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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자목조(茨木造; 우바라키노미야츠코)

자목조(茨木造; 우바라키노미야츠코)
 천진언명(天津彦命; 아마츠히코노미코토)의 후손이다.
 
【주석】
1. 자목조(茨木造)
자목조씨(茨木造氏) 화천국(和泉國) 황별(皇別) 「자목조(茨木造)」 조에도 게재되어 있다.
자목(茨木; 우바라키)은 자성(茨城)으로도 표기된다. 자목(자성)이 사서에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일본서기』 흠명천황(欽明天皇) 2년 3월조의 ‘자성황자(茨城皇子; 우바라키노미코)’이다. ‘자(茨)’는 일반적으로 ‘시’, ‘지’로 음독되거나, ‘이바라’ 혹은 ‘우바라’로 훈독되는 글자이다. 따라서 자목(茨木)과 자성(茨城)은 ‘우바라키’ 혹은 ‘이바라키’라고 읽혔다. 대화개신 이전은 자성국조(茨城國造)가 존재한 지역이다. 이곳은 현재 자성현(茨城縣) 동자성군(東茨城郡)·서자성군(西茨城郡) 일대와 대판부(大阪府) 북섭진(北攝津) 지역이다. 따라서 자목(茨木)이라는 씨명은 자성(茨城)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목조는 여기에만 보인다.
자목씨(茨木氏, 茨城氏)는 「천평 5년(733) 정월 27일자 사경소계(天平五年正月二十七日付 寫經所啓)」(『대일본고문서』 7-34)에는 자목각만려(茨木角万呂), 「천평감보 원년(749) 윤5월 10일 천부법화경충본장(天平感寶元年閏五月十日 千部法華經充本帳)」(『대일본고문서』 3-231, 3-249)에는 자성각만려(茨城角万呂)로 나온다. 자목각만려(茨木角万呂)가 자성각만려(茨城角万呂)로도 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화천국 황별 「자목조(茨木造)」 조에 황별계의 자목조씨가 존재하므로 자목각만려를 미정잡성 자목조씨의 일족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 천진언명(天津彦命)
천진언명은 여기에만 보인다. 율전관(栗田寬)은 『신찬성씨록고증(新撰姓氏錄考證)』하(下)에서 어떤 판본[一本]에 의거하여 ‘근(根)’ 자를 보충해 ‘천진언근명(天津彦根命)’이라고 하고, 교본도언(橋本稻彦)도 『정정신찬성씨록(訂正新撰姓氏錄)』 에서 ‘근’ 자를 보충하여 ‘천진언근명’이라고 기술하였다. 좌백유청(佐伯有淸)은 『신찬성씨록』 본문편이 저본으로삼은 「어무청직본(御巫淸直本)」 등의사본(寫本)에 근거하여 ‘천진언명(天津彦命)’이라고 기재하였다.
자목조는 여기에만 보인다. 자목조씨가 조상이라 주장하는 천진언명(天津彦命)도 여기에만 보인다. 따라서 자목조씨가 세운 조상이 의문시되고, 자목조씨와 천진언명의 관계를 증명해 줄 기록도 「고기」 와 「구전」 등에 존재하지 않아서 미정잡성에 기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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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조(茨木造; 우바라키노미야츠코)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130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