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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양산 평산리 유적

  • 저필자
    최재도(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 날짜
    1996
  • 시대
    원삼국
  • 위치
  • 원소장처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80번지 일대
  • 시대
    상고사
  • 유형
    생활
입지
1996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 시행.
유적개관
청동기~원삼국시대까지 유지된 소규모 취락으로 가족 단위의 생활을 한 모습을 통해 울산 지역의 검단리 환호 유적과 하대 유적의 청동기인 및 삼한인과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목탄층, 주거지 24기, 환호, 토광묘 등을 발견하였음. 주거지 중심으로 그 외곽에 환호를 설치하여 방어 시설을 갖추고 있음. 현재는 택지조성을 위해 제거되었음.
출토유물
* 무문토기편, 마제석부, 와질토기, 노형토기, 회청색경질토기, 적갈색연질토기, 옹기, 방추차 등
참고문헌
「양산평산리유적」
해설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평산리 80번지 일대(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위치하는 원삼국시대의 취락유적이다. 해발 811.5m의 천성산 자락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평탄 대지에 위치하며, 유적의 뒤쪽으로는 산지를 두며 앞쪽으로는 덕계천을 바라보는 낮고 평탄한 구릉 정상부에 입지한다.
택지 개발사업이 이루어지면서 1996년 6월 동아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 하였다. 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주거지 24기,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시설된 도랑[환호(環濠)], 고려시대 움무덤[토광묘(土壙墓)]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長方形)이며, 원형도 1기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체시설의 기초 터파기 흔적이라고 생각되는 벽도랑[벽구(壁溝)], 기둥구멍[주혈(柱穴)]이 있으며, 화덕자리[노지(爐址)]는 확인되지 않는다. 6호는 평면이 장방형으로 길이 472cm, 너비 328cm, 남은 깊이 26㎝이며, 작은 기둥구멍이 벽선을 따라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17호는 평면이 장방형으로 길이 380㎝, 너비268㎝, 남은 깊이 16㎝이다. 벽도랑이 네 벽을 따라 돌려져 있으며, 장벽 중앙에 작은 기둥자리가 2개 배치되어 있어 출입시설 등으로 판단된다. 24호는 평면이 원형이고 지름은 480㎝로, 중앙에서 북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화덕으로 추정되는 불탄흙[소토(燒土)]층이 있다. 후대의 원삼국시대 환호가 중앙을 따라 축조되어 있으며, 주거지는 장축방향이 동서 방향으로 배치되고 있다. 한편,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삼한시대에 형성된 주거지에 의해 훼손되어 새로운 취락으로 변모되어 출토유물의 내용 또한 매우 빈약한 편이다.
유물은 청동기시대와 삼한시대의 토기와 석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은 민무늬토기[무문토기(無文土器)]와 점판암으로 만든 간돌도끼[마제석부(磨製石斧)]가 있고, 삼한시대의 유물은 회색토기[와질토기(瓦質土器)], 화로모양토기[노형토기(爐形土器)], 가락바퀴[방추차(紡錘車)] 등이 있다. 이 외에도 간돌돌칼[마제석검(磨製石劍)], 반달돌칼[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 간돌화살촉[마제석촉(磨製石鏃)], 모룻돌[대석(臺石)] 등이 있다.
평산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5세기경부터 취락으로 조성되어 삼한시대인 2세기까지 유지되었다. 대규모의 취락은 아니지만 당시 가족 단위의 생활을 영위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울산 지역의 검단리 환호 유적과 하대 유적의 청동기인과 삼한인과도 밀접하게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유적을 통해 앞 시대에 조성된 주거지가 다음 시대에 새로운 주거지를 만들면서 폐기되거나 훼손된 양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택지조성을 위해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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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평산리 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1_0030_003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