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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

진인(秦人; 하타히토)

진인(秦人; 하타히토)
 진기촌(秦忌寸; 하타노이미키)과 조상이 같으며, 궁월왕(弓月王)의 후손이다.
 
【주석】
1. 진인(秦人)
진인의 씨명은 대화 정권 시기에 진씨와의 지배·종속 관계에서 유래하고 ‘인(人)’은 성과 유사한 사회적, 정치적인 신분을 표시한다. 진인씨 일족으로는 『속일본기』 신호경운(神護景雲) 3년(769) 5월조에 섭진국(攝津國) 서성군(西成郡) 사람인 진인광립(秦人廣立)이 진신도(秦神島)와 함께 진기촌(秦忌寸)의 씨성을 받았다. 대보(大寶) 2년(702) 어야국(御野國, 美濃國) 가모군(加毛郡) 반포리(半布里) 호적(『大日本古文書』 1-59)의 진인의비지매(秦人意比止賣)를 비롯하여, 대보 2년 각지의 호적에 수많은 진인씨가 등재되어 있다. 평성궁 출토의 목간(『平城宮木簡』 4, 1967)에도 근강국(近江國) 애지군(愛智郡)이 본관인 진인진전마려(秦人眞田麻呂)라는 인물이 나온다.
2. 진기촌(秦忌寸)
진기촌에 대해서는 하내국 제번 「진기촌」 조(1000), 좌경 제번(상) 「진기촌」 조(742), 산성국 제번 「진기촌」 조(842) 참조.
3. 궁월왕(弓月王)
궁월왕은 융통왕(融通王)이라고도 한다. 『일본서기』 응신기 14년조에는 이해에 궁월군(弓月君)이 백제에서 와서 “신은 저희 나라의 인부(人夫) 120현을 이끌고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동 응신기 16년 8월조에는 “평군목토숙녜(平群木菟宿禰), 적호전숙녜(的戶田宿禰)를 가라에 보냈다. 정병을 주며 ‘습진언(襲津彦)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분명히 신라가 방해하여 체류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신라를 치고 길을 열도록 하라.’라고 명하였다. 목토숙녜 등이 정예병을 이끌고 나아가 신라의 국경에 이르렀다. 신라 왕은 놀라 사죄하였다. 궁월(弓月)의 인부를 거느리고 습진언과 함께 돌아왔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고어습유(古語拾遺)』 에도 응신조 때에 진공조(秦公祖) 궁월이 120현의 백성을 이끌고 귀화하였다라고 하는 궁월군의 도래 전승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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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秦人; 하타히토) 자료번호 : ss.k_0003_0010_0040_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