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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자치통감장편

안돈(安惇)이 소경(蘇駉)의 공장(供狀)과 임희(林希)의 말이 다른 것에 대한 사실 조사

  • 날짜
    1098년 3월 (음)(元符 元年(1098) 3月 戊辰)
  • 출전
    卷496, 元符 元年(1098) 3月 戊辰
是日, 惇以駉所供狀進呈, 與希口奏頗異. 又言, “恕云, ‘進退執政, 當出人主, 雖宰相不得與.’” 惇因言, “初問駉時不及此, 既供狀乃及此.” 上曰, “駉所陳卻如此不同.” 希復自辨, 上曰, “推治即見虛實.” 故有是詔.
而恕亦以是日對延和殿, 奏疏劾希, “纖巧傾險, 天下共知. 頃事先帝, 遣使高麗, 臨事辭難, 嘗坐譴責. 其後止緣王珪主張, 再歷文館. 先帝前後累有德音, 謂爲姦邪, 播在羣聽, 在先朝止於禮部郎官而已. 宣仁聖烈皇后垂簾, 王珪既死, 韓縝首在相位, 希與弟旦遂附韓縝. 擢希爲左司郎中·起居舍人, 旦爲工部考功郎官. 已而梁燾恣橫, 兄弟陰相附會, 朞年之閒, 燾凡再薦旦·希以自代, 皆有顯據可以考質. 及至李清臣當國, 初除寶文閣直學士·知成都府. 章惇既至, 未行, 復留爲中書舍人·翰林學士, 坐階柄任. 考希本末, 凡所黨附皆陰邪之臣, 其跡甚明, 惟稍見抑於先帝之時與元祐二三年閒, 其餘無所不利, 則其纖巧可見. 加之引用親黨, 內外姻戚遍列朝路, 鮮有遺者. 其意乃欲遂擅朝廷以爲私計, 中外有識, 無不知其爲眞小人. 而善諛用事大臣, 事之如奴, 所欲靡不如意, 其勢炎炎, 不可容長. 臣恐終不利於國家. 伏望聖慈出自獨斷, 即賜黜罷.”

색인어
이름
王珪, 宣仁聖烈皇后, 韓縝, 李清臣, 章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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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돈(安惇)이 소경(蘇駉)의 공장(供狀)과 임희(林希)의 말이 다른 것에 대한 사실 조사 자료번호 : jt.d_0006_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