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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고대문화유산

장산유지

長山遺址
  • 저필자
    정동준(충남대학교)
  • 시대
    발해/요금
  • 원소장처
    吉林省 梨樹縣 小城子鎭 長山村 後陳家屯
  • 시대
    발해
  • 유형
    생활
규모
남북: 100m, 동서: 200m
입지
산등성이는 장산(長山)이라고 부르고 또는 오포산(敖包山), 요보산(閙寶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지의 서쪽은 남북방향의 길과 천연 수포(水泡)와 이웃하고 있다. 유지는 남쪽으로 후진가둔(后陳家屯)과 인접해 있으며, 동쪽은 남북방향의 방풍림지대가 있고, 북쪽으로 동요하(東遼河)까지는 약 1,5km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하산향정부(河山鄕政府)와는 약 10km 떨어져 있다. 유지가 있는 이 산등성이의 서북쪽 기슭에서 또한 원시유지가 발견되었다.
유물개관
지표면에는 유물이 비교적 많으며 거의 도처에서 회색 커다란 벽돌 잔편, 회색과 홍색의 거친 베 무늬 암키와 편 등의 건축재료, 泥質灰陶, 缸胎陶와 자기 잔편 등을 볼 수있다. 유지의 서쪽 절벽과 모래 구덩이에서 대량의 蘭灰色 제련찌꺼기를 볼 수 있는데, 과립형태로 재질이 매우 가볍다.
참고문헌
문물지
해설
길림성(吉林省) 이수현(梨樹縣) 소성자진(小城子鎭) 장산촌(長山村) 후진가둔(後陳家屯) 뒤의 등성이 남쪽 기슭에 있다. 산등성이는 장산(長山)이라고 부르고 또는 오포산(敖包山), 요보산(鬧寶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적의 서쪽은 남북방향의 길과 이웃하고 있다. 유적은 남쪽으로 후진가둔과 인접해 있으며, 동쪽은 남북방향의 방풍림지대가 있고, 북쪽으로 약 1.5km 지점에 동요하(東遼河)가 있다. 유적이 있는 이 산등성이의 서북쪽 기슭에서 또한 원시유적이 발견되었다.
유적은 동서 약 200m, 남북 100m이며, 지세는 주변의 지표보다 약간 높은데, 서쪽은 파괴가 심각하고 북반부는 경작지로 개간되었다.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요(遼)·금(金) 시기(907∼1234)의 것이다. 이 유적에서 요·금 시기의 유물이 발견된 것 외에도 발해 맟 송대(宋代 : 960∼1279)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분명히 이 유적 문화연대의 상한은 발해 또는 요이며, 그 하한은 금보다 늦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거란(契丹)이 발해를 멸망시킨 이후 이곳이 경영되기 시작하여 금대까지 사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당시 이곳은 건축물이 비교적 많고, 인구가 비교적 번성하였으며, 규모도 비교적 큰 거주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적 서쪽에서 발견된 제련찌꺼기는 일찍이 관련시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장산(長山) 유적은 유물이 풍부하고, 문화가 복잡하며,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이 지역에서는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발해·송(宋)·요·금 각 문화의 상호 간 영향을 연구하는 데에, 그리고 요·금 문화의 특징을 연구하고 현지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 모두 상당히 참고가 된다. 장산 유적의 자연지리적 환경은 또한 비교적 특수하여, 그 북쪽은 동요하(東遼河)이고 뒤쪽은 돌출된 산등성이이며 서쪽은 끝이 없는 요하(遼河) 평원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할 수 있고, 뒤로는 어업과 해운에 유리하여 인류가 거주할 만한 곳이다.
지표면에는 유물이 비교적 많으며 거의 도처에서 회색 커다란 벽돌조각, 회색과 홍색의 거친 베무늬 암키와조각 등의 건축재료, 회색 뻘질 토기, 항아리용 태토의 토기, 자기조각 등을 볼 수 있다. 유적의 서쪽 절벽과 모래 구덩이에서 대량의 짙은 청색 제련찌꺼기를 볼 수 있는데, 과립형태로 재질이 매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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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유지 자료번호 : isea.d_0003_0010_0030_002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