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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독도

부사직 김만채가 도성 수비에 대해 상소하다

  • 저필자
    장순순(전북대학교 교수)
  • 날짜
    1708년 2월 27일(음)
  • 출전
사료해설
부사직(副司直) 김만채(金萬埰)가 도성 수비에 대해 상소하면서 울릉도에 진(鎭)을 설치하여 해양 방어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건의한 내용이다. 이는 ‘울릉도쟁계’가 종결된 이후에도 정부 관원들 사이에서는 울릉도 해역 방어에 관한 논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원문
○副司直金萬埰上疏, 極言都城之可守, 斥闊大難守之論, 以爲: “古所謂七里之郭, 擧其延袤而言。 今王城延袤, 猶不滿七里, 而以爲闊大, 有若過萬雉倍倍者然, 何哉? 且言城北釋伽峰稍下處, 先爲設備防捍北城, 洪福之役, 次第設施, 以爲固守之道。” 仍陳鬱陵島設鎭, 以作海防, 慶尙左兵營, 移之安東, 移置水使於今之左兵營等事, 上褒以爲國之誠, 疏本下廟堂, 使之稟處。
번역문
부사직(副司直) 김만채(金萬埰)가 상소(上疏)하여, 도성(都城)을 수비할 수 있음을 남김없이 말하고, 넓고 커서 수비하기 어렵다는 의논을 배척하여 말하기를,
“예전에 이른바 7리(里)의 곽(郭)이라고 한 것은 그 연무(延袤)를 들어서 말한 것입니다. 지금 왕성(王城)의 가로와 세로는 오히려 7리(里)에도 차지 못하고 있는데도, 활대(濶大)하다고 하는 것은 만치(萬雉)의 배(倍)에 갑절이나 지나친 것처럼 한 것이 있으니, 무슨 이유입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성북(城北)의 석가봉(釋伽峰)의 조금 낮은 곳에 먼저 설비(設備)하여 북성(北城)을 방어하되, 홍북성(洪福城)의 역사(役事)는 차례로 시설하여 고수(固守)하는 방도(方道)를 삼으소서.”
하고, 인하여 울릉도(鬱陵島)에 진(鎭)을 설치하여 해방(海防)을 만들고, 경상 좌병영(慶尙左兵營)을 안동(安東)에 옮기고, 수사(水使)를 지금의 좌병영(左兵營)에 옮겨 설치하는 것 등의 일을 진달하니, 임금이 나라를 위하는 정성을 기리고 소본(疏本)을 묘당(廟堂)에 내리어 품처(稟處)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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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직 김만채가 도성 수비에 대해 상소하다 자료번호 : sd.d_0149_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