이지 않았다. 이 부와유구의 규모는 길이 2m, 너비 1.3m이다. 발굴조사단은 이 부와유구를 우물과 성벽 사이의 공간에 시설된 차양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 차양은 초석 기둥에 의해 지탱되었을 것으로 판단하였지만 초석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보고되지 않았다.
도면 53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부근 부와유구 모습(1997, 북서쪽에서)
우물 위에도 기와지붕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물 안과 그 밖에서 많은 와편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우물 주변으로 장방형으로 배치된 직경이 20㎝인 4개의 구멍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우물 위의 지붕을 지탱한 기둥구멍일 것이다(도면 51).
우물과 부석시설 그리고 부와유구를 함께 고려한다면 이 셋은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우물 주변은 자주 질퍽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한 부석시설을 지나 차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차양 아래에서 빨래를 한다거나 혹은 식기를 씻는 등의 행위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98년에는 우물 주변으로 4×4m 구획을 하여 우물과 우물 굴광 구덩이를 모두 조사하였다(도면 54; 55). 우물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우물 석벽과 굴광 구덩이 내의 채움 흙을 인공층 단위로 동시에 제거하였다. 윗부분의 굴광 구덩이는 크기가 3.30×2.75~2.80m이다.
도면 54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제8인공층 깊이 우물 평면도(1998)
도면 55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모습(1998)
우물은 먼저 크게 굴광 구덩이를 파고 바닥에 각목과 판재로 평면 방형이 되게 결구를 한 다음에 그 위로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우물 석벽과 굴광 구덩이의 사이 공간은 돌, 와편 등이 섞인 흙으로 채워 넣었다. 우물과 굴광 구덩이의 평면모양 그리고 크기는 깊이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우물의 평면 모양은 위와 중간 부분은 대체로 둥그스름하였으나, 아랫부분은 방형이었다(도면 56). 이 사실은 사각형의 나무 격자 위로 처음에는 우물 벽을 방형으로 쌓아 올리다가 위로 가면서 점차 원형으로 둥글게 쌓았음을 말한다. 우물의 평면이 방형이 되는 깊이는 레벨 기준점에서 3-20/-325㎝ 깊이, 다시 말해서 잔존 우물 상면에서 170~180㎝ 깊이이다. 우물 내부의 크기도 변동을 보였는데 직경이 제4인공층 깊이에서는 53~76㎝, 제5인공층 깊이에서는 72~82㎝, 제6인공층 깊이에서는 78~80㎝, 제7인공층 깊이에서는 82~108㎝, 우물 상면에서 -160/-170㎝ 깊이에서는 85×115㎝이다. 여기에서 각 인공층의 구체적인 깊이는 분명하지 않다. 각목과 판재를 사각형 모양으로 결구한 곳의 각목 길이는 우물 벽 안쪽으로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99 ㎝이다. 돌을 깔아 놓은 우물의 바닥 부분은 크기가 115×115㎝인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도면상의 각목 길이와는 약간 모순을 보인다.
도면 56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단면도 및 바닥 목재 평면도(1998)
우물의 벽을 이루는 석축부, 즉 석벽의 두께는 제5인공층 깊이에서는 45~75㎝, 제6인공층 깊이에서는 70~112㎝, 제7인공층 깊이에서는 72~96㎝, 제8인공층 깊이에서는 68~104㎝인 것으로 각각 보고되었다. 우물의 석벽은 제5인공층 깊이까지는 면석을 깊이가 25~40㎝인 크고 길쭉한 강돌을 사용하여 쌓았고, 안쪽은 작은 강돌과 와편으로 채워 넣었는데 드물게는 토기편도 섞여 있었다(도면 57; 58). 우물 석벽의 면석에 대해서는 그 아래로 우물의 평면이 방형이 되는 -320/-325㎝부터 다시 보고된 것이 있다. 이 깊이부터는 우물 석벽의 면석을 매우 큰 돌들로 쌓았다고 하였다. 다만 구체적인 크기는 제시되지 않았다.
도면 57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모습(1998, 동쪽에서)
도면 58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모습(1998, 북쪽에서)
우물의 석축부에서는 제6인공층 깊이에서 와편과 토기편 외에 3점의 주철제 솥편, 철제 못, 동물의 이빨 등이 발견되었다. 윤제 토기편은 366점이 출토되었다. 그 외 우물의 석축부에서는 4호 가마에서 발견된 것과 합쳐지는 반의 편이 출토되었다.
우물의 굴광 구덩이도 평면모양이 제5인공층 깊이까지는 말각 방형으로 모습을 가지다가, 그 아래 제6인공층 깊이에서는 둥근 원모양이 되고, 그 아래 제7인공층 깊이에서는 다시 사각을 모양을 가지는 등 변화를 보인다. 굴광 구덩이의 크기는 제6인공층 깊이에서는 남북 길이가 3.16m, 제7인공층 깊이에서는 서쪽 모서리와 동쪽 모서리 간 길이가 3.70m, 한 변의 길이 대략 2.70~2.80m이었다. 우물 굴광 구덩이를 채운 흙은 제7인공층까지는 암회색 사질토였다. 제8인공층부터는 간혹 단단한 흑색 사질토가 섞인 선명한 갈색의 단단한 모래로 바뀐다. 우물 굴광 구덩이에서는 와편이 모두 4,457점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물에서 약 1m의 깊이에서 두 개로 깨어진 큰 판돌이 발견되었는데 직경이 우물의 입과 비슷하였다. 때문에 우물을 원래 큰 판돌로 덮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우물 내부의 퇴적물은 레벨 기준점에서3 0-0㎝까지, 다시 말해서 우물 윗부분에서 깊이 160~170㎝까지는 대부분 자갈돌(500개 이상)과 약간의 수키와편으로 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우물 벽 쪽으로 두께가 4~5㎝인 큰 판돌의 쪼가리들이 있었다. 판돌 아래로 레벨 기준점에서 -290/-300㎝부터 -320/330㎝ 사이에는 돌과 와편이 드물게 섞인 뻘-모래였다. 이 뻘-모래에는 작은 숯들과 불탄 떡갈나무 작은 가지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이 층의 아랫부분의 토양에 대해서는 물 체질을 하였는데 다량의 생태자료(담수 작은 고둥, 바다 홍합 껍질, 작은 뼈 쪼가리들, 곤충 날개 등등와) 탄화 식물자료(개암 껍질, 잣 껍질, 우엉 가시 등등)가 확보되었다.
레벨 기준점에서 -320/-330㎝ 깊이, 다시 말해서 우물 상면에서1 90~200㎝ 깊이부터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물에서 22개체의 온전한 혹은 복원 가능한 토기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이 이 깊이와 그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토기 외에도 온전한 수키와들과 암키와들 그리고 와편들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 깊이 아래로는 물이 많이 차서 ‘손으로 더듬으면서’ 조사를 진행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레벨 기준점에서 -385/405㎝에서는 옹과 2개의 구멍을 낸 토기의 편이 노출되었다.
우물의 바닥에는 작은 혹은 중간 크기의 돌들을 깔아 놓았다(도면 56). 이 돌을 깔은 적석시설의 두께는 따로 보고되지 않았지만, 돌 깔은 것의 상면이 레벨 기준점에서 -410㎝ 깊이이고, 돌 깔은 것을 제거한 우물 바닥의 깊이는 레벨 기준점에서 -450㎝인 것으로 보고된 것으로 보아 약 40㎝ 정도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물 바닥 적석시설의 상면 높이에는 우물 석벽의 네 모서리에 틈을 내어 놓아 외부의 물이 우물로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모서리의 틈들은 동쪽 모서리는 지두문이 있는 암키와 절반으로, 북쪽, 서쪽, 남쪽 모서리의 틈은 큰 수키와 쪼가리로 덮었다. 서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상기한 옹과 2개의 구멍을 낸 토기편 그리고 큰 돼지의 턱뼈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희생의 흔적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만 우물의 바닥 위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희생의 흔적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우물을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주기 때문에 우물 바닥에 남아 있는 것은 우물을 사용하면서 부주의에 의해 떨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물 바닥 적석시설을 해체할 때에 목제의 굽이 있는 완이 1점(도면 1998-87), 그 부근에서 뒤집어진 상태로 흑색마연의 접시가 1점, 이와 나란히 6각형의 토기 편이 1점 각각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의례적인 의미를 가졌고, 우물 축조 시에 일부러 넣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물 바닥의 적석시설을 조사할 때에 2단으로 된 목조구조물이 발견되었다(도면 56; 59). 이 격자 형태의 목조 구조물은 북서, 남동 부분은 단면이 14×14×14㎝인 각목을 사용하였고, 남서와 북동 부분은 판재를 사용하였다. 각목의 길이는 석벽 아래로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 99㎝이었다. 서쪽 모서리 부분에는 각목이 너무 깊게 들어갔고, 북쪽 모서리에서는 각목이 안쪽으로 5㎝ 더 들어가 있었다. 남서쪽과 북동쪽의 판재는 편평한 부분을 밖으로 보이게 하였다. 이 판재의 너비는1 4㎝이다. 북쪽 모서리 부분의 아래 단 각목에는 크기가1 0×6㎝인 틈을 내고 그곳에 판재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판재가 단단하게 고정되게 이 틈에 길이 9~10㎝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서쪽 모서리 가까이에서는 바로 그 아래 단 각목에서 크기가 10×8㎝인 두 번째 틈이 발견되었다. 북쪽 모서리부터 이 틈의 가운데까지의 거리는 약 55㎝인데, 즉 서쪽 모서리 부분까지 거의 40㎝가 남아 있다. 이 틈은 비어 있었다.
도면 59 | 서북지역 북부 사찰구역 우물 바닥 모습(1998)
아래 각목과 위 각목 사이 그리고 아래 각목의 깊이에서 나무 여과기가 발견되었다. 이 나무 여과기는 2개의 나무를 엮어 만든 망상의 구조였다. 망상 구조물의 틀은 두꺼운 나뭇가지로 만들었고, 망상 자체는 가는 나뭇가지로 만들었다. 남아 있는 망상 구조물에서 두꺼운 끈으로 묶은 흔적이 확인되었다.
우물 바닥의 적석시설 아래로 각목과 판재 아래에서는 유사(流砂)가 발견되었다.
우물의 잔존 깊이는 바닥에 깔은 돌의 상면까지 약 2.8m가 된다. 우물 석벽의 윗부분은 ‘생토’ 상면에서 30~40㎝ 밖으로 돌출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원래 생활면에서 얼마나 위로 올라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물의 굴광 구덩이 밖에서는 제7인공층을 조사할 때에 4×4m 발굴구역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서 깊이 15~18㎝의 구덩이가 하나 발견되었는데, 내부 퇴적토가 숯, 나무 조각, 와편, 소토 등이 포함된 흑색 사질토였다(도면 54). 이 구덩이는 이웃하는 4호 가마보다 더 아래에 위치하는 8호 가마와 관련되었다. 우물 굴광 구덩이의 밖으로 북서쪽 모서리 부분에서는 지표에서 130~140㎝ 깊이에서 미니어처 용머리 소상 1점과 와당편 1점이 각각 출토되었다.
제9인공층을 조사할 때에 물이 너무 많이 차서 발굴구역의 남동쪽 모서리 부분에 물구덩이를 깊이 70~75㎝로 팠는데, 이곳의 제10~11인공층 깊이에서 구 표토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곳에서 관목의 가지들과 나무막대기들이 발견되었다. 그중한 막대기는 말목처럼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것이었다. 나무들이 잘 보존된 것은 이곳이 매우 습하였음을 말할 것이다.
우물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 중에서는 편병(도면 1998-250)(도면 911; 912), 화병(거란토기)(도면 1998-249)(도면 915), 구상호(도면 1998-257, 2)(도면 788, 4), 장동호(도면 1998-255, 2)(도면 784, 3), 구상호(도면 1998-255, 1)(도면 988, 2), 직구호(도면 1998-252, 1, 2)(도면 892, 7, 8), 발(도면 1998-252, 3; 254)(도면 848, 3, 4), 장동호(도면 1998-251, 1)(도면 784, 2), 동이(도면 1998-253)(도면 851, 10), 옹(도면 1998-259, 2)(도면 755, 2), 동이(도면 1998-259, 1)(도면 820, 12), 장동호(도면 1998-256, 1-2; 258, 1-2)(도면 784, 1, 4), 호(도면 1998-257, 1)(도면 788, 3) 등이 보고되었다. 이 토기들은 우물 상면에서 190~200㎝ 깊이부터 그 아래에서 출토된 것으로 판단된다. 우물의 바닥에서는 목제 잔(도면 1998-87; 248, 3)(도면 751, 1)과 토기 뚜껑(도면 1998-103-104)(접시로 보고)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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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물 자료번호 : kr.d_0016_0020_0010_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