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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순천 대곡리 유적

  • 저필자
    손준호(고려대학교)
  • 날짜
    1985
  • 시대
    청동기~백제
  • 위치
  • 원소장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복합
입지
1985년 주암댐 수몰지구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확인. 서울대학교 발굴팀과 국립광주박물관팀이 1986·1987·1989년의 3차에 걸쳐 조사를 시행.
유적개관
조사된 주거지는 이 유적에서 가장 빠른 시기의 유구로 여겨지는 무문토기시대의 원형주거지, 초기철기시대의 말각방형주거지, 원삼국시대의 말각방형주거지 등이 있으며, 무문토기시대의 가마터 1기와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가마터 1기가 확인됨. 현재 이 지구는 수몰되어 유물만 전시중임.
출토유물
* 무문토기, 적색마연토기, 채문토기, 석기, 어망추, 마제석검, 마제석촉, 방추차, 반달형 돌칼, 연석, 철도자, 철겸 등
참고문헌
「住岩댐 水沒地域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Ⅵ」
「大谷里 도롱·한실 住居址」
「大谷里 도롱 住居址」
해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대곡리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하천 주변의 충적지(沖積地) 위에 자리하는데, 보성강을 사이에 두고 도롱 마을과 한실 마을로 구분된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74기, 구덩유구[竪穴遺構] 50기, 고인돌[支石墓] 3기, 토기가마터[土器窯址] 1기, 원삼국~백제시대의 집자리 95기, 토기가마터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는 74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둥근꼴과 긴네모꼴로 구분되는데, 둥근꼴의 경우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가 설치되어 있는 반면 긴네모꼴의 대다수는 내부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 아가리가 짧게 밖으로 벌어진 토기[外反口緣土器],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 뚜껑[蓋], 삼각모양돌칼[三角形石刀], 홈자귀[有溝石斧] 등이 출토되었다. 대체로 둥근꼴 집자리에서 긴네모꼴 집자리로 변화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덩유구는 평면이 둥근꼴 또는 네모꼴을 이루는데, 출토 유물이나 분포 양상을 볼 때 집자리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옮겨진 덮개돌[上石]과 함께 고임돌[支石] 일부, 뚜껑돌[蓋石], 돌덧널모양[石槨形]의 무덤방[墓室]이 남아있을 뿐이다. 껴묻거리는 일단슴베식간돌화살촉[一段莖式磨製石鏃] 1점이 출토되었다.
원삼국~백제시대의 집자리는 95기가 조사되었다.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부 둥근꼴도 확인되었다. 내부 시설로 한쪽 벽면 근처에서 아궁이가 발견되었으며, 바닥면은 점토를 깔고 불을 질러 단단하게 만든 경우도 관찰된다. 원삼국시대가 되면 충적지를 벗어나 일부 구릉에도 집자리가 축조되는데,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집자리의 분포가 확대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물은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긴계란모양토기[長卵形土器], 귀때토기[注口土器], 사발[盌], 시루 등의 토기류와 쇠화살촉[鐵鏃], 쇠손칼[鐵刀子], 쇠낫[鐵鎌] 등의 철기류, 옥 등이 출토되었다.
대곡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백제시대에 이르는 집자리, 구덩유구, 무덤, 토기가마터 등이 확인되었다. 충적지에 자리한 주거 중심의 마을 유적으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집자리와 유물상의 특징이 관찰되며, 동일 지역에서 문화적 단절 없이 변화하는 집자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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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대곡리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110_002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