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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산업유산, 왜곡의 현장과 은폐된 진실

이천구

가긴 어딜 가? 밤이고 낮이고 일본 헌병들이 총들고 감시 하는데 뭐.
이천구 | 1942년 야하타제철소로 강제동원 | 2005.10.14. 구술
이천구 씨는 1929년생으로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살고 있었습니다. 17세인 1942년 9월 즈음 징용되어 야하타제철소로 연행되었습니다. 도망가면 부모님이 괴로움을 당하기 때문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야하타제철소에서는 암모니아 비료생산 현장에 배치되었습니다. 기숙사는 2층 건물로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한 방에서 7명이 생활하였습니다. 1943년에 탈출해 이마무라제작소에서 일했습니다.
 
『똑딱선 타고 오다가 바다귀신 될 뻔했네』,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2006, 189~218쪽
 
 
이천구 (李天求)_남. 80세.
 
  • 일자
  • 내용
  • 1927.3.10
  • 충남 서천군舒川郡한산면韓山面연봉리蓮峯里에서 출생
  • 1942.9
  •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일본제철주식회사 야하타(八幡)제철소
    각주 )
    야하타제철소(八幡製鐵所). 후쿠오카(福岡)현 기타규슈(北九州)시 도바타(戶畑)구와 야하타히가시(八幡東)구에 있는 일본 최초의 근대제철소. 1901년에 ‘제철소’라고만 부르던 것을 여러 번 확장하고, 다른 여러 제철소를 합병하여 일본제철주식회사 야하타제철소가 되었다. 1941년부터는 항공기용 강재 증산을 하는 등 군수물자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950년 여러 제철소로 나뉘었다가 1970년 다시 후지(富士)제철(주)과 합병하여 신일본제철(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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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동원됨(17세)
  • 1943
  • 제철소를 탈출하여 와카마쓰(若松)의 이마무라 제작소
    각주 )
    이마무라(今村)제작소 와카마쓰(若松)공장. 1923년 만들어진 후쿠오카시 와카마쓰(若松)구에 있었던 군수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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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서 잡부로 일을 함
  • 1945.9
  • 해방 후 귀국



산에는 혼자 다니세요?


올라가면은 여자들, 남자들, 할머니, 할아버지 늘어섰어요. 의사醫師들이 걷는 게 좋다고 그러니까. 그 뭐냐. 산으로 산으로 이렇게. 아침 3~4시에 나오고 그랬어.


그러시다가 더 몸이 상하시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 체력體力에 맞게 초입初入에 갔다 오는 사람도 있고, 중간中間에 갔다 오는 사람도 있고, 또 정상頂上까지 갔다 오는 사람도 있고 자기 체력대로 안배按配해서 적당히 해야지, 무리하면 안 하느니만 못해. 넘어지고 그러면 큰일 나니까.


할아버지 일본 다녀오신 것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렇죠. 확인確認을 해야죠. 그 당시에 갔다 온 사람 말을 들어보면 금방 알거든. 부담 말고 물어보세요. 다 아는 대로 겪은 대로 다 이야기 하고 할 테니까.


동원動員될 때 어디에 살고 계셨어요?


그 당시에 고향故鄕에 살았지요. 충청남도 서천군 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연봉리蓮峯里 285번지.


구舊제적등본除籍謄本을 제출해주셔서 저희가 아주 도움이 됐어요.


그거 떼야 한다고 그래서. 면사무소面事務所갔더니 전부 말소抹消시켜버렸더라고. 다 없애버렸대. 면사무소도 가보고 군郡에도 가보고 그랬어. 거기 형제兄弟들도 살고 고향이니까. 아마 수십 대대로 내가 한산 이李씨인데 원 고향이니까, 1년이면 한 두어 번 가요.


할아버지 생신生辰이 1929년 3월 10일로 되어 있네요?


네, 원래 호적상戶籍上으로는 그렇고 여기 맞게 등본에도 있지만…. 원 실제實際나이는 27년생이에요. 근데 여기 함경북도咸鏡北道라고 써있지요? 여기.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생出生은 여기서 해가지고,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서 나가지고 한 1~2년 있다가 원래 고향으로 왔어요. 충청남도 이리로 와서 이제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뭐 출생出生신고申告에 대해서 신경神經을 안 썼다고. 뭐 7남매, 8남매 두면 한 반절 살면 다행이고, 둘 셋은 죽으니까. 예방豫防접종接種도 없고, 전염병도 없고, 그래서. 신고는 1929년생인데 원 나이는 27년생이지. 그래서 78로 되어 있고 호적 나이는 77이고. 그 당시 내 나이가 17살이거든. 17살인데 이제 그 당시에 면사무소에서 호적계戶籍係하고 순사巡査지. 지금 말하면 경찰警察. 호적계 직원職員하고 순사하고 같이 나오는 거야. 나와서 이제 그 동네 이제, 지금은 이장里長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구장區長
각주 )
일제시기 각 마을을 하나의 구역으로 하여 그 구의 장을 구장이라 불렀다. 지금의 통장, 이장里長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제시기에 구장은 최말단 행정원으로 조선총독부 → 도청 → 군청 → 읍면사무소 → 구장으로 업무가 진행되었다. 구장은 마을의 시정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경찰이나 회사직원들과 동행하여 직접 마을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강제동원 대상자는 구장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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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했어요. 구장을 찾어. 이 사람보고 집을 알려달라고 해서 집을 데리고 오지. 그럼 거기서 얘기 하는 거야, 일본말로. 순사는 옆에 있고 면서기面書記가‘너 이제 징용徵用에 징발徵發되었으니까. 며칠날까지 면사무소로 오라.’고 말이야. 뭐, 도망가면 부모들이 고통苦痛을 당하니까. 농사農事지으니까, 그러라고 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죽으라면 죽으라고 하는 거지, 별 수 없거든. 그당시에는.


할아버지한테 징용 명령命令이 나온 거예요?


그렇지. 그래서 동네에서 두 명 뽑혔어요. 그래서 징병徵兵간 사람도 있고, 징용 간 사람들도 있고, 노무자勞務者간 사람들도 있고. 또 이제 와서 정신대挺身隊이지. 오다 가다 처녀가 있으면 데리고 가는 거야. 데리고 가서 그게 이제는 정신대라는 데신따이, 일본 말로 데신따이인데. 대판(大阪. 오사카)에 공장工場취직就職시켜준다고 그랬다고. 대판이면 일본에서 그 당시에 공장 지대거든.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은 대판에 방직紡織공장에 취직 시켜 줄 테니까 몇 시까지 면으로 오라고. 얼씨구나 좋다지. 가면 그냥 거기 가야 알지, 안가면 모른다고. 그게 이제 일본 놈 배 타면은 중국中國으로도 가고 북해도北海道로도 가고 남양군이라고 하지? 지금은 이제 남양군도南洋群島
각주 )
현재 태평양(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지칭한다. 일제시기에는 ‘내남양’ 또는 ‘남양군도’로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14년 10월에 일본 해군이 상륙하고 1919년에 국제연맹에 의해 일본의 위임통치령이 된 이후 1944년 연합군이 상륙하기까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조선인들이 1910년대부터 남양군도에 노동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 수는 수백명에 불과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부터 일본이 임전체제를 강화하면서 이 지역에도 항만과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한 노동력과 사탕수수·카사바를 재배하기 위한 조선인 노동력, 인광燐鑛의 채굴작업을 위한 조선인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39년부터 조선인들이 동원되었고, 그 후 전쟁이 본격화된 1940년대부터는 농업노동력과 군인·군속·위안부 등의 용도로 조선인들이 동원되었다. 이 지역은 전쟁의 포화가 극심했으므로 조선인의 피해가 격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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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 지금 생각하니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기니아, 뉴질랜드 이쪽이 남양군도야. 그 당시에 파죽지세로 일본이 막 가서 깃발만 꼽으면 일본 땅이니까. 그 당시에 양쌀(안남미)도 보내주고, 군대에서는 콩깻묵, 이렇게 중국 사람들은 콩기름을 잘 먹잖아요? 그러니까 기름을 쭉 짜고 이제 남은 거. 열차列車로 막 싣고 온다고. 그러면 그걸 갖다 양쌀하고 바꾸는 거지. 우리가 생산한 쌀은 일본에 갖다 다 먹고, 양쌀하고 콩깻묵을 쪄가지고 징용이나 징병이나 공장 사람들 전부 밥 먹이고 그랬다고. 그래가지고. 이제 계속 이야기 할까요? 물어보는 것만 대답對答하는지, 내가 다하는지. 제 말 한번 들어보세요. 그래가지고 이틀인가 3일 있다가 면사무소로 갔지. 면사무소 가니까 한 열 몇명이 되더라고.


동네에서 같이 간 사람은 누구예요?


동네 친구인데. 이환○인가. 그 사람은 죽었을 거예요. 그 사람하고 같이 그 사람도 같은 종씨宗氏인데 먼 친척이지. 같은 동네에서 살지. 우리 동네가 한 80 그정도이거든.


영장令狀같은 것을 가져왔어요?


아니지. 그냥 오라고 하고선 이름 쓰라고 한다고, 이름. 그때 내 성씨가 목산牧山이니까. 내가 목은 牧隱(李穡) 할아버지 자손이니까, 이 목자 목산자. 마끼야마(牧山). 우리 한산 이씨는 마끼야마야. 목산. ‘마끼야마 오마에 오마에노 나마에오 가께(牧山. お前! お前の名前を書け).’ 이게 뭐냐 하면, “너 니 이름 여기에다 써라, 용지에다가.” 그래 이제 무슨 징병 통지서通知書, 징병이 아니라 조요(징용)
각주 )
徵用의 일본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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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지서. 조요통지서가 뭐냐 하면. 뭐 글씨를 아나, 초등初等학교도 못 다녔거든. 옛날에는 보통普通학교 아니에요 보통학교. 보통학교도 못 다니고 간이簡易학교라고 있어요. 이제 옛날에 간이 한 1년 다니다 말고, 그래도 내 이름은 쓸 줄 알지. 그래서 내 이름 쓰고, ‘오마에와 아시다(お前は明日. 너는 내일), 내일 몇 시까지 면사무소 오라고.’ 아, 알았다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두 명하고 면에서 다 모이니까 15명 되더라고. 우리 한산면 동네가 약 18개 동네 되거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인솔引率해가지고 군郡으로 가는 거야. 군으로 가니까 사람이 상당히 많지. 각 면에서 한군데 집결集結됐으니까. 군에서 이제 기차 타고 대전大田으로 가는 거야. 충청남도 도청道廳이 대전에 있었으니까. 대전에 집결해서 부산釜山으로 가는 거야.


대전에 집결 했을 때 사람이 몇 명이나 모였어요?


몇 백 명 돼지. 수백 명이 돼지.


그때 인솔한 사람이 누구예요?


일본 군인軍人들이여. 현역現役군인들. 군복軍服입고 견장肩章차고, 권총拳銃차. 긴 칼 차고. 이제 원 인솔자는 미나라이시깡(견습사관)
각주 )
見習士官의 일본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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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하사관下士官. 하사관이 총대장이고. 하사관이여, 그게 인자.


미나라이시깡이 하사관이었어요?


예, 그렇지. 일본 말로. 금줄 하나에 별 하나. 네 개까지 있다고. 별 하나.


금줄은 어떻게 생겼어요?


금줄? 견장이 이랬다고. 이렇게 해서 이래서 여기 이제 별 하나면, 하나면 헤이쪼(병장)
각주 )
兵長의 일본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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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고쪼(오장)
각주 )
伍長의 일본어 발음.
닫기
, 그 다음에 별 둘, 별 셋, 별 넷이 이제 우리나라로 말하면 특무特務상사上士여. 금줄 안에 별 네 개까지가 특무상사고.


별 하나가 뭐예요?


고쪼. 고쪼.


오장이 별 하나예요?


네, 별 하나 이 줄에다가. 일본 사람 군대 계급階級이 그래요.


별 두개는 뭐예요?


별 두 개는 뭔가 몰라도 하여튼 별 둘, 별 셋, 별 넷까지 있어. 별 네 개에서 이제 우리나라로 말하면 특무상사. 여기서 하나 올라가면 소위少尉. 소위가 되지. 쇼이(소위)
각주 )
少尉의 일본어 발음.
닫기
, 츄이(중위)
각주 )
中尉의 일본어 발음.
닫기
, 타이이(대위)
각주 )
大尉의 일본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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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좌(少佐), 중좌(中佐), 대좌(大佐). 그 다음에 원스타(One Star 少將), 투스타(Two Star. 中將) 이렇게 올라가지.


그 밑에 병사兵士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병사들은 이게 그냥 바탕에 아무것도 없고, 바탕에 그 다음에 별 하나가 이등병二等兵, 일등병一等兵, 상등병上等兵, 이게 조또헤이(상등병)
각주 )
上等兵의 일본어 발음.
닫기
요. 여기가. 니또헤이(이등병)
각주 )
二等兵의 일본어 발음.
닫기
, 조또헤이(상등병) 그 다음에 여기 헤이(쪼병장). 금줄 하나 헤이쪼. 헤이쪼 다음에 고쪼. 여기서부터 하사관이여. 우리 말로 이건 병장兵長이고 전부다 병장 밑이고. 헤이쪼, 금줄 하나서부터. 별 네 개까지.


별 네 개까지가 미나라이시깡이라고 불러요?


어, 미나라이시깡. 그러면 자기 직급職級에 따라서 긴 칼 차고, 권총 차고, 인솔하는 거는 미나라이시깡이고. 미나라이시깡 밑에 보통 일반 병사들이 있지. 일본군인 정복正服입고 얘들이 이제 인솔 하는 거야. 잘못하면 귀싸대기를 쳐버려. 그때부터 얼어가지고. 그냥 뭐, 꼼짝 못하니까. 이유理由가 어딨어? 말도 제대로, 일본말 조금 할 줄 아는데 뭘, (*그러나) 잘 모르잖아.


회사會社에서는 인솔자引率者가 안 왔어요?


회사가 없어. 회사가 뭔지 그런 거 생전. 물어볼 수도 없고, 생각지도 못 해. 무조건이야. “곳치 고이(こっち, 來い. 이리 와).” 이러면 오고, “오마에 가에레(お前, 歸れ. 너 돌아가).” 이러면 가고, “시고토 곳치데 야레(仕事’こっちでやれ. 일 여기서 해라)”. 이러면 무조건 여기서 일해야 하는 거지 뭐. 지금처럼 회사, 인솔? 이거 천만에 말씀이야.


처음에 가실 때가 언제쯤이었어요?


해방解放되기 전이지, 해방되기 1년 전. 딱 1년 돼서 왔어요. 44년 9월경이에요, 9월경. 22일인가 15일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가지고 부산 가서 하루 저녁 잤어. 여기서 아침 일찍 들어갔으니까, 면도, 군도, 인솔하고 가니까. 그때 보니까, 함경도, 평안도 전부 다 징발돼서 온 거야. 그때 인원人員이 얼마나 될까. 확실히는 모르지. 3천명이 넘었어, 3천명. 근데 부산에 딱 도착하니까, 일본 놈이 얼마나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해놨는지. 그 당시에 호텔이라는 게 없으니까. 여관旅館아녀. 여관에다 방 한 칸에 일곱 명을 확 밀착密着을 해놨어. 해놓고, 밥은 니기리메시(주먹밥. 握り飯)에다가 그냥 놓으면 쉬니까(상하니까) 우메보시(매실 장아찌. 梅干し)라고, 우메보시 하나 딱 넣고, 이제 하나씩 던져 주는 거야. 그거 뭐 환장하게 먹는 거야. 그 양쌀하고 콩깻묵 섞은 거. 약간 가는 거. 하루 저녁 8시에 그 항구港口에, 부산, 어디라는 거는 모르지. 부산이라는 것만 알지. 항구에서 바로 가깝더라고, 여관이. 그런데 그냥 1소대, 2소대, 3소대 정렬整列해가지고 인원 점검點檢을 해가지고, 다리로 다가, 연락선連絡船. 그때 계단階段이 있잖아. 양쪽으로 헌병憲兵들이 일본군인들이 쫙 서있고, 우리는 거기에 올라타는 거지.


처음에 가실 때 복장服裝은 어떻게 하고 가셨어요?


복장은 그냥. 이 사진은 그때 찍은 거야. 그때.
당시에 찍은 사진. 아주 앳된 모습이다.


이렇게 어릴 때 가셨어요?


그렇지. 머리 깎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집에서 만들어 입은 거야. 무명옷 물들여 가지고. 혹시 보여 드릴려고 사진寫眞가져온 거야. 난 편지便紙있던 거를 다 찢어 없애 버렸다고. 또 이사移徙다니면서 없어지니까. 편지고 뭐고 징용 증명證明될 만한 거 다 없애버리고 어떻게 보니 사진 이것만 하나 있더라고. 참고參考삼아서 보여 드릴려고 가져왔지. 그래가지고 항구 옆에 여관을 정한 거야. 그래가지고 인솔해서 연락선을 탄 거야. 그때 관부關釜
각주 )
下關과 釜山을 오고가는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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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선이지, 관부. 부산하고 관부 시모노세키(下關), 관부 연락선에 타가지고선. 모르지 우리는 지하地下
각주 )
선창船艙(배 안 갑판 밑에 있는 짐칸)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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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으니까. 배가 이렇게 있어. 배 밑으로는 지하실이나 마찬가지지. 그게 한 5~6층 되니까, 모르지. 나중에 못 오게 해서 갑판甲板에 나오니까 양쪽에 전함戰艦이. 전함이라고 하지. 전함이 뭔지도 모르지. 그냥 포砲가 여기도 저기도 있고, 기관총機關銃달린 것도 양쪽 옆에 뒤에 있고. 네 군데 포위包圍하고, 전투기戰鬪機, 제트기가 말이야 위에 3대가 포위하는 거야. 그래서 여기서 8시, 아침 8시에 떠났는데 그때가 저녁 한 7~8시. 만 12시간 걸린 거 같아. 거기서 내리니까 거기서 벌써 열차가 대기待期하고 있더라고.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어요?


어, 그때는 어디로 가는지, 뭐하러 가는지 모르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이리로 가라고 하면 이리로 가고. 그래서 나는 기차를 딱 탔지. 맡기는 거야.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뭐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고. 이유가 없고. 얼마 안가서 내리더라고. 열차 중간에서 탁 서더니.


밤중이었죠?


그렇지. 거기서 떠난 게 8~9시니까 시모노세키에 모지(門司)
각주 )
모지구(門司區). 후쿠오카현 기타규슈(北九州)를 구성하는 7개구의 하나. 1963년 5개시 합병으로 옛 모지시 지역이 현재의 모지구가 되었다. 일본 규슈 최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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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는 데가 있어, 모지. 모지 항구거든. 모지에서 내려 가지고. 거기서 이제 와까마스(若松) 야하다(八幡)라는 데가 있어. 야하다세이데쓰쇼(八幡製鐵所). 미쓰비시(三菱) 내에 야하다 세이데쓰쇼, 야하다제철소. 그게 얼마나 큰지, 비행장 안에 군수품軍需品도 만들고, 비료肥料도 만들고 폭탄爆彈탄알도 만들고, 다 만드는 거야. 그 공장 안에 배가 들어오고, 비행기飛行機가 뜨고 날고 해.
야하타제철소 전경.


가신 곳이 야하타란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 이름이 일본말로 야하다니까. 야하다 세이데쓰쇼니까. 그땐 그런지도 모르지. 이야기 하다보니까 “아, 고코와 도코데쓰까(あ, ここはどこですか. 여기 어디 입니까?)”, 여기 어디냐(하니까), “오마에 소레모 와카라나이노까? 고코가 야하다세이데쓰쇼다요(お前. それも分らないのか? ここが八幡製鐵所だよ)”, “너 임마 그것도 몰라? 여기가 야하다제철소야,” 그러더라고. 미쓰비시, 별 같은 거 세 개 마크 있고. “야하다 세이데쓰쇼. 아, 소데쓰까 와카리마시다(八幡製鐵所. あ, そうですか. わかりました).” 그래서 거기서 공장 안에서는 안하고 공장 밖에서 료寮, 숙소지. 이제.


거기에 도착到着하신 거예요?


네. 거기서 료를 정해주는거야. 료가 이렇게 있으면은 2층집인데 담장밖에 철망鐵網이 뱅 둘러있고, 일본 놈 초소哨所가 여기 저기 있다고.


회사 료네요?


응. 그래가지고 거기서 인원 파악하고 방을 정해주는 거야. 1호실 누구 누구 누구, 2호실 누구 누구. 여기 호수號數에다가 전부 이름 써 붙이고, 번호番號매기고. 거기서 이제 한방에 일곱 명씩 들어가더라고.


한 방에 일곱 명이요?


네. 방에 들어가니까 방도 이렇게 다락식으로 해서 밑에서 둘이 자고 위에서 둘이 자고. 방은 좁은데 인원은 많으니까. 중간에 이렇게 난간欄干해가지고 밑에서 둘이 자고 위에서 둘이 자고. 침대 식으로 이렇게 해서 여기서 자고. 아침이면 거기서 먹고 점심은 이제 공장 가서 먹는 거야. 공장 가서 먹는데 그때 밥이 뭐냐 하면, 아까 말한 콩깻묵하고 양쌀하고 스팀(증기)으로 쪄가지고. 앉은뱅이 저울이여, 그때 처음 봤지. 지금 그 100그램, 1키로 나오는 저울 있잖아. 접시를 갖다 놓고 밥통 큰 거 스팀으로 찐 거 있어. 주걱으로 퍼서 접시에 담으면 300그램이야. 그걸 똘똘 뭉치면 요 정도 밖에 안 되지. 그거하고 미소시루(된장국)
각주 )
味汁의 일본어 발음.
닫기
, 된장국, 공기에다가 미소시루 반 공기 주고, 다꽝(단무지. たくあん) 두 쪽 주고, 콩조림 한 두 개 준다고. 그게 다야. 그거 다 먹고 이제 식사食事끝나면, 전부 모이라고 하지. 모이면 인원 파악 하고선, 공장이 가까우니까.


도시락은 안 가지고 가요?


안 가지고가. 거기 가면은 인솔, 인원 인솔 해가지고 작업作業배치配置하는 거야. 나는 무슨 배치를 받았냐하면. 뭐하는 데인지 모르지. 나중에 보니까 암모니아 비료 생산 하는 데라고 하는데. 큰 드럼통 같은 데, 길더라고. 길은 데 거기 이런 구녕(구멍)이 수십 개 뻥뻥 뚫렸어. 그런데 나중에 무슨 공장 가동稼動하고 나서 문을 확 열어. 열으면 거기 찌그래기(찌꺼기)가 남고, 막대기 같은 긴 거, 솜방망이 같이 긴 거, 전부 쑤셔내는 거야. 나는 구녕 막힌 걸 쑤셔 내야 거기 기계機械가 제대로 가동이 되는 모앙이라. 그래서 무슨 기계냐고 하니까, 비료 만든다고. 암모니아 어쩌고, 뭐 그러더라고. 그런데 이제 이쪽은 파트(part)가 틀리고(다르고), 다 틀려, 부분마다. 그리고 그때 미군美軍포로捕虜가 몇 백 명인지도 몰라. 몇 백 명 미군 포로들이 있어. 미군 포로들이 있는데. 열차가 공장 안으로 들어오니까. 무슨 일을 시키냐 하면, 회. 제일 힘들일 백회白灰40키로, 세멘트(시멘트) 40키로, 석탄石炭그런 것만 시키는 거야. 그것도 아주 일본 헌병들이 지휘指揮감독監督하는 거.


공장에서 할아버지가 하신 일이 뭐예요?


비료 생산 하는. 비료. 비료인지 화약火藥인지. 화약 아니면 비료일 거 같아. 거기서 폭탄도 나오고 총탄도 나오고 그랬거든. 화약에 가까웠지. 우리는 잡부雜夫니까. 막 일이니까. 용접鎔接이라든가 그거는 기술을 요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냥 잡부니까. 청소淸掃도 하고 하라면 하라는 대로 구녕만 쑤시는 거야. 물 갖다 붙고.


점호點呼를 했을 텐데, 번호番號같은 것이 있었나요?


우리는 그냥 일개 소대小隊니까 마키무라. 담당자가 ‘마키무라!’ 이렇게 불러. 아니면 “마에 곳찌 고이.”(お前, こっち來い. 너 이리 와) 이렇게 불렀지.


료쪼(료장. 寮長)나 쇼타이쪼(소대장. 小隊長)는 기억나세요?


뭐 이름도 몰라. 일본말을 전부 썼기 때문에. 일본 말을 모르니까. 그냥 뭐, 듣는 거는 듣지만.


하역荷役작업을 하셨어요?


하역 작업하고, 상차上車시키고. 이리 이동하고 저리 이동하고. 걔들은 밥을 어떻게 주냐 하면, 도라무(드럼통) 같은 거 반 자른 거 있잖아. 거기다가 그냥 잡탕이지, 그러니까. 먹다 남은 거. 양쌀, 콩깻묵, 호박 이런 거 여러 개 섞어 가지고 걸직하게 죽을 쒀. 큰 밥주걱 같은 걸로. 밑에다가는 불을 떼고 죽을 쏘면. 일렬로 쫙 서지. 일본 놈들이 미군 비상非常야외도시락 같은거, 스뎅(스테인레스 스틸)으로 만든 거, 밥공기도 이렇고, 물 공기도 있는거. 그런 걸로 쭉 선다고. 국자 같은 걸로 딱 퍼서 저 땅에 앉아서 먹는거야. 그니까 이런 거 저런 거 주질 않아. 한번이면 그만이야. 김 푹푹 나는 거 한 국자 탁 떠서, “오마에 가에레, 가에레(お前. 歸れ, 歸れ).” “너가라.” 하면 습관習慣이 돼서, 뭐 더 달라고 요구要求도 없고, 무조건 한 국자 받으면 가서 먹고. 우리는 그때 담배를 하루에 여섯 개씩 배급配給을 줬다고.


여섯 개비씩 담배 배급을 줘요?


어, 여섯 가치. 1인당. 나는 별로 담배를 좋아하니까, (*아니) 좋아하지 않으니까. 담배를 어떻게 하다가 미군을 주는 거야. 그게 이제 미군하고 같이 통해서, 같이 휴식休息을 하던가.


미군들을 마주볼 수 있었네요?


마주볼 수도 있지. 그러면 그 당시에 어떻게 의사意思소통疏通을 하냐하면, 이렇게 보고 군인이 있나 없나 감독관監督官이 있나 없나 딱 보고, 십자가十字架, 하트를 막 그린다고. 그러면 걔들이 알아봐. 나 징용으로 붙잡혀 온지 알지. 헌병 감시監視하에 왔다 갔다 그러고. 자기도 그렇고 우리도 그러니까. 크리스찬이라는 거.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에는 크리스찬이 없잖아. 그래서 열 십자를 크게 그린다고. 그러다 어떻게 담배를 주고. 어떻게 한번 담배 준다고 일본 놈한테 걸려가지고, “아고시메(あご, 閉め. 입 닫어)!” 이런다고. 입 꽉 다물라고. 꽉 다물면, “오마에 스파이까(お前, スパイか. 너 스파이냐?)" ! , 너 이 자식 간첩間諜이다 이거야. 지금은 미국이 아름다울 미美자 썼지만은 그 당시에는 쌀 미米자 썼다고. 쌀처럼 먹어 죽인다고 해서 쌀 미자 썼다고. “오마에 돈나 하나시 시타까(お前, どんな話したか. 너 무슨 이야기했어)?” 미국 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냐." 난데모 아리마센(何でもありません.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 말도 안했다고. “가에레(歸れ. 돌아가라).” “고코니 이타라 시고토 야레(ここにいたら仕事やれ. 여기 있으려면 일을 해라!)”, 어서 일하라고. 싹싹 빌고. 그 다음에 담배 주다 걸렸으니까 경험經驗이 있으니까, 겉으로 불 붙여 피우다가 그 놈한테 가서 슬쩍 떨구고 가지. 그러다 어느 날 공장에서 일하는데 거기서 내가 탈출脫出을 했어, 또.


어떻게 도망逃亡을 가시게 된 거예요?


도망을 했어요. 배가 어찌나 고픈지. 내가 2층에서 자는데 창문窓門을 이렇게 열면 바로 철망, 2층 담이 이렇게 있으면은 요만큼 철망으로 되어 있고, 이렇게 보면 바로 길이라고. 거기가 근데 보초는 여기 하나 있지. 일본 헌병들이 24시간 보초를 서는 거야. 그럼 그 안에 식당이 있고 몇 백 명인지 얼마인지 인원은 모르지. 하도 배가 고파서 자다 일어나서 맨발로 살살 식당食堂안에 갔더니 소쿠리에 밥이 있더라고, 밥이. 배식配食하고 남은 거 소쿠리에다가 퍼 놓은 거. 그리고서 막 먹었지. 그냥 막 먹고, 물 먹고. 그 당시에 모자帽子있잖아. 막 모자에다가 밥을 꽉꽉 눌러가지고 같이 자는 친구들 주려고 왔지. “야! 일어나, 일어나.” 밥 가져 왔으니까 밥 먹으라고. 걔들도 거기서 막 먹고. 그런 생활(生活)을 하다가, 어떻게 하다가. 조센징
각주 )
朝鮮人의 일본어 발음으로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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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걔들이 하는 말이 조센징이지. 조센징에서 이제 그 사람은 무슨 특수特殊기술자技術者인가 봐. 이마무라. 이마무라 세이사꾸. 이마무라 금촌(今村) 제작소. 그것도 역시 철물鐵物공장이야. 그 사람하고 나하고 어떻게 접하게 됐다고. 제작소.
B29


제작소에서 온 사람이에요?


네, 그 사람이 이제 특수한 기술技術인지 뭔지 몰라도 그 사람 매일 몇 번씩 만난다고. 그 자기네 공장이 거기 와카마스라는 데가 야하다에서 얼마 안 되거든. 조그마한 전철電鐵이 다니니까, 모지서 시모노세키까지. 그래서“아. 소우데스까”. 아, 그러냐고. 그 사람은 함경도咸鏡道에서 왔다고 그래. 아, 나는 충청남도忠淸南道에서 왔다고, 징용으로 왔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나는가. 배고프고 힘들고 그런 찰나刹那에 종전終戰이 가까워 오니까, “가와사키, 나가사키, 케이카이 게이호, 경계경보(川崎, 長崎. 警戒警報).” 라디오에서 잘 적에는 이제 안에는 빨갛고 겉에는 까만 커텐된 것을 이렇게 쫙 친다고. 밤에 불을 켜도 밖에서 보이지가 않어. 그럼 밤에 8~9시 아니면 어떤 땐 새벽이면, “나가사키 게…. 가와사키 게. 케이카이 게이호(경계경보) 하쓰레(발령. 發令)” 그러면 방공호防空壕들어가고. 아픈 사람은 죽으면 말고, 공습空襲오거나 말거나 그냥 자는 사람도 있고 그렇다고. 경계경보하고 한 5~10분 있으면,‘ 쿠슈 게이호(空襲警報)’공습경보가 나오더라고. 그러면 여기저기에서 쿵쿵쿵, 폭발 터지는 거지. 그때는 무서우니까 방공호 다 있으니까, 방공호로 막 다 들어가고. 난 방공호 들어가서도 이렇게 봤지. 그러면 비행기가 편대編隊지. B29가 지금도 그렇지만 이렇게 지나가면 공기空氣같은 거, 그 연기煙氣가 줄기로 남잖아. 그거 뭐, 다른 사람들은 몇 천대라고 하는데 몇 천대는 안 되고. 하여튼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융단 폭격爆擊하는 거 아니야.


낮에 그렇게 와요?


아니 밤에. 낮에는 정찰기偵察機만 와.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지. 어떡하다 보면 저게 정찰기라고 그래. 양쪽 사다리 달린 차. 여기서 포 쏘면 비행기는 여기인데, 일본 포는 여기밖에 안 날라 가. 이 포도 산이 여기 저기 높은 지대地帶가 있으니까 전부 그리고 높은 공장 옥상屋上같은 포진지砲陣地를 전부 해놨다고. 그럼 정찰기가 오나 공습이 오면 포를 팡팡 쏘면, 비행기 여기서 포가 팍 터지는 거야, 거기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러면 폭탄이 툭툭툭! 터져요. 그러면은 이마무라 세이사꾸. 그 친구한테“아, 이거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돈 버는 거는 맨날 틀리고, 살아서 나가면 좋고.”그랬어. (*이마무라 세이사쿠쇼 사람이)공장으로 와라 이거야. 자기가 어떻게 숨겨 주고, 공장서 일하면 된다고. 그게 얼마나 반가워. 시간時間약속約束을 했어. 새벽녘에 가만히 보는 거야. 보초 서는 놈들이 전부 자고 있나(있는지). 그런데 없어. 그래서 철조망鐵條網을 가만히 넘었지. 철조망을 넘고서 도망해가지고 그 이마무라 세이사꾸를 어떻게 찾아갔어. 거기 가서 공장 안에서만 일을 하는 거야. 그게 무슨 공장이냐 하면 제작소, 철판이리 나르고 저리 나르고, 절단切斷하고, 기술자들이 시키는 대로 잡부 일하는 거. 밥만 먹고.


이마무라가 여기 와카마쓰에 있는 거요?


그렇지, 와카마쓰에.


거기까지 혼자 가셨어요?


혼자 갔었지. ‘전차를 타고. 전차를 타고 어떻게 어떻게 하면, 와카마쓰 세이사쿠
각주 )
정확한 명칭은 이마무라 세이사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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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간판看板이 있다. 그리 오너라. 와서 지 이름을 찾으라고.’그랬어. 그때 가네야마(金山)가.


가네야마였어요?


응. 그 사람이 무슨 책임자責任者나 됐나봐. 그니까 밖에는 일절一切못 나가게 하고 공장 안에서만 먹고, 거기서 자고, 일만 하는 거야. 일만 하다가….


거기서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거기서도 잡부지, 기술이 없으니까. 이 물건 이리 가져오라고 하면 이리 가져오고, 저리 가져가라 하면 저리 가져가고, 쓸으라면 쓸고. 그 잡부 하다가 이제 가만히 세월이 가니까, 그때 공습은 매일 오지. 6~7월 되니까.


해방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때 내가 조금씩 외출外出을 했지. 밤에도 외출하고 낮에도 시간 나면 외출을 하고. 동네에서 와카마쓰에서. 그러다가 어느 날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중대重大발표發表가 있다고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듣는다고. 그런데 천황天皇이 항복降服한다고 말이야. 그때는 도조 히데키
각주 )
東條英機. 1884년 7월 30일 출생. 1948년 사망. 일본 육군 군인. 정치가. 제40대 총리대신. 일본의 침략전쟁 당시 내각의 수반이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전범재판을 통해 A급전범으로 판결을 언도 받고 사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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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참모총장參謀總長이나 총사령관總司令官이나 됐나봐. 도조 히데키가. 수상인가. 그래서 그때 천황이 소화昭和천황이었고. 내가 소화 3년생이니까. 도조 히데키가 이제 항복 문서, 항복하는 거 낭독朗讀. 그 당시에 지금 생각하니까 그 당시에 무슨 배 위에서 맥아더하고 도조 히데키하고 배까지 가서 싸인하고 항복 문서하고 그런 거 같아.
각주 )
항복문서는 일본이 패전 직후에 조인한 것이 아니지만, 구술자는 일본 패전 직후로 이해하고 있다. 항복조서의 발표도 도죠 히데키가 한 것이 아니라 쇼와 천황이 직접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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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니까. 말만 들었지. 그런데 일본 놈들은 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고 막 “돈나 이키마쓰까(どんな生きますか.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살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그러면서 그냥 그전부터 그랬지. 그 전부터 일본 사람들은 죽창竹槍을 깎는 거야, 2m 되게. 죽창, 대나무를 갖다가. 끝을 뾰족하게 깎아. 깎아서 끝이 뾰족하니까 부러지지 않게 촛불에다가 구워. 촛불에다가 구우면 이렇게 찔러도 안 부러지거든. 그리고 이쪽 끄트머리에다가 손잡이 있는 데는 구녕을 뚫어가지고 끈으로 이렇게 손 넣으면 잡게. 그냥 놓치면 저놈이 뺏어서 족치니까. 손 넣고 잡게끔 2미터 되는 거를 어른들 식구대로 우리 네 명이면 네 개, 여기 저기 네 개, 다섯 명이면 다섯 개, 두 명이면 두 개, 딱 해놔. 유사시有事時에 미군이 상륙上陸해서 오면은 1대 1로 찔러 죽이고, 나도 죽는다 이거야. 그런 정신精神가지고 있더라고. 그러기 전에 항복하기 전에, 이상한 게 뭐냐 하면, 공장 안에 있는 중요重要자료資料있잖아요. 은 같은 거, 동판銅版같은 거, 구리 같은 거. 원자재原資材. 이게 두껍고 무겁잖아. 그걸 차로 싣고 가서, 바다 가니까, 바다에 가서 전부 바다 얕은 곳에서 전부 넣더라고. 이제 감추는 거야. 굴에다가도 넣고 바다 속에도. 은폐隱蔽하는 거. 나중에 감춰 놓는 거를 보고서 알았지. 그러니 일본 사람들은 막 울고. 우리는 도리어 미군 적군敵軍보다 일본 애들이 더 무서운 거야. 너희 때문에, 조센징 때문에, 우리가(일본이) “센소데 마케타(戰爭で負けた. 전쟁에 졌다)” 이거야, “조센징와 쇼가 나이나(朝鮮人はしようがないな. 조선 사람은 어쩔 수 없어).” 조선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이야. 문만 열면, “에잇, 조센징! 곳치 고이. 오마에 난데 오마에 조센징가 손나노야루까이(えいつ. 朝鮮人! こつち來い. お前’何で, お前, 朝鮮人がそんなのやるかい. 야, 조센징, 이리 와. 너 조센징이 왜 그런 짓 하느냐)” 일본 놈들은 내가 한 거 없이 내가 당했는데, 도리어 나를 때리고 나를 욕한다고. 그게 이제 약소국弱小國이네. 나라 없는 서러움이네. 서러움 받는 거지. 그런 거만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한 거지. 그래 항복 문서文書하고서 거기서 이제 일본 놈들은 거시기 하고, 한국. 조선 사람들은 해방이 된 거야. 해방이 된 거지. 해방이 뭔지 모르지, 우리는. 그때 8.15, 8월 14일인가. 15일인가 해방이 일어났다고. 절에, 내가 절에 가끔 가서 절도 하고 그랬는데, 저그 딸이 하나 있었어. “마키야마, 너 해방이 됐어도 조선에 가지 말고 우리 집 산에 절에 같이 있자.” “이거야. 그러면 앞으로 10년 안에 조선하고 연락, 비행기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그 판에 돈 못 벌어도 살은 게 다행이지, 뭐. 나는” “고코쿠니 가에리마스.”(故國に歸ります. 고국에 돌아가겠습니다) 그러고 왔어. 거기서 한푼도(*못 벌고) 옷은 입은 거 뿐이지. 춥지 않으니까 9월달이니까. 그때가 내가 9월 20날인가. 그때 연락을 탔어요. 시모노세키 와 가지고.


해방된 해 9월 20일에 시모노세키에 오셨어요?


네, 연락(연락선)을 탔어요. 해방은 8.15일 날 됐는데, 9월 20일경에 시모노세키에 왔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저 북해도. 여기가 구주九州인데 오사카, 도쿄, 나고야(名古屋) 이런 데서 기차로 막 오는 거야, 시모노세키로. 하관으로. 다른 데서는 가는 배가 없으니까. 하관으로 전부 집결하는 거야. 그때말로 70만 명이라고 그랬어. 그런데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죽어나가는 거야. 굶어죽지, 병들어 죽지, 전염병 나서 죽지. 그래 어쩌다 보니까 이 일을 하면은 빨리 승선권乘船卷을 준다 이거야. 배 승선권. “돈나 시고토데스까?(どんな仕事ですか. 어떤 일인가요?)” “곳치 고이(こっち來い. 이쪽으로 와)” 모자, 장갑 하나 하고, 하얀 장갑 하나하고 마스크 하고 주더라고. 그러더니 큰 대나무 장대하고 가마니 하나 꺼내오더니, 이거 가지고 단가(架. 들것)를 만들으라 이거야. 그래가지고 “여기저기 죽은 사람이 많으니까,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이 시체屍體를 갖다 버리면은 승선권을 빨리 준다,” 그러기에, 아 내가 한다고 말이야. 그래가지고 둘이 콤비 만들어가지고 시체 여기 있으면은 나는 머리, 손 들고, 상대는 발 들고 이렇게 해서 단가에다가 올려놓는다고. 올려놓고 거기서 150미터 20미터 가면은 바닷가니까. 시모노세키 배들 있고, 바닷가 출렁출렁 넘치지. 그러면 이찌(一. 하나), 니(二. 둘), 산(三. 셋) 이쪽 손 잡고 이쪽 손은 놓는 거야. 그러면 시체가 바다로 가고 단가가 비잖아. 다 했으면 또 하고 또 하고. 한 열흘 했더니 승선권 주대요. 나는 조선으로 가라고, 됐다고. 그 사람이 반장班長인가 봐. 승선권에 도장 콱 찍어서, 내 이름 쓰고서 보내 주더라고. 그거 해가지고 관부연락선 탄 거야. 탔는데 먹을 게 있어야지. 배는 고프지, 먹을 것도 뭐 폭격 맞아서 수돗물 받으려고 여기 저기 통 들고. 지금 말하자면 라오스나 캄보디아나 그런 데처럼 몇 십명씩 몇 백 명씩 열을 쫙 서 있는 거야. 수도 파이프가 새 가지고 물이 솟구치니까. 그걸 물을 받으려고. 그래 그렇게 하다가 물을 받아서 먹고. 먹을 게 없으니까. 시모노세키 옆에 창고倉庫가 쫙 있어. 창고가 몇 십 개 있다고. 폭격 맞아서 불이 타는게 한 달이 다 됐는데도 그때까지도 연기가 나고 있는 거야. 불꽃은 안 오르고 연기가 나는 거야. 그래서 가보니까 콩, 콩이 익어가지고 콩이 불 붙어가지고, 연기가 나가지고 타는 거야. 그 콩을 됫박(되)으로 한 두어 됫박 갖다가 불에다가 볶았지. 볶아서 이제 건빵 주머니 같은 데다가 넣어가지고 옆구리 차고 승선 했다고. 연락선에 타고서는 이제 부산으로 오는 거야. 시모노세키에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은 몇 사람씩 을러서 배를 사. 거기서 이제 부산까지 얼마다, 그럼 배를 사가지고 돈 있는 사람들끼리 단체團體로 그렇게 해서 직접 부산에 가고. 돈 없는 사람, 독신자獨身者는 전부, 이렇게 연락선으로 오고. 그때도 아마 8~9시간 걸렸나봐. 부산에 딱 오니까 굉장하더라고. 9월 22~ 23일 그 정도에 갔나봐. 그니까 이런 큰 깃발에다가 함경북도, 평안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막 쓰고, 고깔 쓰고 도민道民들이 막 북을 치며 환영歡迎해주는 거지. 여기도 역시 주먹밥을 주는 거야. 부산 항구에서부터, 역에서부터. 주먹밥 두 개, 세 개 달라는 대로 다 줘. 그때부터 기차는 무료無料야. 대구도 무료, 대전도 무료, 평안도 무료, 함경도 신의주도 무료. 무료 기차로 막 태워가고 태워오고 그러는 거여. 그래서 해방 되었다고. 그래가지고 그때 내가 집에서 어렵게 살고, 우리 집안이 서자庶子였거든, 내가. 큰 어머니가 계시고, 내가 서자 출신이거든, 거기 (서류에) 있을 거야. 장규. 영구라는 사람이 우리 서형이야. 길 영자(永) 구할 구자(求). 그 내가 얼마나 먹는 거에 대해서 고통을 받고 서러움을 받았지 몰라. 서자로 태어난 게 아주 뭐, 철천지 한이 되고 원한怨恨이 박혔지. 논 한마지기 없고, 매일 시골에서 일만 하고….


학교學校는 안 다니셨어요?


학교는 무슨 학교를 가? 학교는 거기서 한 4km 가면 학교가 있는데 학교도 안 보내 주잖어. 안 보내주는데 무슨 학교를 가? 일 만하는 거야, 그냥 일. 일만 하는 거야. 지게지고 일만 하는 거야. 나무 하는데 30리를 가는 거야. 도시락 싸가지고 30리 밖에 가서, 나무 해가지고 오고 그러는 거야. 그때 이제 그러고선 있으니까 철천지 한恨이 됐잖아? 돈 없고 서자로 되어 있는 게.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말 잘 안하는데…. 내가 일본 가가지고 돈도 없이 해방 돼서 내가… 〈이 대목에서 구술자는 설움에 복받쳐서 울먹였다.〉 시골 가서 (*돈을)버냐, 서울 가서 벌지(*하는 마음에), 대전서 내려서 서천, 장항長項가야하는데, 군산群山으로 해서 가야하는데, 바로 그냥 서울로 와버렸지. 서울로 와가지고 남대문南大門, 서울로 와서 노숙자露宿者생활을 했지. 지금 말하면 노숙자지. 남대문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밥 조금씩 얻어먹다가. 덕수궁. 그때 이미 미군들이 다 진주進駐한 거야, 서울에. 아까 참 빼먹은 게 있는데. 일본에 해방되고 나니까, 큰 수송기輸送機로 낙하산落下傘이 두 개 세 개 달린 거야. 그 낙하산 밑에 이만한 박스(box)가 매달려서 나오는 거야. 그러면 이 포로들이 몇 천 명. 몇 만 명인지 모르니까 걔들이 벌써 계급대로 부대 편성編成 을 한 거야.


벌써요?


응. 벌써 걔들이 중대장이면 쭉, 계급대로 비행기에서 낙하산에 박스로, 운동장運動場이며 공장으로 떨어뜨려 주니까. 멀리서 보니까, 이쪽 박스는 수류탄, 이쪽 박스는 총, 구두, 양말, 속옷, 철모까지 전부 다. 그래서 전부 무장武裝하니까, 전부 군인이여. 걔네들이 길에 나가서 무장 해제解除시키는 거야. 일본 군인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닛뽄도
각주 )
日本刀의 일본어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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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칼, 권총, 38식, 99식, 그 인제 격발기擊發機로 한 발 쏘고 이렇게 하고. 지금은 자동自動으로 팍팍팍 나가지만, 당시는 탄창彈倉에 다섯 개 씩 밖에 안 들어가거든. 한 발 쏘고, 격발기 하고, 또 쏘고, 한 발씩 하는 거거든. 그 총을 압수押收한 것이 네거리마다 산더미 같이 모아 놨더라고. 뺏어가지. 묻지도 않어. 일본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오면 팍 적어서 던져놓아서 이렇게 쌓아 놓더라고. 네거리에. 이제 미군들이 무장 해제하고, 미군들이 완전 재무장하고. 근데 (*일본사람들이) 죽창을 써먹긴, 어디 죽창을 써먹어? 그저 꿈이지. 그래가지고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대한문에 왔었어. 지금 덕수궁 입구 정도에. 거기 오니까 용산 삼각지 부대가 있었지 않아요, 그때. 바른쪽에서 삼각지로 가다 보면은 왼쪽에 707보급 부대가 있고. 바른 쪽에 또 미군부대가 있고 삼각지에서 이태원으로 가면은 이제 그 일본 군대 22연대가 있고, 한남동에 13기병대가 있었고 그랬다고 그 당시에. 미군들이 인부人夫델러 오는 거, 트럭 다섯 여섯 대로 먼저 가서 먼저 올라타는 거야. 올라타고 가서 이제 부대 정리整理하는 거야. 이쪽 정리하고 청소하고, 뭐, 시키는 대로 하고 막, 하루에 다 끝나는 게 그게. 하루에 일하면 이제 씨레이션(C-ration. 전투식량)으로도 주고, 그때 이제 돈으로도 얼마 주는데. 그리고 내일 이제 받아가지고 먹고, 내일 또 일 가려고 덕수궁 앞에서 또 기다리는 거지. 그런 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지금은 노가다(막노동. 土方)
각주 )
정확한 발음은 도카타.
닫기
지만, 그 당시에 신당동 가서 하천 그, 하천 일하는 거. 하천 이 비가 오면 하천이 모래가, 점토가 쌓이잖아. 이제 이렇게 옷 걷고 들어가서 모래 같은 거를 기계로 퍼 올리는 거야. 그래가지고 거기서 돈 좀 벌고. 한 1년 있다가 집에 갔나? 돈 조금 벌어가지고. 집에 갔는데도, 부모가. 아, 1년이 안 됐구나. 한 넉달, 다섯 달 만에 갔나봐, 서울서. 여기서 인제 갈 적에 강경江景까지는 어떻게 기차로 갔는데, 강경서 금강錦江을 건너야 하거든. 금강을 건너면 거기가 이제 이쪽 부여군扶餘郡이라고, 부여군 양화면良化面. 거기서부터 이제 무서우니까, 시국時局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니까, 그 당시에 낮에는 주로 안 가고 밤에만 간다고. 아주 완전히 해방이 됐는지 안 됐는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어떻게 집에 가는데, 이사 갔는지 어떤지 모르잖아? 집을 가만히 보니까, 아 옛날 살림 그대로더라고. 1년을 그냥 어성구성 살았구나 그러고선 들어가서, “어머니! 어머니! 나천구 왔어요” 하니까 자다가 말고 문이 있고, 조그만 창문이 있잖아? “누구? 천구냐?” 그러더니, 막 기어 나와서 울고불고 하고, 그래가지고 8.15 해방 후에 가족을 만났어요. 그래가지고 또 집에 있다가 또 서러움이 복 받쳐가지고 그 후로 또 제일국민회 가고, 군산 가서 경비대 들어가고 그랬어. 그 내가 머리를 잘 써서 그런지 흉(흉터)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흉이랑은 하나도 없는데, 일본 그 공장에서 소이탄燒夷彈
각주 )
소이제를 써서 목표물을 불살라 없애는 데 쓰는 포탄이나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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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하지, 소이탄. 소이탄이 이렇게 육각六角으로 되어 있더라고. 퍽! 터지고 나서 그 껍데기. 그 껍데기 스쳐가지고 그 당시에 이만큼 찢어졌어요. 그래서 여기서 대 여섯 발 꼬맸지(꿰맸지). 흉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어. 엎드리고 터지면서.


할아버지 가족 중에 징용 간 다른 분들은 없으세요?


징용 간 사람도 있고, 징병 간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 갔지. 동네 청년靑年들 거의 다 갔어. 형제들은 그때 큰형 윤구 형은 무슨 질병 걸려 가지고 누워 있고, 작은 형은 철도청鐵道廳에 다녔거든, 대전 철도청에. 뭐, 기차에서 안내案內하고 정리하는 여객 주임인가 거기 다니고. 이제 행방불명行方不明되고. 그러니 내가 셋째니까.


야하타 제철소에서는 월급을 못 받으셨어요?


돈은 구경도 못 했어. 용돈이 무슨 용돈이야. 밥만 먹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했어. 무슨 돈이야? 돈이.


외출은 했어요?


외출도 못 해. 무조건 밤이고 낮이고 일할 적에고. 밤에도 일본 헌병들이 총 들고 감시를 하는데 어디를 뭐, 외출을 하고 그래요.


하루에 일은 어느 정도 했어요?


보통 아침 7~8시에 가면 저녁 5~6시까지 하는 거지 뭐, 그때 뭐 시간이 있어? 뭐.


일요일日曜日도 일을 하는 거예요?


무조건 계속 하는 거야. 일요일이라는 거 우리는 개념도 없고, 몰랐었어. 그 노는 건 물 먹으러 간다고 꾀병 부리고, 화장실化粧室간다고, 변소 가서 10~20분씩 앉아 있다가 나오고, 그거 밖에 없어.


거기에 일본 사람들도 있었어요?


일본 사람들도 있어. 일본 사람들은 기술자 아니면 간부급들이었지. 다 조요(징용)들이었지. 조요들은 기능공技能工이 아니니까 잡부로 쓴 거지. 근데 우리는 다행이에요. 그 당시에 남양군으로 간 사람들 거의 다 한 백 명이면 70~80프로가 죽었잖아. 그리고 북해도로 간 사람들도, 그 사람들 탄광으로 간 사람들 죽은 사람 많고, 우리는 안전지대安全地帶지.


폭격도 많고 배도 고파서 도망하셨지요? 이마무라로 가셨는데, 거기에 일본인들은 어땠어요?


거기는 개인 집들이니까. 주위에 전부 일본 사람 가정家庭이지.


이마무라 제작소 내에서는요?


제작소 내에서는 전부 조선 사람들이여. 한 3~40명 되는데, 조선 사람들이고.


그 조선 사람들도 징용으로 온 거예요?


아니지. 그 사람들은 원래 2세, 1세대들, 2세대들이지.
각주 )
1920~30년대에 도일한 일반도일조선인 및 자식 세대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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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본에 와서 살았던 사람들이죠? 그렇지. 전쟁戰爭나기 전부터 일본에 살던 사람들이지.


이마무라로 도망간 때는 언제예요?


그니까 그 이듬해, 한 6월, 5월경인가? 5, 6월, 한 7~8개월 거기 있었으니까, 겨울나고. 나는 배고프고, 공장일하니까 ‘폭격이 빨리 올 거 아니냐’ 나름대로 생각했지. 공장 안에 비행기가 들어오고 배가 들어오더라니까, 큰 군함이. 공장이 40리라고 했어, 40리. 과장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공장 지름만 40리라고 그러고. 공장 안에서 뭐든지 다 나온다고 그러더라고.


할아버지가 야하타에 있었다는 명부名簿가 있어요.


나왔어요? 어디에.


야하타 명부에요.


야하다 명부에?


일본 사람이 할아버지를 부를 때 마키야마라고 해요?


마키무라라고 해요? 마키야마, 목산. 마키무라인지 야마인지 모르겠네, 하여튼.


할아버지가 계셨던 곳 그림으로 그릴 수 있으세요?


지금도 그릴 수 있어, 지금도 그릴 수 있어. 이게 야하다 세이데쓰쇼라고 하면, 야하다라면 이게 이제, 이게 이제 바다, 바다라고 이게. 일본해
각주 )
동해를 일본에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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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그 당시에는 일본해라고 그랬지. 이게 이제 원 바다가 아니고 이게 원 바다에서 떨어져 나갔지. 알아듣기 쉽게 하면 샛강 비슷하게. 여기에 군함 같은 배가 왔다 갔다 하고, 이 제철소로 들어오지. 그리고 이쪽에 이제 모지 쪽이 이쪽이고, 와카마쓰가 이쪽이지. 근데 여기에 이제 전철이 다닌다고. 여기에 전철이 이렇게 쫙 다니고, 여기서 더 가면 시모노세키. 한 30~40분, 지하철로. 와카마쓰라는 공장이고, 이게 야하다 세이데쓰쇼고. 이거 밖에 모르지 뭐.
이천구 할아버지가 그린 당시 주위 약도


료는 어디 있었어요?


세이데쓰쇼에 료는 없어. 다 공장 지대니까. 료는 여기서 500m쯤 가면은 숙소宿所. 여기 출퇴근 할 때는 여길 걸어가는 거야. 걸어가고 여기 공장 안에는 배도 들어오고, 경輕비행기도 들어오고, 열차도 들어오고 다 들어와. 그래 나는 이제 중간이나 되나, 이쪽 이 근방에서 일을 하다가 여기서 이제 미군 포로들도 같이 짬뽕 해가지고(섞여가지고). 걔들은 주로 열차에서 상하차하는 거(하역하는 거) 일하고, 우리는 이제 공장에서 심부름 시키는 거, 잔심부름. 심부름 할 적에는 언제든지, 하여튼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공장 출근할 때고 퇴근 할 때고 언제든지 인원파악은 언제든지 하고. 언제든지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따라 다녔으니까, 일본 헌병들이.


료에 이름이 있었어요?


맞아요. 있겠지요, 있는데.


여기가 모지가 되는 거죠?


네. 여기가 바다. 배가 들어온다니까, 배가 막 들어와. 큰 군함이. 공장 안으로. 이게 40리래, 기러기가(길이가).


모진 일을 당하시고 오셨네요?


시국時局이 그렇게 된 걸 뭐.


명부에는 이름만 달랑 있어서요.


그런데 이게 어디서 나왔지 이게? (*일본 정부가) 보낸 거구나. 다른 사람은. 내 이름은 어디 있어요?


그런데 한자가, 천자가 달라요.


맞어. 구자는 맞어. 구자가 돌림자 거든. 한산 이씨 돌림자여. 전주 이씨나 다른 이씨도 이씨가 수백 가지 아니야. 한산이씨 구자가 돌림자여. 구자 밑에 귀자, 구자 밑에 복자, 구자 밑에 점자, 이게 돌림자였어. 틀림없어, 이거. 뭐가 정확하냐면은 내 이름 구자. 이천구. 하늘 천자 쓸 수도 있고 일천자 쓸 수도 있고. 자기가 직접 명부를 보고 쓰면 모르지만.


당시當時에는 창씨명을 쓰거든요.


창씨명을 쓰는데 내 이름만 그렇게 됐지? 이게 야하다에서 온 거야?


이 명부가 야하타에서 노무勞務를 관리하던 일본 사람이 조선인들 명부를 작성作成한 거예요.


이 성씨姓氏만 개명改名한 거지.


명부보다도 할아버지 말씀이 더 명쾌明快하세요.


나는 조금도 보태고 빼고 한 것도 없고 그러니까.
면담·검독_ 허광무 조사3팀장
1차 녹취문 작성_ 조민정
편집_윤문_주석_ 정혜경 과장, 이병희·권미현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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