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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청해토성

  • 저필자
    최희수(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 위치
  • 원소장처
    함경남도 북청군
  • 시대
    발해
  • 유형
규모
길이: 506m, 너비: 343m
유적개관
청해토성은 벌의 한가운데 쌓은 평지성으로서 평면생김새는 동서로 긴 장방형이다. 최근 진행한 조사발굴을 통해 남벽과 북벽의 동쪽부분이 많이 파괴되었고 본래의 동벽이 파괴되어 없어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성벽은 기본적으로 흙을 다져 쌓았지만 일부 구간은 성벽의 밑부분을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지금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2~3m이고 밑너비는 8~10m, 윗너비는 1m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네 벽의 중가운데 각각 1개씩 설치되어있다. 지금은 끊어진 성벽처럼 문자리가 남아있을 뿐이다. 성벽의 모서리에는 각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성벽의 서남모서리의 각루터만이 남아있다. 성벽의 곳곳에는 치가 있었다. 성안에는 관청자리, 살림집자리, 우물자리 등이 있다.
출토유물
* 관청자리와 살림집자리에서 구들, 아궁, 굴뚝시설등과 함께 주춧돌과 주추자리돌들이 드러났다. 성안에서는 질그릇조각, 기와조각, 괴면, 자기조각, 금동광배, 치미, 벽돌, 삽, 쇠도끼, 쇠칼, 낫, 작두, 활촉, 찰갑쪽, 창끝과 창고다리, 수레굴통쇠, 말자갈, 말등 자, 띠고리 등이 나왔다.
참고문헌
발해의 무덤, 조선고고학전서42(중세편19), 진인진, 2009
해설
청해토성은 함경남도 북청군 하호리에 있었던 8세기 후반 발해의 성으로, 신창토성·북청토성·하호토성이라고도 한다. 옛날 발해 영역의 남단, 동해에 면한 평야에 그 터가 남아 있다.
발해 5경의 도성은 방형 또는 장방형의 토성이나 토석성(土石城)으로 축성하고, 성안에는 남북과 동서로 교차되는 대로를 설정하는 것이 특징이며, 특히 남북의 대로인 주작로(朱雀路)는 너비가 동서대로보다 넓었다 한다.
발해는 국토의 중요 지역에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을 두었는데, 이 중 남경의 도성 위치에 대하여는 함흥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이 토성을 발굴하고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함경남도 북청의 동남방 16km에 위치하고 있는 청해토성이 남해부라고 보고 있다.
성 주변에 용전리산성, 안곡산성, 거산성 등이 있는데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청해토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는 위성 역할을 하였다. 또 야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북쪽에 감대봉·화삼봉·대덕산(1,416m)이 연결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청해토성 동북아역사넷>북한의 발해 유적 에서 살던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전해지는 600여 기의 평리무덤떼, 가마터, 오매리절터를 중심으로 한 절골유적, ‘발해고도지’라고 새긴 비석이 서 있고 성의 북쪽에 커다란 호수가 가로놓여 있다.
발해가 일본과 교류할 때인 776년(문왕 40)에 단 한번 남경을 거쳐 토호포(吐號浦: 新昌)에서 배가 떴다고 하는데 이때 풍랑을 만나 167명 중 120명이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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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토성 자료번호 : isea.d_0003_0030_0010_0030_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