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내용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검색
  • 디렉토리 검색
  • 작성·발신·수신일
    ~
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토미즈 C유적

戶水 C
  • 저필자
    한영화(성균관대학교)
  • 시대
    발해
  • 위치
  • 원소장처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토미즈[戶水]정(町)
  • 시대
    발해
  • 유형
    건축지
유적개관
헤이안시대 전반의 유적으로, 9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군이 조영되었다. 관아적인 성격을 뛰고 있으며, 카호쿠가타에서 유적의 서쪽을 흘러 동해로 들어가는 오오노가와가 항만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군진(郡津)이나 국부진(國府津) 등 공(公)적인 항만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해국사의 안치공급지(安置供給地)로서 문헌에 나오는 좌리익진(佐利翼津)이나 가하국(加賀國) 변처(便處)로 비정된다.
유물개관
화지비조경(花枝飛鳥鏡)으로 추정되는 경편(鏡片), 동환(銅環), 도기 파편 등이 있다.
참고문헌
윤재운, 일본소재 발해 유적유물의 종합적 검토, 한국사학보41, 2010년 11월
해설
토미즈[戶水]C 유적은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가나자와[金澤]시 토미즈[戶水]정(町)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가나자와[金澤]시 북쪽에 있는 가호쿠[河北] 석호(潟湖)로부터 한국의 동해로 흐르는 오노[大野]천(川)의 왼편에 있다. 현재의 오노천 하구로부터 약 2km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다. 헤이안시대 전반의 유적으로, 9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들이 조영되었다. 이들 건물들은 관아로 추정되며, 가호쿠[河北] 석호(潟湖)에서 서쪽으로 흘러 한국의 동해로 들어가는 오노천이 항만으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군진(郡津)’이나 ‘국부진(國府津)’ 등의 위상을 갖는 공적인 항만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오노천을 거슬러 올라가 가호쿠[河北] 석호(潟湖)를 경유하여 노토[能登]나 엣추[越中] 등의 육로로 연결되어 있어 바닷길과 육로가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토미즈C 유적은 항구를 의미하는 ‘진(津)’이라고 쓰여있는 묵서 토기가 출토되어 항만시설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무게를 싣는다. 이 곳은 가가[加賀]국과 관련된 항구로 발해 사절단의 도착점이기도 하다. 823년 가가군(郡)이 가가국(國)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오노[大野]천 하구가 정비되어 ‘국부진(國府津)’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면서 발해선을 맞이하는 기능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8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사절단이 확인되는 것은 총 34회인데, 그 중 도착지가 판명된 사례는 29회이다. 발해 사절단의 주요 도착지는 도호쿠[東北], 호쿠리쿠[北陸], 산인[山陰] 세 지역이었으며, 호쿠리쿠[北陸] 지역은 12회에 걸쳐 나타나며, 그 중 가가[加賀郡, 加賀國]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유물로는 ‘진(津)’이라고 묵서한 토기, 중국제라 추정되는 거울, 주발과 단지 등이 출토되었으며, 녹유도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또 화지비조경(花枝飛鳥鏡)으로 추정되는 거울 파편(鏡片), 동환(銅環), 도기 파편 등이 출토되었다.
오류접수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였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세요. 처리 현황은 오류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는 삭제하오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토미즈 C유적 자료번호 : isea.d_0003_0020_012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