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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동단산성

東團山城
  • 저필자
    권순홍(성균관대학교 박물관)
  • 날짜
    1940년대·1983·2007
  • 시대
    청동기/부여/고구려/발해/요금
  • 위치
  • 원소장처
    길림성 길림시 강남향 영안촌(吉林省 吉林市 江南鄕 永安村)
  • 시대
    고구려
  • 유형
규모
남북: 115m, 동서: 230m
입지
해발 252m 높이의 동단산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옆으로 송화강이 흐른다.
유적개관
1940년대 초반과 1983년에 조사되었으며, 2007년에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산 사면과 정상부에서 주거유적이 확인되었다. 유적의 서남부에는 청동기시대의 석관묘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구려 기와편 및 토기 등도 확인된다. 동단산성은 토석혼축으로 점토에 작은 돌을 섞어 축조하였는데, 내성, 중성,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동단산 동남쪽 아래 평지에는 남성자토성(둘레 1.05km)이 존재한다.
유물개관
청동기시대 석기 및 고구려 기와, 발해 및 요금 시기의 토기
참고문헌
「北方文物」1986-4
해설
중국 길림성 길림시가의 중심부를 둘러싸듯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제2송화강이 흐르며 그 동쪽 기슭에 동단산이 있다. 타원형으로 해발은 252m이지만, 강 수면에서의 비고(比高)가 60m인 독립구릉이다. 동쪽으로는 남성자(南城子)와 맞닿아 있으면서 모아산(帽兒山) 무덤군을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은 구릉들이 이어져 있고 북쪽은 용담산과 마주하고 있다. 1932년에 현지 조사한 미카미 쓰기오[三上次男]가 신석기 시대 유구인 동시에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는 것에 주목했으며, 이문신(李文信)은 1937년~1938년에 이곳과 용담산성 그리고 모아산의 유물을 소개하며 총체적으로 파악할 것을 제언하였다.
동단산성의 성벽은 산의 허리부분에 구축되어 있는데, 흙과 화강암 괴석을 섞은 토석혼축(土石混築)으로 된 성벽이 외성(外城)·중성(中城)·내성(內城)의 삼중으로 타원형을 이룬다. 외성은 동서 230m, 남북 115m, 잔존 높이 10m이고, 상단부의 폭은 3m 정도이다. 중성은 동서 170m, 남북 62m, 잔존 높이 12m이다. 내성은 매우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산정부의 평대(平臺)로 추정하면 동서 62m, 남북 15m이다. 성문은 동쪽과 북쪽에 나 있는데, 동문에는 옹문(甕門) 시설이 남아 있다. 성안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토기편과 고구려의 와편, 오수전(五銖錢) 등이 발견되었다.
산성은 협소하지만 강가에 면해 있어 송화강의 서안을 향해 돌출해 있는 보루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낮은 고도에도 불구하고, 송화강에 바짝 붙어 있고 일대 평원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위치에 해당한다. 동단산성과 남성자성 그리고 모아산 무덤군은 길림성 지역 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사이에 해당하는 성지와 취락 유적 가운데 판축(版築)의 성벽과 함께 위세품(威勢品)이 부장품(副葬品)으로 발견되는 등 상류 계층의 무덤이 확인되는 유일한 유적이기 때문에 부여 전기의 중심지로 비정되고 있다. 또한 모아산에서는 발해의 무덤군이 발견되어 이 일대가 고구려 이전 부여시기부터 고구려를 거쳐 발해까지 주요한 거점으로 활용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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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단산성 자료번호 : isea.d_0002_0010_0010_004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