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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고려 사신이 입공하기 위해 청주(靑州)를 지나감

  • 날짜
    1020년 4월 (음)(天禧 4年(1020) 4月 丙申)
  • 출전
    卷95 天禧 4年(1020) 4月 丙申
고려가 일찍이 입공했는데 길이 [청]주(靑州)주 001
각주 001)
(靑)州 : 북송의 지명. 前漢 武帝 시기에 설치되었고, 後漢 시기에 치소는 臨菑縣(현재 중국 山東省淄博市 臨淄의 북쪽)이었다. 16국 시기에 치소가 廣固城(현재 중국 山東省 靑州市 서북)으로 옮겨졌다. 東晉은 치소를 東陽城(현재 중국 山東省 靑州市)으로 옮겼다. 隋 大業 3年(607)에 北海郡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唐代에 다시 靑州가 되었다. 天寶 초에 또 北海郡으로 바꾸었다가 乾元 초에 다시 靑州로 변경했다. 金代가 되어 益都府로 명칭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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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내를 지나갔다. 중귀인(中貴人)이 (이를) 중하게 여겨 주관(州官)으로 하여금 성 밖에서 절하게 했다. 호순지(胡順之)주 002
각주 002)
(胡)順之 : 생몰년 미상. 북송의 관인. 原州 臨涇(현재 중국 甘肅省 鎭原) 사람으로, 字는 孝先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試秘書省校書郎, 知休寧縣이 되었다. 豪强들이 돈을 숨기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엄하게 다스렸다. 天禧 연간에 靑州從事가 되었다. 여기에서 大姓 麻士瑤를 주살하며 그의 범죄를 다스리자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著作佐郎 및 知常熟縣이 되었다. 인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太常博士가 되었다. 天聖, 明道 연간에 재상에게 두 번에 걸쳐 상소를 올려 태후가 정치를 다시 할 것을 청원했으나 재상은 상소를 숨기고 보고하지 않았다. 인종이 親政을 시작한 후에 특별히 尙書屯田員外郎으로 임명했다. 이후에 失明을 하여 관직을 맡을 수 없게 되었고, 자택에 거처하던 중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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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말하기를, “청주는 중요한 기지입니다. 당이 신라·발해를 통제했을 때 그 국왕이 왔을지라도 오히려 마땅히 그와 대등하게 예우했습니다. 지금 배신(陪臣)을 보고 어찌 이렇게 비굴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홀로 절하지 않고 이로써 글을 올려 논변하니 조정이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마씨(麻氏)주 003
각주 003)
麻氏 : 북송 사람. 麻士瑤를 가리키는 것으로, 靑州의 大姓이었다. 여러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서 州縣을 능멸했지만 아무도 이를 고발하지 못했다. 그런데 麻士瑤가 자신의 형의 아들을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자 麻士瑤의 모친이 이를 고소했고 胡順之가 조서를 받아 이를 국문하여 麻士瑤를 사형에 처하고 그의 子弟들을 귀양보낸 것이 100여 명에 이르렀다. 위의 기사에 나온 胡順之, 麻士瑤의 일화는 『宋史』 卷303에 있는 胡順之의 열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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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주살하고 황제가 그 이름을 기억하여 불러보고 저작좌랑을 내리고 후하게 주어 보냈다.

  • 각주 001)
    (靑)州 : 북송의 지명. 前漢 武帝 시기에 설치되었고, 後漢 시기에 치소는 臨菑縣(현재 중국 山東省淄博市 臨淄의 북쪽)이었다. 16국 시기에 치소가 廣固城(현재 중국 山東省 靑州市 서북)으로 옮겨졌다. 東晉은 치소를 東陽城(현재 중국 山東省 靑州市)으로 옮겼다. 隋 大業 3年(607)에 北海郡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唐代에 다시 靑州가 되었다. 天寶 초에 또 北海郡으로 바꾸었다가 乾元 초에 다시 靑州로 변경했다. 金代가 되어 益都府로 명칭이 바뀌었다. 바로가기
  • 각주 002)
    (胡)順之 : 생몰년 미상. 북송의 관인. 原州 臨涇(현재 중국 甘肅省 鎭原) 사람으로, 字는 孝先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試秘書省校書郎, 知休寧縣이 되었다. 豪强들이 돈을 숨기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을 엄하게 다스렸다. 天禧 연간에 靑州從事가 되었다. 여기에서 大姓 麻士瑤를 주살하며 그의 범죄를 다스리자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著作佐郎 및 知常熟縣이 되었다. 인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太常博士가 되었다. 天聖, 明道 연간에 재상에게 두 번에 걸쳐 상소를 올려 태후가 정치를 다시 할 것을 청원했으나 재상은 상소를 숨기고 보고하지 않았다. 인종이 親政을 시작한 후에 특별히 尙書屯田員外郎으로 임명했다. 이후에 失明을 하여 관직을 맡을 수 없게 되었고, 자택에 거처하던 중에 사망했다. 바로가기
  • 각주 003)
    麻氏 : 북송 사람. 麻士瑤를 가리키는 것으로, 靑州의 大姓이었다. 여러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서 州縣을 능멸했지만 아무도 이를 고발하지 못했다. 그런데 麻士瑤가 자신의 형의 아들을 죽이는 지경까지 이르자 麻士瑤의 모친이 이를 고소했고 胡順之가 조서를 받아 이를 국문하여 麻士瑤를 사형에 처하고 그의 子弟들을 귀양보낸 것이 100여 명에 이르렀다. 위의 기사에 나온 胡順之, 麻士瑤의 일화는 『宋史』 卷303에 있는 胡順之의 열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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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신이 입공하기 위해 청주(靑州)를 지나감 자료번호 : jt.k_0003_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