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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평양성

考異/平壤의 井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제설(諸說)에 모두 기자정전(箕子井田)이라고 하나, 그 밭이 정(井)자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정전제(井田制)라 하고 정전(井田)을 구획하였다고는 하지 않았다. 다시 상고하건대 기자의 전제(田制)가 중국 사책(史冊)에 보이지 않으므로 《동국통감(東國通鑑)》에서 취하지 않았으나, 우리 나라에서 전하는 말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리라.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평양의 성 안을 구획하여 정전제를 썼다.”
하였고, 《여지승람》에,
“평양 외성(外城) 안에는 기자 정전의 구획이 완연하다.”
하므로 이를 따른다. 《평양지(平壤志)》에,
“기자가 구획한 경계가 남아 있는데, 겸병(兼並)하거나 천맥(阡陌)을 헐므로 말미암아 거의 옛모습을 잃었었다가 만력(萬曆 명 신종(明神宗)의 연호) 을유년(선조 18 1586)에 서윤(庶尹) 김민선(金敏善)이 수리하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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考異/平壤의 井田 자료번호 : ispy.d_0005_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