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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봉전약사(蜂田藥師; 하치타노쿠스시)

봉전약사(蜂田藥師; 하치타노쿠스시)
 오주(吳主) 손권왕(孫權王)에서 나왔다.
 
【주석】
1. 봉전약사(蜂田藥師)
봉전씨(蜂田氏)는 화천국(和泉國) 신별(神別) 「봉전련(蜂田連)」 조에도 게재되어 있다.
봉전(蜂田)이라는 씨명은 율령제하 화천국(和泉國) 대도군(大島郡) 봉전(蜂田; 하치다)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현재 대판부(大阪府) 계시(堺市) 중구(中區) 팔전사정(八田寺町), 팔전남지정(八田南之町) 일대이다.
봉전약사의 일족으로는 봉전약사문주(蜂田藥師文主), 봉전약사안유(蜂田藥師安遊), 봉전약사선인(蜂田藥師船人) 등이 있다. 봉전약사문주와 봉전약사안유는 『속일본후기』승화(承和) 원년(834) 6월 신축조에 “화천국인 정6위상 봉전약사문주와 종8위하 동성(同姓) 안유(安遊) 등이 심근숙녜(深根宿禰)라는 성을 받았다”라고 적혀 있어 834년에 심근숙녜로 씨성을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봉전약사선인(蜂田藥師船人)은 경도시(京都市) 우경구(右京區)의 인화사문고(仁和寺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 23권 중 17 「증후지일(證候之一)」 의 오서(奧書)에 “보원(保元) 원년(1156) 윤9월 26일에 가본(家本)의 교합을 완료하였다. 봉전약사선인본(蜂田藥師船人本) 운운”이라 기재되어 있다. 선인은 보원 원년 이전 사람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황제내경태소』 는 복부민량(服部敏良)이 “23권 가운데 7권은 이미 없어져 버렸다”라고 지적하였다. 봉전약사선인이 이러한 의서를 소장한 것은 그가 약부(藥部) 출신으로 의생(醫生)과 안마생(按摩生) 등을 거쳐 전약료(典藥寮)에 소속된 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中)에 수록된 「지혜 있는 자가 화신(化身) 성자(聖者)의 흉을 보며 질투하였기에 현세에 염라왕궁으로 가서 지옥의 고통을 받은 이야기(智者誹妬變化聖人而現至閻羅闕受地獄苦緣)」 에는 “행기(行基)라는 사미(沙彌)가 있었는데 속성(俗性)은 월사(越史; 고시노후히토, 古志史, 高志史로도 표기)였다. 월후(越後) 지방의 경성군(頸城郡)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화천(和泉) 지방의 대조군(大鳥郡) 사람으로 봉전약사(蜂田藥師)였다”라고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행기의 어머니는 봉전약사씨 일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승정사리병기(大僧正舍利甁記)」 에는 “(봉전)고이비매(古爾比賣)가 하내국 대도군 봉전수호신(蜂田首虎身)의 장녀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봉전수씨로 되어 있다. 후자가 더 오래된 것이므로 행기의 어머니는 봉전약사씨 일족이 아이라, 뒤에 연(連) 성을 받은 봉전수씨 일족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화천국(和泉國) 신별(神別) 「봉전련(蜂田連)」 조(684) 참조.
또한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인화(仁和) 원년(885) 8월 19일 신미조와 동년 9월11일 임진조에는 봉전잠범(蜂田岑範)이 전약(典藥) 대속(大屬)에 임직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봉전잠범이 보임된 관직으로 보아 봉전약사씨 일족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봉전약사씨 중에는 승화 원년에 심근숙녜로 씨성을 바꾼 뒤에도 구성(舊姓)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옛 성이 봉전약사인 심근숙녜씨가 의약학 분야에서 활약한 것은 심근숙녜종계(深根宿禰宗繼)와 심근숙녜보인(深根宿禰輔仁)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심근숙녜종계는 『일본삼대실록(日本三代實錄)』 정관(貞觀) 9년(867) 2월 11일 신사조, 원경 3년(879)11월 25일 경진조, 인화 3년(887) 2월 2일 병오조 등에 기술된 보임 기사를 살펴보면 침박사(針博士), 내약정(內藥正), 의박사(醫博士), 시의(侍醫) 등을 역임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심근숙녜보인이 「연장 3년(925) 2월 1일자 의박사 등이 연서한 상신 문서(延長三年二月一日付 醫博士等連署申文)」 에 ‘전약두(典藥頭) 관원조신행정(管原朝臣行貞)의 문도(門徒)인 권의박사(權醫博士) 심근보인(深根輔仁)’이라 적혀 있다. 심근보인은 심근숙녜종계의 손자로 봉전약사 일족이다. 전약두 관원조신행정에게 의학을 배워 우위문의사(右衛門醫師)에서 권의박사, 시의로 승진하며 명의로 알려진 인물이다. 연희(延喜) 18년(918)경 일본 최초의 약물(藥物)에 대한 지식을 정리한 책인 『본초화명(本草和名)』 을 지었다.
* 『황제내경태소(黃帝內經太素)』
『황제내경』 의 소문(素門), 영추(靈樞) 두 부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상선(楊上善)이 배열 순서를 바로잡고 주석을 단 의약서이다. 전 30권인데, 현재 23권이 남아 있다. 당 고종 건봉(乾封) 원년(666)부터 홍도(弘道) 원년(683)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보고, 당 중기 무렵에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송나라가 항주(杭州)로 천도한 뒤에 없어져 연구되지 못하다가, 1823년 일본의 인화사(仁和寺)에서 고초본(古抄本)이 발견된 이후에 중, 일 양국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일본 인화사에서 발견된 『황제내경태소』 는 『내경(內經)』 과 관련된 책 가운데 원문이 가장 오래되고, 송대 교정의서국(校正醫書局)의 교정을 거치지 않은 유일한 판본이다.
*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설화집이다. 인과응보의 불교 사상에 기초하여 웅략천황(雄略天皇)부터 차아천황(嵯峨天皇) 무렵까지의 설화를 한문으로 기록한 것이다. 9세기 초에 나온 『일본영이기』 는 고대 후기 설화 문학의 시초임과 동시에 나량조(奈良朝) 불교 설화 문학의 유산이기도 하다.
* 약부(藥部)
『영집해(令集解)』 직원령(職員令) 전약료조(典藥寮條)에 인용된 의질령(醫疾令)에 “의생(醫生), 안마생(按摩生), 주금생(呪禁生), 약원생(藥園生)은 먼저 약부(藥部)가 선취하여 세습한다”라고 적혀 있고, 『영의해(令義解)』 의질령 의생등취약부급세습조(醫生等取藥部及世習條)에는 “약부를 칭하는 자로 봉전약사(蜂田藥師)와 나량약사(奈良藥師)류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봉전약사씨는 나량약사씨와 함께 약부를 거쳐 의생, 안마생 등이 되고, 다시 전약료나 내약사(內藥司)의 관인이 되었다.
2. 손권왕(孫權王)
오의 초대 황제로, 기원전 222~251년까지 재위한 손권을 가리킨다. 손권왕에 대해서는 좌경(左京) 제번(하) 「모좌촌주(牟佐村主)」 조(776) 손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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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전약사(蜂田藥師; 하치타노쿠스시)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50_0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