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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백제공(百濟公; 구다라노키미)

#백제(百濟)
백제공(百濟公; 구다라노키미)
 백제국(百濟國)의 주왕(酒王; 사케노키미)에서 나왔다.
 
【주석】
1. 백제공(百濟公)
백제공은 좌경(左京) 제번(하) 「백제공」 조(761)에도 게재되어 있다. 백제라는 씨명은 백제국 국명에서 유래하였다.
백제공씨 일족으로는 백제군도자고(百濟君刀自古)와 백제공풍정(百濟公豐貞)이 있다. 군(君) 성을 칭하고 있는 백제군도자고는 『속일본기』 천평보자(天平寶字) 3년(759) 10월 신축조에 “천하의 여러 성에 군(君)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을 바꾸어 공(公)이라는 글자로 쓰게 하였다”라고 하므로 ‘군’ 자를 ‘공’ 자로 고치기 이전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백제공풍정은 『속일본후기(續日本後紀)』 승화(承和) 6년(839) 8월 무인조에 “풍정의 조상은 백제국 사람이며, 경오년(庚午年)에 하내국(河內國) 대조군(大鳥郡)에 을미년(乙未年)에 가하국(加賀國) 강소군(江沼郡)에 적을 두게 하였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율령제 하내국과 화천국은 여러 차례 분할과 통합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속일본기』에 의하면 원정천황(元正天皇) 영귀(靈龜) 2년(716) 3월 계묘(27일)조에는 “하내국에서 화천군(和泉郡)과 일근군(日根郡)을 분할하였다”라고 하고, 4월 갑자(19일)조에는 “하내국에서 대조군(大鳥郡)도 분할하여 이들 지역에 화천감(和泉監)을 설치하였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화천감은 화천국으로도 표기되므로 화천국 소속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천평 12년(740) 8월 갑술(20일)조에는 화천감을 폐지하고 그 관할 지역을 하내국에 소속되게 하였다가, 천평승보(天平勝寶) 9년(757) 5월 을묘(8일)조에는 다시 분할하여 화천국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화천국 백제공씨의 본관(本貫)이 대조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조에 “가하국(加賀國) 사람 정6위상 백제공풍정을 좌경 4조(四条) 3방(三坊)으로 옮겨 부관(附貫)하였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승화 6년 8월에 풍정이 가하국에서 좌경 4조 3방으로 이관(移貫)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오년적(庚午年籍)
『일본서기』 에는 천지천황(天智天皇) 9년(670, 경오년) 2월조에 호적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일본에서 최초의 전국적인 호적으로 ‘경오년적(庚午年籍)’이라고 불린다. 『양로호령(養老戶令)』 조호적(造戶籍)조에 호적은 6년마다 작성되어 30년을 경과하면 폐기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경오년적은 예외로 영구보존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경오년적이 단순한 호적에 머물지 않고 ‘정성(定姓)’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신찬성씨록』 서문에 기재된 “경오년에 이르러 호적을 편찬하여 만드니, 인민의 씨성이 각기 그 마땅함을 얻었습니다”라는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또 『속일본기』 에는 경오년적을 전거로 제시하며 개사성을 청원한 기사가 다수 확인된다. 이것은 경오년적이 ‘정성’의 효시로서 고대 일본 사회에서 원칙적으로 중요시된 것을 잘 드러내 준다. 따라서 천지천황 때 최초로 정리된 경오년적은 1세기 반 이상 정성의 기본 대장으로 존재하였다. 그리고 『속일본후기』 승화(承和) 6년(839) 7월 임진조에는 “좌경직(左京職), 5기내(畿內), 7도(道) 제국에 명하여 경오년적을 베껴서 중무성고(中務省庫)에 수납하라.”라는 명이 내려졌고, 승화 10년(843) 정월 경진조에는 “일이 잘 진척되지 않자 독촉하는 명을 내려 일을 마쳤다.”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속일본후기』 에 의거하면 경오년적이 ‘중무성고’에 수납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경오년적은 승화 10년 12월 무오조에 정성에 관한 일에 사용된 것을 마지막으로 사적에서 모습을 감춘다. 이것은 홍인 6년에 편찬된 『신찬성씨록』 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2. 주왕(酒王)
『일본서기』 인덕(仁德) 41년 3월조에는 주군(酒君; 사케노키미)이 백제에서 왜국으로 건너갔다고 기재되어 있다. 도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백제의 왕족이 왜로 건너간 기록은 『일본서기』 에 응신(應神) 39년조에 기재된 백제 직지왕(直支王)의 누이 신제도원(新齊都媛), 웅략(雄略) 2년조의 적계여랑(適稽女郞), 그리고 웅략 5년조에 기재된 개로왕(蓋鹵王)의 아우 곤지(昆支) 등의 예가 계속적으로 보인다. 주군도 이와 유사한 백제 왕족의 도왜 사례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주군은 「백제공」 조와 「육인부련(六人部連)」 조, 그리고 우경(右京) 제번(諸蕃) 「형부(刑部)」 조에도 보인다. 「형부」 조에서는 “백제국 주왕에서 나왔다”라고 기재되어 있다.주왕에 관해서는 우경 제번(하) 「형부」 조(89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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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공(百濟公; 구다라노키미)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5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