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장군(遊擊將軍) 주홍모(周弘謨)의 기민(飢民) 구제와 왜호(倭戶) 등에 대한 회첩(回帖)
37. 周遊擊回帖
본직이 총독부원의 명을 받들고 특별히 왜적의 정세를 체찰하는 일과 귀국의 사직을 안정시키는 계획을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천조에서 귀방을 대하기를 갓끈만 매고 도울 정도로주 001 의리가 간절하며 호오와 화복을 함께 맞추어 나가지 않는 바가 없었고 문서가 오고 갈 때는 깊은 부분까지 정성으로 타이르고 온전히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무릇 이 모든 것은 총독부원이 계획을 세워 대처하고 군량을 운송하는 것입니다. 총독부원의 가슴속에 수십만의 갑병이 있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타당한지를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만, 본직이 직접 왜추주 002를 만나 유시한 후 사실에 입각해서 보고하면 헤아려 결정하실 것이며 단연코 귀국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양곡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한다는 조선의 요청에 대해서는 본직이 저번에 이미 갖추어 아뢰었는데 지금 자문을 보니 마땅히 다시 힘써 독촉하겠습니다. 부산(釜山)에 전쟁 이전부터 왜호(倭戶)가 거주하고 있었다는 방문(榜文)의 내용과 관련하여 대개 귀방의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근거로 삼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왜이(倭夷)가 바다를 건너가면 일단 항복을 비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병(명군)이 다시 이르는 것입니다. 오직 이 두 가지 선택이니, 더는 다른 안이 없을 것입니다. 상주하는 왜호의 유무 여부는 결코 성패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안과 관련한 정세 판단에 대해서 글로 다할 수 없으나 전체적으로 신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지승람』 전본을 빌려 한번 검토하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