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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선련(船連; 후네노무라지)

#백제(百濟)
선련(船連; 후네노무라지)
 관야조신(菅野朝臣; 스가노아소미)과 같은 조상이고, 대아량왕(大阿良王)의 후손이다.
 
【주석】
1. 선련(船連)
선(船)의 씨명은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 14년(553) 7월조에 소아대신도목숙녜(蘇我大臣稻目宿禰)가 칙을 받들어 왕진이(王辰爾)를 보내 선박에 대한 세금을 기록하게 했다는 전승으로부터 관련 업무를 맡았던 직명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동 흠명기 14년(553) 7월조에는 왕진이를 선장으로 삼아 선사(船史)의 성을 주었고, 당시 선련(船連)의 선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 천무(天武) 12년(683) 10월조에는 선사(船史)의 성을 선련(船連)으로 개성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선사씨 일족으로는 외교, 사서 편찬, 불교에 관련된 인물들이 있다. 견수사로 파견된 소야신매자(小野臣妹子)가 추고(推古) 16년(608)에 수사 배세청(裵世淸)을 동반하고 귀국할 당시 수나라 사절의 접대역인 장객사로서 선씨의 일족인 선사왕평(船史王平)이 수행하였다. 추고 17년에는 백제승 도흔, 혜미 등 85인이 비후국(肥後國) 위북진(葦北津)에 표착했을 때 그 사정을 묻는 관인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선사룡(船史龍)이 있다. 선사혜척(船史惠尺)은 『일본서기』 황극기(皇極紀) 4년(465) 6월조에 소아(蘇我) 본종가의 멸망 시에 소아하이(蘇我蝦夷)의 저택에 보관중이던 『천황기』, 『국기(國記)』 등이 화재로 불타는 상황에서 이를 건져냈다고 한다. 『천황기』 란 천황의 계보와 치적 등을 기록한 사서이고, 『국기』 는 문자 그대로 국가의 기록이다. 사성(史姓)은 원래 기록과 문서를 담당하는 씨족이며 도래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사혜척의 아들이자 고승으로 알려져 있는 도소(道昭)에 대해서는 『속일본기』 문무(文武) 4년(700) 3월조에 도조(道照, 道昭)의 졸년(卒年)과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도소는 효덕 백치 4년(653)에 견당사와 함께 당 유학을 떠나 현장삼장(玄奘三藏)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학하였다. 왕진이(王辰爾)의 4세 후손인 도소 화상은 일본에 중국의 법상종, 섭론종 등 새로운 불법을 알린 교단의 스승이었다. 선련씨 일족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하) 「선련(船連)」 조(862) 참조.
2. 관야조신(菅野朝臣)
관야조신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하) 「관야조신」 조(857) 참조.
3. 대아량왕(大阿良王)
대아량왕에 대해서는 우경 제번(하) 「선련」 조(862) 대아량왕(大阿良王)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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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련(船連; 후네노무라지)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30_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