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동고분군
高山洞古墳群
입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고산동 고산리의 대성산 서남쪽의 완만한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하며, 크게 보면 대성산성 일대의 대고분군 일대에 해당한다.
유적개관
발굴조사된 고분은 1936년과 1937년에 당산동마을 북방 700m일대에서 적석총 2기와 봉토분 7기, 1958년부터 3년간 식물원구역 일대에서 봉토분 20기, 대성산성 남문의 동남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한 기상수문국 동남쪽 가까이 분포하는 봉토분 6기로 모두 35기이다. 적석총은 기단식과 무기단식으로 구분된다. 2호분의 경우 15.5*10.1m 규모의 방형기단적석총이다. 석실봉토분 중에서 벽화가 그려진 것은 6기(1,7,9,10,15,20호분)이며, 그 중 측실 또는 감실을 갖춘 것은 4기(7,9,10,15호분)로 다른 고분에 비해 규모가 크다. 벽화의 주제는 인물풍속도와 사신도 중심으로 양분된다.
출토유물
* 호, 동이, 전돌, 금동못, 식금구, 금동영락, 금동 과대금구, 금동 산반주
참고문헌
「대성산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 1964
「평양성고구려돌칸 흙무덤」, 2003
「평양성고구려돌칸 흙무덤」, 2003
해설
평양직할시 대성구역 고산동 고산리의 대성산 서남쪽의 완만한 구릉지대를 중심으로 분포하며, 크게 보면 대성산성 일대의 대고분군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된 고분은 1936년과 1937년에 당산동마을 북방 700m일대에서 적석총 2기와 봉토분 7기, 1958년부터 3년간 식물원구역 일대에서 봉토분 20기, 대성산성 남문의 동남쪽 약 1km 지점에 위치한 기상수문국 동남쪽 가까이 분포하는 봉토분 6기로 모두 35기이다. 적석총은 기단식과 무기단식으로 구분된다.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 중에서 벽화가 그려진 것은 6기 (1, 7, 9, 10, 15, 20호분)이며, 그 중 측실 또는 감실을 갖춘 것은 4기(7, 9, 10, 15호분)이다.
이 가운데 1호분은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서 한 변의 길이가 20m를 넘는 단실묘이다. 널방[현실(玄室)]의 네 벽 모서리에 기둥을 그리고 동서북벽은 띠를 그려 상하로 구분한 뒤 상단에 사신도와 여러 무늬를 그렸는데, 사신도의 머리 앞에는 사신을 칭송하는 묵서가 쓰여 있다.
이 가운데 1호분은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서 한 변의 길이가 20m를 넘는 단실묘이다. 널방[현실(玄室)]의 네 벽 모서리에 기둥을 그리고 동서북벽은 띠를 그려 상하로 구분한 뒤 상단에 사신도와 여러 무늬를 그렸는데, 사신도의 머리 앞에는 사신을 칭송하는 묵서가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