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공(太史公)의 말
태사공이 말하였다. “공자(孔子)가 『춘추』를 지었을 때 [옛날] 은공(隱公)과 환공(桓公)
주 001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명료하게 서술하였으나 [자신과 동시대인] 정공(定公)과 애공(哀公)
주 002사이에 [일어난 일을] 분명하지 않게 서술한 것은주 003당시와 너무나 가까운 일의 기록이 근거 없이 칭송하거나 꺼려서 피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항간에서 흉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들은 일시적인 권세를 얻고 싶어 하여주 004제 의견이 채택되도록 아첨함으로써 [황제 또는 장군 등 의견 채택자의] 편견을 조장하고 피아(彼我)[의 정세]를 참작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장군들은주 005중국이 광대하다는 것만 믿고 기고만장했으며, 임금은 [그들의 의견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세운 공이 많지 못하였다. 요[임금]은 비록 현명한 [군주였으나 혼자서] 사업을 일으켜 성공할 수 없었으나 우[임금]을 얻고서야 [비로소] 구주(九州)
주 006를 안녕하게 만들 수 있었다.주 007또한 [거룩한] 성왕의 전통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오직 장군이나 대신을 잘 골라 일을 맡기는 데 있도다! 오직 장군이나 대신을 잘 골라 일을 맡기는 데 있도다!”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 각주 007)
색인어
- 이름
- 태사공, 공자(孔子), 은공(隱公), 환공(桓公), 정공(定公), 애공(哀公), 요, 우
- 지명
- 구주(九州)
- 서명
- 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