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자녀가 무리를 나누어, 마침내 월수[군]에 정성을 다하였다.
열 명의 자녀가 무리를 나누어, 마침내 월수[군]에 정성을 다하였다.
『후한서』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로산 아래에 한 부부가 있었는데, 거듭 열 자녀를 낳았다. 애로이인 구륭의 형제가 한 사람씩 모두 취하여 처로 삼으니, 후에 점차 서로 많아졌다. [애로이] 종족 사람들은 모두 그 몸에 그림을 새겼는데 용의 문양을 본떴으며, 옷에는 모두 꼬리를 붙였다. 구륭이 죽은 뒤에도 대대로 계속 이어지다가주 001, 비로소 나뉘어 소왕을 두고, 이따금 마을을 이루어거나 계곡에 흩어져 살았다. 멀리 떨어진 황외이며 산천이 험하고 깊어, 사람이 난 이래 중국과 교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건무 23년(47)에 그 왕 현률이 병사를 보내 새에 붙어사는 오랑캐인 녹다주 002를 공격했는데, [녹다] 사람들이 약하여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때 천둥과 벼락·폭풍우가 치고 남풍이 회오리처럼 일어나 물이 역류하여 날아 솟구친 것이 이백여 리나 되니, 애로[이]의 무리들 가운데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수천 명이었다. 현률은 다시 그 [나라의] 여섯 왕을 보내 만여 명을 이끌고 녹다를 공격하였는데, 녹다왕이 [그들과] 싸워 그 여섯 왕을 죽였다. 애로[이]의 기로들이 함께 여섯 왕을 땅에 묻었으나, 밤에 짐승이 그 시체를 다시 꺼내서 그를 먹으니, 나머지 무리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퇴각하였다. 현률이 이에 황공하여, 그 기로들에게 일컬어 말하기를 ‘우리가 변방을 침입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지금 녹다를 공격하여 갑자기 하늘의 형벌을 받았으니, 중국에 성제가 있는 듯 하구나. 하늘이 그들을 돕는 것이 어찌 이리도 분명한가’라고 하였다. 현률이 마침내 종족 사람들을 이끌고 월수태수 정홍에 이르러 항복하고 내속을 구하였다주 003. 광무[제]는 현률 등을 봉하여 군장으로 삼았다주 004.”
• 참고
『後漢書』 卷86 哀牢 後牢山下有一夫一婦 復生十女子 九隆兄弟皆娶以爲妻 後漸相滋長 種人皆刻畫其身象龍文 衣皆著尾 九隆死 世世相繼 乃分置小王 往往邑居 散在谿谷 絶域荒外 山川阻深 生人以來 未嘗交通中國 建武二十三年 其王賢栗遣兵乘箄船 南下江漢 擊附塞夷鹿茤 鹿茤人弱 爲所禽獲 於是震雷疾雨 南風飄起 水爲逆流 飜涌二百餘里 箄船沈沒 哀牢之衆 溺死數千人 賢栗復遣其六王將萬人以攻鹿茤 鹿茤王與戰殺其六王 哀牢耆老共埋六王 夜虎復出其尸而食之 餘衆驚怖引去 賢栗惶恐 謂其耆老曰 我曹入邊塞 自古有之 今攻鹿茤 輒被天誅 中國其有聖帝乎 天祐助之 何其明也 二十七年 賢栗等遂率種人戶二千七百七十 口萬七千六百五十九 詣越雟太守鄭鴻降 求內屬 光武封賢栗等爲君長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