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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문궤

협방(協防)할 병마와 투항한 외인 등에 관한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31. 回咨
  • 발신자
    조선국왕
  • 발송일
    1595년 3월 21일(음)(만력 23년 3월 21일)
발신: 조선국왕
사유: 보내온 자문을 받으니, 「삼가 성유를 받드는 일입니다. 운운」 했습니다.
 
[조선국왕] 이를 받고, 원래 문서의 내용에 열거된 마땅히 논의해 조처할 사항에 대해, 사안에 따라 살펴 논의해서 열거했습니다. 이에 마땅히 회답하니, 청컨대 살펴 주시길 바랍니다. 자문이 잘 도착하기를 바랍니다.
 
첨부 내역
하나. 전항의 천조에서 협방할 병마와 관련하여 예비할 본색과 절색 양향이 충분한지의 여부와 지급할 장소에 대해 미리 정확한 수효를 밝혀 조사한 후 회신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소방의 양향은 확보된 바에 따라 힘을 다해 마련하였으나, 생선·채소·소금과 장·절색 은냥에 이르러서는 원래 소방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명군(大兵)이 주둔하게 되었을 때 공급한 군량은 소방의 대미를 사용하였고 절은은 지난해 9월 중 각 군에 지은(支銀) 6전을 겨우 수합하여 유총병의 군영에 운송해서 편의에 따라 지급하였으나 오히려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본색과 생선·채소·소금과 장에 이르러서는 충분히 지급하였습니다. 천조의 차관인 호참장주 001
각주 001)
호택(胡澤, ?~?)을 가리킨다.
닫기
과 심경력주 002
각주 002)
심사현(沈思賢, ?~?)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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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방의 군색한 정상을 목견하고 경략 군문에 전품하여 특별히 견면(蠲免)해 주셨습니다. 앞서 언급한 절색 은냥은 소방에서 생산되는 바가 아니기에 원래 변통하여 마련할 곳이 없었습니다. 양향과 관련해서 소방을 살펴보니 병란을 겪은 이래 인민이 사망하고 전토는 황폐해졌는데 경기·경상 두 도는 화를 입은 것이 가장 심하여 쑥과 명아주만이 가득하고 강원·함경 두 도는 전토가 메말라 있을 뿐 아니라 곡식도 풍족하지 않은데, 난리를 겪은 후에는 매한가지로 탕파돼 세입이 완전히 비어 버렸습니다. 지금 농사를 지은 지역에서 수세를 할 수 있는 양향의 수목을 살펴보니 황해·평안 두 도는 겨우 왕래하는 공차원 및 파견되어 머물고 있는 관군에 공급할 수 있으나 운반하여 다른 곳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오직 충청·전라 두 도는 적의 피해를 입어 잔파한 동쪽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군현이 간신히 완전하나 다년간 운반하는 데 힘을 다 써 지난해 파종이 그 전의 10분의 1에 간신히 미칩니다. 지금 왕년의 수세량 총수에서 부득이한 경비를 계산하여 제하니, 2만 석으로 3천 병력의 8개월 치 군향(軍餉)을 가까스로 채웠으되 각 해당 주현의 유사 및 관운 배신이 간혹 미처 수합해 운반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 투항한 왜인들과 위협을 받아 잡혀 있던 조선 인민들을 어떻게 초무하고 어떻게 안삽할지에 대해 미리 의논하고 연유를 회신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만력 21년 6월 이래로 계속해서 투항 왜인들 및 위협을 받은 소방의 군민을 초출하였습니다. 왜인 무리의 경우, 소방의 서북 지방으로 나누어 보내거나 혹은 총독 군문으로 보냈습니다. 위협을 받은 군민은 원적지의 주현으로 돌려보내어 생업에 복귀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이 적이 이미 물러간 후에는 이전에 위협받은 군민들을 불러 마땅히 조사하고 이전 사례에 따라 원적지로 돌려보내 거주하게 하거나 한광(閑曠)한 지역에 나누어 보내어 둔전을 가꾸게 하여 군향을 바치게 할 것이나 투항한 왜인 무리는 전일에 초출한 투항 왜인과는 같지 않은 부류로 혹여 적이 퇴각한 후에 거짓으로 투항이라 칭하여 무리를 지어 머물러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즉 생각해 보건대, 이 적은 소방의 백성들과는 그 족류를 달리하는데 하물며 다년간 (우리를) 창살하여 원수가 된 것이 이미 심하니, 만약 한곳에 혼재하게 하면 필시 난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홍무·영락 연간에 소방의 부산 지역에 왕래하며 매매하던 왜호가 있었는데, 정덕 연간에 이르러 갑자기 난리를 일으켜 소방의 연해와 웅천 등지의 인민이 아울러 창살을 입었습니다. 소방에서는 군사를 내어 쫓아내어 겨우 평정을 찾았습니다. 지금 만약 그 간교한 계책을 들어주어 계속 머무르게 한다면 이 적은 비록 철수한다고 성언하지만 실은 오히려 경내에 머무를 것이니, 위령(威靈)주 003
각주 003)
명군의 위세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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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멀리 미치는 때를 타고 모두 물러가게 하는 것만 못합니다. 한 명의 왜인도 머무르는 것을 허가하지 않아 후회를 남기지 않게 해 주신다면 큰 다행이겠습니다.
 
하나. 각 섬과 포구의 험요지를 관찰하여 몇 곳을 선정한 후, 현재 어느 곳에 병사가 어느 정도 있으며, 어떤 관원이 통령하고, 어떻게 방수할지에 대해서 한 편으로 미리 조처하되 우선 지명과 방수할 기의를 회신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경상좌도는 좌아병(左牙兵)·포수·의승군의 군병이 3,203명이고 초수가 240명이며, 본도 병마절도사 고언백·수군절도사 이수일은 본도겸충청방어사 권응수와 함께 조방장 정희현·경주부윤 박의장을 인솔하고서 경주부·밀양부에 주차하며 장기현의 해구(海口) 등처를 파수하고 있습니다. (경상)우도는 아병·포수·의승군의 군병이 3,596명이고 초수가 5,648명이며, 본도 병마절도사 김응서·수군절도사 배설이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전라도병마절도사 이시언·전라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와 함께 본도 조방장 곽재우·김해부사 백사림을 인솔하고서 의령현 및 거제 해양의 한산도 등처를 파수하고 있습니다. 또 전라도와 충청도는 순변사 이일이 궁수와 포수 정예병 500명을 통령하고 순천부 등처를 순주(巡住)하고 있으며 제도도순찰사 권율은 아병 원임목사 박종남 등 290명을 인솔하고 함양 등처를 순주하며 동서의 수륙 장관을 절제하고 있습니다. 경상좌우도의 울산·기장·동래·김해·웅천·거제의 부군현 및 좌우수군절도사 (군)영의 부산·다대·가덕·제포·옥포·영등·지세·조라·안골·천성·서생·서평의 진보는 모두 남쪽 변경의 험요한 섬과 포구에 속하는데, 만력 20년 4월 이후 모두 본 왜적의 공격을 받고 함몰한 뒤 왜병들이 성채를 쌓아 둔주지로 삼았습니다.
만약 천조의 위령에 힘입어 왜적 무리가 모두 바다를 건너면, 이 지역들은 긴요한 곳이 될 것이니 모두 마땅히 시급히 의지하여 지킬 것이며, 또 주사로 하여금 앞바다를 가로막아 지키게 하고, 육군과 형세가 서로 이어지게 하여 다시 오는 것을 막은 연후에야 그 광령(狂逞)함을 겨우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소방이 비록 이전에 전함을 만들어 왔으나 육지의 방어를 더욱 중히 하였는데, 임진의 변란에 적선이 바다를 메우고 오자, 소방의 경상도에서 원래 관할하던 전선이 중과부적으로 대적하지 못하여 육지로 올라오게끔 했고 야전과 수성에 있어 모두 그 기세를 잃어 버렸습니다. 일이 여기에 이르러 그 후 적병은 수로를 따라 전라도를 누차 범했는데, 소방의 수사제장 이순신 등이 도의 병선 총 100여 척으로 한산도에서 가로막으며 무릇 전후 세 번 전투를 치러서 모두 격파하여 적병 중에 죽어서 바다에 빠진 자는 무려 1만여 명이었습니다. 이로써 적은 위축되어 감히 다시 해로로 나와 수륙을 함께 공략하는 계책을 쓰지 못했고 따라서 전라도는 지금까지 보전되었습니다. 대개 왜적이 비록 해적이라 수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특히 그 선체가 작고 또 믿는 바가 조총 한 가지이며 대포와 화전(火箭) 등의 무기를 싣고 있지 않습니다. 소방의 배는 크기가 왜선의 수배이며, 변란 후에 제장들이 또한 의견을 내어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좌우전후에 모두 천·지 등과 같은 대장군포를 싣고서 적선을 만날 때마다 모두 파쇄해 버리니 이것이 바로 승부가 이미 결정된 기세가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왜적이 퇴각한 후 마땅히 선박을 부산 앞바다에 가로막아 놓고 다시 오는 것을 막으며 급히 육지의 험요지에 성채를 축성하여 화포와 기계를 다수 갖추어 두고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것을 10년의 규식으로 삼아 수천의 명군과 함께 협력해 방어한다면 거의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 해국의 각항 무비가 근일 더욱 진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무릇 선발·군량·양성·훈련의 사항과 일체의 선후책을 위한 사항을 한 편으로 미리 조처하고 한 편으로 일일이 항목별로 열거하여 친히 회동해 의처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소방은 병과 농이 분리되지 않아 병사를 농사에 붙여두는데, 그중 경성을 수위하는 자는 여덟 반으로 나누어 1년에 1번 상반하게 하고 변방을 수비하는 자는 네 반으로 나누어 수개월에 한 번 교체합니다. 국초에는 오히려 (그) 제도로서 외침을 막을 수 있어 구적(寇賊)이 감히 침범해 오지 못한 것이 200여 년이었습니다. 승평한 날이 오래되어 인심이 해이해지고 군정이 폐추(廢墜)하여 갑자기 강한 도적을 만나자 대적하지 못했고 변방의 성이 한 번 부서지자 안팎이 진동하여 사람들이 모두 이고지고 도망쳐서 토붕와해 돼 버렸습니다. 따라서 약 한 달 사이에 왜적이 경성에 이르렀어도 막아내지 못했으니, 비록 사람의 꾀가 좋지 않은 데서 말미암았으나 또한 시세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파멸된 나머지에서 지나간 일을 뉘우치고 후환을 막을 일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병사는 병사로서 매일 조련을 일삼게 하고 농민은 농사로서 (양식을) 축적하여 갖추게 한 연후에야 양성과 훈련을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방은 영토가 편소하여 재부(財賦)가 나오는 바는 다만 경상·전라 두 도가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충청도일 뿐입니다. 평상시의 경비 및 군향을 모두 여기에 의지합니다. 임진년의 변란으로 경상도가 왜적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었고, 나머지 제 도들이 매한가지로 탕파됐습니다. 더구나 왜적이 퇴각한 후 어렵게 모은 것으로 천병을 공급하였고, 지금 이미 3년이 지나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전라도의 수십여 읍이 있어 병화를 겨우 면했으나 조도(調度)해서 징발한 나머지 인력이 탄갈되고 유망해서 거의 없어졌고, 굶어 죽은 시체가 들에 가득하며 수천 리 내에 풀만 보입니다. 공사(公私)가 다하여 양향을 다시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근심은 먹을 것이 없는 것이 가장 급한 것이며 병사가 없는 것은 다음의 일입니다. 만약 먹을 것이 있으면 수만의 군병도 오히려 모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먹을 것이 있은 연후에 병사가 있으며, 병사가 있는 연후에 조련을 할 수 있으며, 조련을 한 연후에 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미 먹을 것이 없다면 비록 좋은 계책이 있더라도 어떻게 시행을 할 것입니까. 이는 소방이 밤낮으로 불안해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바입니다. 지금 천조가 소방의 정세를 곡진히 생각하여 책봉을 허락하는 한 가지로 왜적을 기미하여 도해를 약속하였습니다. 이 계책으로 만약 소방의 영토 안의 남은 백성들이 올해 겨우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돼 수만 군병의 1~2년 식량을 갖출 수 있다면, 황제의 영명함에 힘입어 후일의 보답을 도모하여 감히 태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심이 되는 것은 왜적도 오래 버티면서 물러가지 않아 농사 때를 놓치게 되면 본년의 농사는 이미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방이 계획을 세울 수 없어 종전부터 군량을 청하는 일로 천조를 번거롭게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각항의 무비에 대해서는, 소방이 종전까지 단지 궁시의 기예만 익혀서 왜노의 조총과는 길고 짧음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창과 칼의 기예에 이르러서는 모두 그들보다 아래인지라 누차 접전에서 모두 패하였습니다. 이제 경성 및 각 도에서 이미 교련장을 설치하고 적진에서 노획하여 수집한 조총 및 소방의 장인들이 새로 만든 것으로 밤낮으로 훈련하고 익히고 있는데, 때때로 자못 재주를 갖추어 진을 만들 만 하기도 합니다. 다만 군량이 궤갈되어 군정을 많이 모을 수 없기에 현재 훈련하는 군병의 수는 경성의 경우 궁수·포수가 총계 1,300여 명, 나머지 각 도에는 비록 숫자가 고르지 않지만 각각 원래 모집하여 조련한 인원은 있습니다. 무릇 적병이 문정에 임박하여 눈썹을 휘날릴 정도로 급하게 되면 군사를 조련하는 일은 허둥대는 것이 이와 같을 것이니 만일 다시 충돌할 때는 속수무책으로 죽기를 기다릴 뿐일 것입니다. 해로와 바람이 편한 이때의 기세를 타고 산동의 군량 수만 여 석을 급히 내어 도성으로 옮겨 운송해서 위급함을 구한 연후에야, 일체의 선후책을 조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왜적은 원래 상국으로 가는 길을 통하게 해 달라는 것을 명분으로 삼았는데, 소방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수모를 당한 것이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요동도사의 자문을 보니 사은하는 왜사가 대마도를 경유하여 지시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렇다면 소방의 화는 오히려 여기에 있을 것이니 후일의 근심은 오늘날보다 클 것이며 천조가 간사한 싹을 꺾어 울타리를 단단하게 하는 뜻 또한 아닐 것입니다. 왜정은 교사하여 수많은 단서로 일을 삼아 흔단을 일으키는 것이 일상적 행태입니다. 소방이 이렇게 잔파된 형세에서 다시 왜사가 왕래하는 길을 만들어 두면 한 번 사은한 뒤로는 오히려 조공을 바친다고 칭탁하며 오는 것을 불가하다고 해도 이어서 오는 경우가 끊이지 않을 것이니 장차 어떻게 상대할 것입니까. 허용한다면 화를 초래할 것이고 불허한다면 원한이 쌓일 것이니 우려할 만한 정세가 비단 전일의 화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소방은 요·계와 연접하고 압록을 경계로 삼아 사이를 두고 있으니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만약 왜사가 소방을 통로로 삼는다면 비단 소방의 불행일 뿐 아니라 아마도 상국에게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총독 고(양겸)의 제본에서 「비록 왜적에게 통공을 허락한다 해도 10년을 기한으로 하고 영파부를 통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소방의 사람들은 감히 편리한 말이라고 스스로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세를 헤아려 보면 실로 이와 같으니 이것이 그 사리가 선후책에 관계된 바이며, 아마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 중국에서 왕래하는 차견 인원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지, 지금 주둔하면서 지역에 해를 끼치는 자가 있으면, 조사하여 밝혀 비밀리에 보고하여 때가 이르면 붙잡아 오는 일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대병(명군)이 철군한 이후, 혹 낙오한 관군 및 객상들이 상사의 표첩을 가지고 오거나 혹 공차원역을 칭하거나 혹 도망병을 잡는다고 하면서, 경성과 연로 지역 등에서 술과 음식을 수색하거나 역참의 말을 함부로 타기도 했지만 여러 차례 경략군문 및 유총병이 내건 금약(禁約)을 받든 이후로는 이러한 폐단이 조금 사라졌습니다. 근일에 또 소속된 곳이 없는 무뢰한과 객상·장사치들이 거짓으로 공무를 칭하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주현의 역참 관리와 패거리 등을 이치에 맞지 않게 가두고 때리며 주포(紬布) 등의 물건을 요구하여 이를 가지고 뇌물을 삼고자 합니다. 심지어 민호에 침입하여 가축을 강탈하거나 행로에서 장대(裝帶)를 빼앗기도 하나, 저 사람들은 상국의 군민에 관계되므로 비록 소방을 침요함이 있더라도 이치상 조사하여 나처하기는 어렵습니다. 번거로이 귀사에 청하건대,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어 전항의 사정을 살펴 각 해당 공차원역 및 왕래하는 이들을 신칙해서 한차례 단속하여 말썽 부리는 일로 지방에서 강제로 물건을 요구하거나 소란을 일으켜 피해를 입히지 않게 해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나. 해국 연도의 공관아문은 번거롭겠지만 헤아려 깨끗하고 견고하게 수리하여 임시로 머무르는 데 편의를 제공할 것.
앞의 건을 살펴보니, 소방은 의주에서 경성에 이르기까지 단지 천여 리 안에 불과합니다. 의주에서 평양, 충청에서 전라까지 연도에 공관을 겨우 갖추고 있으며, 그 나머지 주현의 역참은 모두 왜적의 방화를 입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소방의 민력이 탄갈하였기에 하나하나 짓지 못하고 단지 해당 지방에서 와포를 만들어 왕래하는 공차원역을 기다리거나 군관을 번갈아 조발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자문의 내용에 의거하여 즉시 연로의 주현 등 관사에 명하여 각해 공관아문을 깨끗하고 견고하게 수리하도록 하되 적의 방화를 겪은 곳은 헤아려 민정을 징발하여 편의에 따라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짧은 기간에 완료하지 못하여 머무르는 데 방해가 되고 견책을 받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 자문을 흠차분수산동포정사사에 보냅니다.
 
만력 23년 3월 21일.

  • 각주 001)
    호택(胡澤, ?~?)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2)
    심사현(沈思賢, ?~?)을 가리킨다. 바로가기
  • 각주 003)
    명군의 위세를 의미한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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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방(協防)할 병마와 투항한 외인 등에 관한 조선국왕의 회자(回咨) 자료번호 : sdmg.k_0003_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