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하 ~ 송화강 일대
용수산성(龍首山城)[附 공농산성(工農山城)], 성자산성(城子山城), 용담산성(龍潭山城)[附 동단산성(東團山城)]
요하(遼河)는 광활한 초원지대에서 나온 서요하(西遼河)와, 길림 합달령산맥(哈達嶺山脈)과 대흑산맥(大黑山脈) 사이에서 발원한 동요하(東遼河)를 모태로 삼고 있다. 동요하 쪽으로 거슬러 가다보면 이통하(伊通河)·휘발하(輝發河)·구하(寇河) 등의 하천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요원분지(遼源盆地)로 모여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 요인으로 요원분지는 동요하지역에서 교통의 요지로 꼽힌다. 요원으로 흘러들어오는 지류들을 거슬러 송화강(松花江)이나 요하 유역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휘발하를 거쳐 집안(集安) 방면에도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가 언제 이 지역으로 진출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395년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요서(遼西) 일대의 거란(契丹) 세력인 패려(稗麗)를 정벌하였다. 이로 보아 고구려의 요서 진출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인 요원지역에 대한 지배는 이보다 앞선 시기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요원시에 남아 있는 용수산성(龍首山城)과 성자산성(城子山城) 그리고 공농산성(工農山城)은 고구려의 이 지역 진출과 지배양상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부여 전기의 중심지였던 길림지역은, 고구려에게는 시조 주몽(朱蒙)이 나온 곳으로 신성시되었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이 북부여수사(北夫餘守事) 모두루(牟頭婁)를 보내 통치했던 지역이기도 하였다. 현재의 길림시를 에워싸듯이 송화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 동안(東岸)의 지역에는 고구려인이 남긴 흔적을 비롯하여 이전시대인 부여로부터 발해(渤海)까지 내려가는 유적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성곽 유적으로는 용담산성(龍潭山城)과 인근의 동단산성(東團山城) 유적을 들 수 있다.
고구려가 언제 이 지역으로 진출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395년 광개토왕(廣開土王)은 요서(遼西) 일대의 거란(契丹) 세력인 패려(稗麗)를 정벌하였다. 이로 보아 고구려의 요서 진출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인 요원지역에 대한 지배는 이보다 앞선 시기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요원시에 남아 있는 용수산성(龍首山城)과 성자산성(城子山城) 그리고 공농산성(工農山城)은 고구려의 이 지역 진출과 지배양상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부여 전기의 중심지였던 길림지역은, 고구려에게는 시조 주몽(朱蒙)이 나온 곳으로 신성시되었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이 북부여수사(北夫餘守事) 모두루(牟頭婁)를 보내 통치했던 지역이기도 하였다. 현재의 길림시를 에워싸듯이 송화강이 흐르고 있는데, 그 동안(東岸)의 지역에는 고구려인이 남긴 흔적을 비롯하여 이전시대인 부여로부터 발해(渤海)까지 내려가는 유적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성곽 유적으로는 용담산성(龍潭山城)과 인근의 동단산성(東團山城) 유적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