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근대 이전까지 한국·중국·일본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한자와 유교문화를 공유하는 이른바 ‘동문(同文)의 세계’였다. 그런 만큼 각 나라 간의 외교관계와 국내의 동향도 서로 밀접하게 연동하면서 전개되었다.
예컨대 1세기 후반 중국대륙에서의 원(元)과 명(明)의 교체, 17세기 초반 명과 청(淸)의 교체 등의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 그 여파는 조선과 일본에 바로 파급되었다. 원·명 교체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명·청 교체 또한 조선의 대외관계 및 내정에 심대한 파동을 초래하였다. 한편 16세기말 일본이 일으킨 임진전쟁은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크게 뒤흔들고, 국제질서의 재편을 초래하였다.
임진전쟁은 16세기말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국제전쟁이었다. 참전국의 숫자나 전쟁의 규모, 전후(戰後)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동아시아의 역사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참전국을 보면 조선·일본·중국의 3국의 물론이고 간접적인 형태이지만 유구(琉球), 섬라국인(暹羅國人)과 함께 스페인·포르투갈인과 같은 유럽인도 참가하였다.^{주 326}

각주 326)

이현종(1974), 「임진왜란시 유구·동남아인의 내원」 『일본학보』2.

심층적으로 보면 전쟁의 발발원인과 영향 면에서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에 참여한 인원 면에서도 16세기말 당시 세계 최대의 전쟁이었다. 7년간의 전쟁에 참여한 연인원이 7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주 327}

각주 327)

정구복(2005), 「임진왜란의 역사적 성격과 의미」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4쪽.

일본은 두 차례의 침입에서 30만 명, 명군도 10만 명 이상, 조선의 군대와 의병 수십만이 참여하였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전했던 시기에는 세 나라에서 30만 명이 넘는 대병력이 단일전장에서 부딪치기도 한 대전쟁이었다.^{주 328}

각주 328)

한명기(2005), 「임진왜란과 동아시아 질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104쪽.

그래서 타이완의 역사학자 이광도(李光濤)는 이 전쟁을 두고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주 329}

각주 329)

李光濤(1970), 『朝鮮壬辰倭禍史料』5권, 臺灣 中央硏究院歷史語言硏究所.

그런 만큼 이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었다. 이 전쟁에 참전하였던 동아시아 삼국의 국내정세는 일변하였다.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을 주도하였던 토요토미정권[豊臣政權]이 붕괴하고 1603년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개설됨으로써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이 전쟁에 막대한 전비(戰費)를 소모했던 명이 쇠퇴하였고, 17세기 전반에는 새로이 흥기한 여진족(女眞族)의 청에 의해 몰락하였다. 조선은 비록 왕조가 교체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적인 질서가 붕괴되다시피 하였다.
본고에서는 임진전쟁에 관해 실증적 접근보다는 쟁점을 재검토함으로써 해석적인 접근을 시도해 볼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이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 전쟁이라는 성격에 초점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